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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ologie du langage visuel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7. 18:55



기호학은 그 창안자인 소쉬르가 말한대로 ‘사회적 삶 속에서 기호들의 삶을 다루는 일반과학’이다. 그 가운데 시각기호학(visual semiotics)은 특히 사회적 삶 속에서 시각기호들(이미지)의 삶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다. 보여지기 위해 생산된 모든 기호들은 시각기호들이다. 따라서 회화, 조각, 영상, 광고, 건축, 연극, 영화, 사진 등은 모두 시각기호학의 대상이 된다. 문학 텍스트 역시 시각이 관여한다는 점에서 시각기호에 속할 수 있다. 물론 시각이 관여하는 대다수의 매체예술 역시 시각기호로서의 속성을 갖는다. 시각기호학은 이러한 시각기호들이 관여하는 시각 커뮤니케이션과 의미작용의 현상들을 탐구한다.
시각 커뮤니케이션은 비구두(nonverbal) 커뮤니케이션에 속한다. 그것은 음성/문자 기호가가 관여하는 구두(verbal)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른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소쉬르 이래 기호학은 ‘구두 커뮤니케이션’의 탐구에만 몰두해왔다. 따라서 이미 문자/음성 기호가 관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심층 체계와 법칙들에 대한 연구 성과가 상당할 정도로 축적되었다. 이것이 바로 언어학(linguistics)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쉬르는 기호학의 아버지이자 언어학의 아버지다!) 언어학이 충분히 제 자리를 찾은 이후에 기호학은 비로소 비구두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구두 커뮤니케이션, 특히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까? 생각해볼 수 있는 길은 크게 세가지다. 하나는 ‘언어학’ 또는 음성/문자 기호학, 더 나아가 문학 기호학의 이미 밝혀진(?) 체계와 법칙을 시각기호에 적용하는 길이다. 예컨대 시각 이미지를 언어로 번역한 다음에(시각이미지에 이름을 붙인 연후에), 그 결과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초기 롤랑 바르트의 시도가 그렇다. 바르트는 『모드의 체계』에서 패션잡지에 묘사된 여성의복을 언어화한 연후에, 그 결과인 ‘글로 씌어진 의복(vêtement écrit)’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또는 이름 붙여진 ‘도상’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 또는 도상해석학을 모범으로 삼는 기호학 연구들(예를 들면 꼬뀔라&페이로트)도 그 예이다. 이미 만들어진 체계에 기대기 때문에 이 길은 편리한 길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각기호’와 ‘시각커뮤니케이션’의 고유한 특성들은 배제된다. 따라서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각기호학이라 말할 수 없다. 두 번째 길은 시각기호의 특성을 ‘언어화할 수 없음’, ‘이름붙일 수 없음’으로 보아 그것을 언어의 상징체계, 또는 고정된 코드에서 떼어놓는 길이다. 이 경우 시각기호는 언어화된 상징체계, 또는 코드화된 인습체계를 공격하거나 무화시키는 수단으로 부각된다. 가령 ‘지표’, ‘흔적’, 또는 ‘상처’, ‘풍크툼’을 부각시키는 근래의 논의들이 그렇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시각기호와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체계와 법칙을 탐구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며, 해로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이 두 번째 길은 심정적으로는 납득이 되지만 ‘시각기호’에 관한 한 너무 성급하고 편협한 태도를 취한다. 애당초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논자들 대부분은 시각기호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그 체계와 법칙을 구성하고자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길은 시각기호(이미지)를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증오하는 신비화의 길로 내몬다. 여기서 그것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그러나 실상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 마법의 지팡이다.
세 번째 길은 시각기호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그 체계와 규칙성, 법칙들을 규명해보려는 길이다. 말하자면 시각기호에 (구두)언어의 그것에 비견되는 체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논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캐나다 기호학자인 생 마르탱(Fernande Saint-Martin)이다. 1987년에 발표한 Semiologie du langage visuel (Presses de l'Universite du Quebec)에서 생 마르탱은 기호가 계열체(paradigm)와 결합체(syntagm)로 짜여진다는 소쉬르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먼저 계열체를 검토하면서 그녀는 시각 언어가 구두언어처럼 단순하고 고립된 단위들(음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눈의 중심와와 주변시각의 상호작용에 따라 맥락의 변화에 응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가변적인 자극덩어리를 단위로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 가변적인 자극덩어리가 바로 컬러램(coloreme)이다. 이러한 컬러램의 구성과 재구성에 관여하는 것이 시각변항들인데, 색채/색조(color/tonality), 경계들(boundaries), 텍스처, 크기(dimension), 벡터성(vectoriality), 그리고 면에서의 위치(position in the plane)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에 의하면 이러한 변항들은 항상 시각장의 모든 지점에서 공통적으로 현전하고 상호작용한다.


그러면 이 가변적인 단위들은 어떤 규칙들에 의해 서로 결합하고 변형되는가? 생 마르탱은  주관적 지각 절차, 그리고 시각장에서 컬러램 그 자체에 의해서 생성되는 상호작용이 이러한 결합과 변형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관여하는 규칙들은 다음의 세가지다. 1) 위상학적 관계 /게슈탈트 관계/ 색채 상호작용에 따라 컬러램들을 재편성하는 규칙 2) 각각의 시각 매체에 고유한 에너지 하부구조(energetic infrastructure) 내에서 컬러램들의 삽입에 의해 생성된 규칙. 3) 다양한 원근법 코드 또는 체계에 각인되는 거리 효과를 주재하는 양상 규칙(modal rules). 이렇듯 시각기호 특유의 계열체과 결합체를 구성함에 있어 생 마르탱은 특히 시각기호와 관련된 ‘공간 경험’을 크게 강조한다. 그녀에 의하면 ‘공간성’이란 ‘자율적인 조직 형태 내에서 다중 요소들의 동시적 공존’이다. 그녀는 시각기호의 단위와 단위들의 결합규칙을 이러한 공간성에 입각해 체계화함으로써 ‘변별적 지각 공간의 광범한 다양성’을 해명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상에서 간략히 검토한 생 마르탱의 시각 기호학은 장 피아제를 위시한 동시대 지각/인지 심리학자들,  르네 톰(René Thom), 가스통 바슐라르와 같은 수학, 과학 철학자들, 그리고 칸딘스키와 같은 예술가들의 조형론에 두루 기대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논의는 자연과학 및 조형이론의 언어와 개념에 낯선 이들이 접근하기에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지각’및 공간성을 존중하는 그녀의 시각기호학은 종래 구두 언어 분석 모델의 제약에서 벗어나며, 그 이전 시각기호의 분석에서 흔히 사용되던 이항대립이나 규범/일탈의 틀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한 분석 및 이해를 가능케 하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장점을 갖는다.      
유사-자연과학의 성격을 갖는 생 마르탱의 기호학은 근래 기호학의 일반적 경향, 즉 문화 중심의 인간 기호학을 넘어 자연과 생명의 영역으로 기호학적 원근법을 확장시키려는 경향을 반영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미술사와 예술철학의 반응은 여전히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다. 이들이 보기에 생 마르탱의 기호학 역시 언어학 모델을 시각기호에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하며 시각기호의 가능성을 차가운 틀 속에 응결시키는 잘못을 범한다.  


* 이 글은 불어 원본을 저자 자신이 번역한 영어본 Semiotics of Visual Language (Indiana University Press, 1990)을 참조했다.
* 생 마르탱 외에도 시각기호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 시각기호학을 구성하려는 논자들이 많다. 예컨대 Groupe μ, Traité de signe visuel (Paris; Edition du Seuil)가 그렇다.
     

       
글.홍지석 홍익대학교 예술학전공, 강원대ㆍ홍익대 강사 (aa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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