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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피그말리온: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 _book review

sjc014 2017. 2. 5. 22:22

실험실의 피그말리온: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_book review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멀리한 채 조각에만 몰두했다. 결국, 이상(理想) 그 자체인 조각상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이를 불쌍히 여긴 아프로디테 여신은 그 조각상을 실제 여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신화 속 조각가뿐 아니라 역사 속 많은 예술가가 피그말리온의 기적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더 사실감 있는 그림, 더 생생한 그림을 향한 열망은 가상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열망이었다. 재현의 예술은 그렇게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환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생명의 예술을 향한 피그말리온의 기도처럼 예술가들의 집요한 시도가 있었다. 이제 오늘날의 예술가는 ‘살아 있는 재료 bio material’을 통해 예술을 신화에서 해방하고자 한다.

 

바이오 아트가 예술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이전부터 바이오 아트의 역사를 기록한 것도 미술계가 아닌 과학계였다. 오늘날 바이오 아트 작업은 대부분은 바이오 테크에 기반을 두고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오 아트의 장르 형성에 과학기술의 의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바이오미디어 아트’나 ‘바이오테크 아트’같은 미디어 중심적인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중심의 장르 구축은 기술 편향적으로 흐를 맹점이 있다. 

  그래서 책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은 과학 기술 문화의 관심 밖에 있는 바이오 아트도 포괄하기 위해서 바이오 아트를 ‘생명의 예술’로 정의한다. 저자는 생명은 그 자체로 수행적 능력을 지닌 미디어로 보고, 예술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크기의 에너지인 생명력을 모방해왔다고 본다. 생명의 예술은 과학기술을 활용하지만 그것에 경도되지 않고 인간 중심이 아니라 생명의 자율적 활동에 기반을 둔다. 다시 말해 생명을 활용하지만, 그것을 도구화하지 않는 것이다.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은 총 3부로 전체 12개의 소주제로 나뉜다. 1부 ‘생명을 담은 예술’에서는 바이오 아트의 미적 의미를 다루고, 2부 ‘예술과 자연사’에서는 유전학적 예술을 중심으로 문화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마지막 3부 ‘인간을 위한 예술’에서는 바이오 아트의 윤리적 의미를 소개한다.


Edward Steichen's Delphiniums. June 24, 1936 through July 1, 1936.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graph by Edward Steichen


  1부 ‘생명을 담은 예술’은 미술사에 기록된 최초의 바이오 아트 전시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최초의 바이오 아트전시는 1936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스타이컨 참제비고깔>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알렉산더 플레밍이 박테리아로 그린 그림을 모은 전시가 이 전시보다 3년 앞선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사진가인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26년 동안 기른 참제비고깔을 보여주는 전시였고, 살아있는 생명이 미술관에 들어온 첫 사례였다. 많은 사람이 “왜 이 식물들이 미술관에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건 변기를 감상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고 당시 취미 생활로 원예가 유행하고 있었기에 바이오 아트의 첫 전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스타이켄의 전시는 살아있는 작품을 통해 예술과 삶의 사이를 좁힌 사례가 되었다. 이 전시를 시작으로 스타이켄의 계승자 조지 게서트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자신만의 꽃을 만들어냈고, 포르투갈 출신 예술가인 마르타 드 메네제스(Marta de Menezes)는 몬드리안의 유명한 작품을 박테리아로 제작했다. 몬드리안의 대표색이 채워진 아크릴 박스에는 섬유 염료를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투입되었고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색을 잃어갔다.


Marta de Menezes, DECON: DECONSTRUCTION, DECONTAMINATION, DECOMPOSITION, 2007


  첫 장이 예술사를 중심으로 전개가 되었다면 2부는 조금 더 보편적인 문화사, 구체적으로 유전자와 진화를 초점으로 바이오 아트를 소개한다. 찰스 다윈에 의하면 오늘날 동물의 모습은 인간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 첫 장은 비둘기 사육에 대한 묘사인데 오랜 시간에 걸친 인위적 교배와 변이에 대한 기록이었다. 이렇게 사육은 자연의 창조적 활동, ‘비자연적인’ 자연선택이 된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생물학적이면서 문화적인 유전의 진화를 적극적으로 실험한다.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은 식용과 관상용으로 진화해 온 닭을 다시 야생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자 했다. 지텔의 <A-Z 다시 날게 하기 위한 사육 세트>(1993)는 다양한 높이에 달걀을 옮겨 두고 거기까지 날아오른 닭만이 알을 품을 수 있게 했다. 점점 날 수 있는 닭만 번식에 성공하게 되면서 닭은 다시 날 수 있게 ‘퇴화’ 된다. 브랜든 밸렌지는 퇴화를 유도해 이미 멸종된 개구리를 부활시켰고, 앞서 소개한 메네제스는 나비 번데기의 일부에 손상을 입혀 새로운 날개 무늬를 만들었다. 이러한 인공적 변이를 통해 진화의 방향이 다양해지고 자연의 역사는 다채로워진다.


Andrea Zittel, -Z Breeding Unit for Reassigning Flight, 1993


  예술가들의 유전자 실험은 동식물에만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의 예술가 그룹 아르 오리앙테 오브제(Art Orienté Objet)마리옹 라발 장테트(marion laval-jeantet)는 ‘스스로’ 실험용 동물이 되었다. 그녀는 퍼포먼스를 위해 말의 혈장을 수혈받았고, 그로 인해 신체의 내분비계와 신경계가 변화를 일으켰다. <말이 내 안에 살기를>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그녀의 몸속에 진짜 말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혼합은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균열을 가져왔다. 형광 토끼 알바로 유명한 에두아르도 카츠는 “인간 역시 유전물질을 몸에 지닌 유전자 이식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인간과 동물, 식물, 더 나아가 그 이전의 생명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바이오 아트는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AOo, May the Horse Live in me, 2011


  마지막으로 3장은 바이오 아트와 윤리적 문제에 대해 다룬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기 때문에 윤리적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는 바이오 아트가 생명체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고 더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한다고 본다. 마지막 예시로 호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 TC&A(The Tissue Culture and Art Project)의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TC&A는 2000년부터 세포 조직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희생자 없는 가죽>(2004)는 세포 조직을 재킷 형태로 배양했다. 이 재킷을 위해서 오로지 세포의 생명력만이 요구되었고 어떤 동물의 희생도 필요하지 않았다. 2003년 낭트에서 열린 <바이오테크 예술 L’Art Biotech in Nantes> 展에서는 개구리 골격근 세포로 만든 스테이크 고기를 함께 먹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참자가들은 동물을 희생하지 않고도 육식을 즐겼지만 식탁 옆 장식장에는 세포를 제공한 개구리들이 전시되었다. TC&A는 조직 공학의 이면을 폭로하면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Victimless Leather: A Prototype of Stitch-less Jacket grown in a Technoscientific ‘Body’, 2004 / Disembodied Cuisine, 2003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에게 여인 조각상은 자신이 지배할 대상이거나 도구가 아니라 사랑할 동등한 개체였다. 바이오 아트는 인간, 조금 더 넓게는 동식물로 한정한 생명권에 대한 시야를 유전자, 세포, 바이러스까지 확대하고,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생명에 대한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예술이라는 방법으로 보여주면서 생명에 대한 개념을 더 확장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 할수록 이를 이용한 더 많은 작품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인식하는 것은 오늘날의 피그말리온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