review/미디어아트 전시

거세된 센소리엄의 부활 <Urban Sensorium>展 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4. 2. 13:20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여기서 나서 자랐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이고,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도시이다. 도시는 내가 머물고 살아가는 삶의 공간 그 자체이지만, 워낙 익숙해져 버린 탓에 도시에 대한 깊은 사색은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내 집만큼이나 익숙해져버린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는 알게 모르게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어반 센소리엄'은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공간인 도시에 관한 전시이다. 하지만 '도시에 관한 전시'란 표현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이 전시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맥락에서의 접근과 논의가 가능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온갖 기술미디어로 구석구석 채워진 미디어 환경으로서의 도시에 주목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인 도시는 새롭고 확장된 감각 경험을 위해 온 몸을 깨우고 있다. 온 몸을 통해 전해진 자극을 인식하고 조율하는 뇌의 기관인 센소리엄은 미디어로 꽉 찬 도시 속에서 새롭게 활동을 개시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감각의 확장은 미디어 아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화두 중 하나이다. 그것은 예술과 미학의 오랜 전통 속에서 시각의 우위로 인해 다른 감각들이 은폐되고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이 미디어를 통해 비로소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바움가르텐(Baumgarten)이 미학을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라 규정한 것에서부터, 미학은 예술적인 것에 관한 것 이전에, 감각과 지각을 다루어야 함을 의미했지만, 전통적으로 예술 경험에서 시각 중심의 위계질서는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 미학에서 '감성적 지각'의 재구성이 요청되고 있고, 이러한 변화에 미디어가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에 등장한 센소리엄이라는 말은 이번 전시가 미디어와 미디어 아트를 둘러싼 확장된 감각에 관한 논의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본래 다중감각체계를 가진 인간이 온몸을 통해 전달한 자극을 인식하고 조율하는 센소리엄은 오랫동안 그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미디어는 거세되었던 센소리엄을 복원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몇몇 작품들은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홍철기와 고틀립이 한 팀을 이룬 Hoax Collective의 <Tectonic Membranophone>은 도시 공간 어디에나 존재하는 미세한 전파를 진동과 소리로 변환시킨 작품으로, 도시의 조건 하에서 닫혀 있으나 열려있고 나뉘어져 있으나 연결된 건축적 공간을 소리와 진동을 통해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도시 전체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와 그것을 따라 흐르는 전기는 우리의 감각범위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파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미디어를 통해 변환된 전파는 우리의 청각과 촉각을 두드린다. 류한길과 홍성기가 팀을 이룬 지평선 잠수부의 작품 <Reforming Module>은 트리어드 갤러리라는 건물의 구조 중에서 개단이라는 매개의 공간에 주목하고, 공간을 타고 흐르는 전자기파와 진동의 변동을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한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로 매개된 감각 경험의 문제를 보다 확장된 견지에서 접근한 작품들을 포함하여  폭 넓은 관점에서 미디어 환경과 감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은유와 함축이 풍부한 변지훈과 에릭 올라프슨의 작품이 그 예이다. 변지훈의 <바람>은 부산에서 부는 바람의 데이터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전송하여 갤러리 공간에 흩날리는 천의 모습으로 재현함으로써, 청각과 시각, 촉각이 아우러진 경험을 체험하도록 한다. 올라프슨의 작품 <드라이브>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고속 촬영한 후 매우 느리게 재생하여, 속도의 변형을 통해 순간적인 장면으로부터 심리적 긴장과 욕망을 끌어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맥루한이 이야기한 촉각성(tactility), 즉 적정한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 감각들이 적절한 상호작용을 할 때의 감각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각주:1]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일상화되고 보편화된 기술미디어가 낳은 새로운 사회적 위계와 권력 구도를 비판하는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도시 곳곳에 숨겨진 CCTV에 포착되고 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노출시킴으로 폭로하는 미셸 테란의 <인생사용법>이나, 태양을 추적하는 기술적인 장치를 통해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인 태양에 접근하는 <선트레이서> 를 통해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라는 사회적 층위를 넘어 절대적으로 공유되는 태양을 담아낸 이장원의 작품은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를 풍부히 했다.





미디어로 꽉 찬 도시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장치들이 우리의 생활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다. 마치 감지할 수 없는 전자파의 흐름처럼 미디어는 우리의 몸과 의식 속을 타고 흐르고 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늘 변함없이 우리를 맞이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보다 예민한 감각과 날카로운 의식을 갖는 자만이 미디어에 의해 기만당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를 열어젖히고 온전히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도시인이여! 감각을 깨워 세계와 만나자.



  1. 맥루한은 그의 저서『구텐베르크의 은하계』에서 촉각이란 사물들과의 단순한 피부접촉이 아니라 정신 속에서 사물들의 생명 그 자체, 각각의 감각을 각각의 다른 감각으로 전화시켜 인가에게 의식을 부여해주는 힘을 합의(consensus), 즉 '공통감각(common sense)'라고 칭한바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