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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의 과학・소설 읽기] 가상세계의 짤막한 인류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쑤시개

yoo8965 2015. 12. 9. 19:39



“잭스를 이토록 오래 키워 온 애나씨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인상적인 작업이군요.” 마치 애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이쑤시개 조각을 만들기라도 했다는 듯한 말투였다.



1.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인벤 게시판에 어떤 이가 글을 올렸다. 사냥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멧돼지 사냥을 하는 퀘스트를 하다가, 그만뒀다는 짤막한 글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흥미로웠다. 마침 그는 멧돼지를 펫으로 삼고 있을 때였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 멧돼지가 안 돼 보이더란 얘기였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사냥꾼은 언제나 펫과 함께 한다. 퀘스트를 할 때도 던전을 돌 때도 언제나 같이 한다. 그래서 사냥꾼은 어떤 캐릭터보다 펫에 느끼는 애착이 강하다. 사냥은 뒤로 하고, 펫만 모으는 사냥꾼도 있을 정도다.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이상한 것일까. 글이 올라오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댓글을 달았다. 자기 역시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며, 사람마다 어느 순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는 고백이 줄줄이 달렸다. 감정과 시간, 그에 따른 애착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이 같은 감정의 고착은 현실과 마냥 다른 것일까. 개나 고양이 같은 여느 반려동물과 나누는 교감과 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2. 물론, 똑같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생명과 비생명의 차이, 즉 교감의 여부는 근본적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오랫동안 같이 있다고 해도, 교감하지 못하는 대상은 감정이 생긴다고 해도 한계가 따른다. (아니면, 다른 종류의 감정이거나.) 물건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애착과 애정은 근원이 다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NPC(Non-Player Character) 같은 존재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쩌면 쓸모없는 질문처럼 보인다. 가상세계의 존재들의 문제라니, 게임에 푹 빠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단순히 공상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만약에 인공지능이 현실화되어, 이른바 컴퓨터프로그램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을 획득하고, (비교적) 인간과 대등하게 대화를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과 세계는 어떻게 바뀌고, 관계와 소통의 의미 등 지금까지 역사가 축적된 통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가 추적하고 천착하는 질문이다.

3. 사육사 애나는 동물원이 묻을 닫은 후 업종을 바꿔서 컴퓨터 분야에서 구직을 하던 중 한 가지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가상동물 디지언트의 사육(교육)을 맡아달라는 것. 디지털환경에 능숙할 뿐만 아니라, 컴퓨터게임도 좋아하므로 걸림돌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사육’이라니, 인공지능에게 과연 적합한 개념일까. 게다가 ‘그것’과 인간처럼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한가. 몇 가지 고민과 생각이 들었지만 애나는 새 직장을 구했다는 생각에 수락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인공지능 사육사란 직업은 현재 디지털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어렸을 때는 다이앤 포시와 제인 구달처럼 아프리카로 가고 싶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는 유인원의 수가 너무나도 줄어 있었기 때문에 동물원에서 일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상 애완동물 조련사가 되라는 제안을 받았다. 애나의 경력자체가 자연계의 축소를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었다.”(16쪽) 게다가 새로운 질문과 문제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그것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4.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몽상은 역사가 시작된 이후 꾸준히 있었지만, 현실적 가능성이 타진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다. 튜링장치가 등장한 것이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컴퓨터와 ‘대화’를 하면서 인간과 구별하지 못하면, 지능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 그것이 ‘인공’일 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유명한 튜링검사다. 물론, 당시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앨런 튜링의 생각 역시 제안에 그쳤지만, 중요한 것은 ‘실현가능성’이었다. (튜링은 1937년 “결정문제 적용과 관련해 계산 가능한 수에 대해서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에서 다섯 가지 부품으로 구성된 가상의 장치를 제안했다. 첫째 무한한 칸이 있는 테이프, 둘째 테이프에 기록되는 유한한 기호, 셋째 기호를 읽는 장치, 넷째 장치의 유한한 상태들, 다섯째 작동 규칙표 현재의 컴퓨터의 기본적인 골격을 모조리 제안했던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폰 노이만이 튜링의 생각에 따라 실제로 컴퓨터를 설계하고 구동시켰던 것. 튜링검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대화’를 지능 유무의 판단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의 존재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시 애나가 등장할 차례다. 

5. 디지털세계가 축약된 역사를 짤막히 재현하는 것처럼, 애나는 디지언트를 ‘교육’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질문들에 차례로 마주친다. 인간은 인공지능과 감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그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등 생각하고 답변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로봇아바타를 제공하는 것은 한쪽에서는 진짜를 팔면서 다른 쪽에서는 모조품을 파는 일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사실 시작부터 문제였다. 과연 디지언트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단순히 프로그램인가, 지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에 준하는 존재로 볼 수 있는가. 손쉽게 답하기 곤란했지만, 애나는 철학자가 아니라 사육사였기 때문에 어쨌든 지나쳐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인간과 달리 가상동물은 플랫폼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과 똑같은 운명이었다. 운영체제가 달라지면 패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가상세계 ‘데이터어스’는 훌륭한 플랫폼이었지만, 역시 여느 프로그램처럼 시대에 뒤처지며 서비스 종료가 다가왔다. 그것은 종말의 신호였다. “그러나 잭스를 비롯한 다른 뉴로블래스트 디지언트들에게 대산의 발표는 사실상 세계의 종말을 의미했다.”

6. 초기에 가상애완동물 서비스를 선점했던 뉴로블래스트 디지언트도 뒤이어 등장한 다른 서비스에 밀리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경쟁력도 트렌드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실질적인 기능도 부재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인간과 교감을 하는 디지언트는 괜찮은 반려 ‘콘텐츠’였지만, 현실의 동물처럼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고, 일부 ‘매니아’를 제외하면 이 때문에 대부분 사용자들은 피로감을 토로할 정도였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작동을 중지시킨 것, 현실에서 반려동물을 버리는 것과 똑같은 행태였다. 인간이 있는 한, 반려동물과 똑같이 디지언트는 영원한 ‘대체재’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애나는 달랐다. 대화를 하면서 교감을 나누는 존재를 패치가 안 돼서 쓸모가 없어진 프로그램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데다가 이제는 수요도 많지 않은 디지언트를 위해서 패치프로그램을 제공할 회사는 없었다. 애나는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