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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씨네마, 김수용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5. 15. 10:38


나의 사랑 씨네마, 김수용, 씨네21, 2005년.

이 책은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하여 2000년 <침향>에 이르기까지 109편의 한국영화를 찍었던 김수용 감독의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 이야기이다. 어색하지만 우리들은 김수용 감독의 처절한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나의 기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군사독재정권 하의 강력한 통제 대상으로 검열을 통해 한국영화들이 누더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결국 강화된 검열정책에 항의해 1986년 <허튼소리>를 끝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김수용 감독의 참담한 기록들, 그리고 “나는 말하였고 내 영혼은 구원 받았습니다”라는 희망을 이 책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한국영화사를 논할 때 많은 이들이 1965년부터 70년대까지를 한국영화의 전성기로 본다. 지금 대중들에게는 잊혀 진 과거의 시절이지만, 6년간 총 제작편수가 1,173편을 기록하면서 한해 평균 줄잡아 200편씩 제작되어 아시아 영화의 선두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았던 시절이다. 이 시절 한국영화에 활력이 넘쳤던 것은 바로 문학으로 훈련된 인력들이 정열적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쇠퇴시킨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정부의 잘못된 영화정책과 검열이 어렵게 찾아온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다.

중앙정보부 직원의 동의 없이는 상영 허가가 나지 않고, 김수용 감독의 영화들의 경우에도 <병신과 머저리>는 영화제목이 관객을 모독하고 있으니 즉각 제목을 변경하지 않으면 검열필증을 낼 수 없다는 으름장에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엉뚱한 제목을 붙일 수밖에 없었고, <야행>은 53군데의 검열의 가위 세례를 받고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화려한 외출>은 영화에 청와대 정문이 나온다고 감독과 촬영기사가 경찰에 연행되고 검열에 의해 청와대 정문은 영화에서 사라지는 등, 오죽하면 유현목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영화를 만들면 “영화 찍는 시간만큼 경찰서나 중앙정보부에 끌려 다녀야 했다”고 회상을 하였겠는가? 김수용 감독이 잠정 은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1986년 <허튼소리>의 경우 검열기관에서는 “관객은 감독보다 수준이 낮기 때문에 사전에 말썽 생길 곳을 제거하는 게 영화 검열”이라는 소리와 함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장면 14군데를 당당하게 잘라낸다. 검열기관의 가위질을 거쳐야 영화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한국영화를 멀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힘들고 참담한 현실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인들의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김수용 감독은 이야기한다. 60년대 초에는 가령 바위 뒤에 숨은 적병을 저격하는 장면을 찍을 때, “바위 뒤에 숨었다가 튀어나오는 배우에게 실제 M1소총으로 실탄 사격을 하면서 촬영을 하였고”, 1967년 <사격장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군부대 실제 포격 훈련이 있는 날을 골라 대포알이 날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촬영을 감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김수용 감독은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내며 영화를 찍었던 모두의 노력이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만드는 힘이 되었다고 말 한다.

김수용 감독은 이 책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들의 망각은 물론이고 감독이나 평론가들의 기억속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는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오히려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그 시절에 대한 침묵을 깨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김수용 감독의 이런 이야기는 각각의 개별화된 경험으로 존재하는 특성화된 사건으로 그 시절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들에게는 그 개별적이고 특성화된 사건들의 영향이 공유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 의미를 갖는다.


글. 최승우 (anticp@hanmail.net)
영화인회의 사무차장
사회문화연구소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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