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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정보 사회에 대한 통찰, 그림의 혁명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7. 01:11


역사시대 이전의 인류는 외부세계를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텍스트가 존재하기 이전, 문자 이전 시기의 인식의 단계에 머무르는 인류는 세상을 하나의 장면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장면은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지식을 전달하였다. 문명의 발전 과정 속에서 문자의 발명되었고 이것이 역사시대의 시작이다. 이를 기점으로 인류는 모든 인식을 텍스트를 통해 하기 시작하였다. 그림에서 문자로의 인식 매개체 변화는 역사시대 속에서 인류의 발전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진정 이러한 인간의 인식 변화의 과정이 ‘발전’의 과정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일상적으로 우리가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의문은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형태 변화에 있어서도 의문을 가지게 한다. 빌렘 플루서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서 『그림의 혁명』은 뉴테크놀로지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의문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전체를 하나의 장면 즉 그림으로 인식하는 지식의 습득 방법으로부터 텍스트를 읽어내는 지식 습득 방법으로의 변천은 역사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표식이다. 역사시대(歷史時代) 이전 선사의 인류는 형태 즉 그림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였다. 글자를 읽어내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닌 장면으로 지식을 인식하는 것은 동시성을 가지고 총체적인 지식으로 정보는 입력된다. 이렇게 입력된 코드는 상징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로서 이를 통해 인간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상징이란 다른 현상을 대체하는(‘의미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일종의 대체행위다.

즉, 커뮤니케이션은 그것이 ‘뜻하는바’에 대한 체험을 대체한다. 인간은 상징의 의미와 직접적인 관계를 상실했기 때문에 코드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소외된’ 동물이다. 이러한 인간을 더 심한 소외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텍스트이다. 그림을 통해 동시성을 통시화 했던 인간은 그림을 행으로 풀어 놓음으로써 그림보다 구체적인 체험으로부터 한 발짝 더 떨어져 나온다. 이러한 과정이 플루서가 말하는 코드화된 세계의 일부이다. 텍스트를 통해 만들어진 역사적 의식은 새롭게 도래한 테크노-코드로 인하여, 이전에 그림이 텍스트에 의해 전치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차원의 소외를 생성해낸다.

그림의 혁명은 세 개의 장으로 되어있으며 각 장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디자인에 대한 플루서의 소고들을 정리한다. 플루서는 거시적, 미시적 시각을 넘나들며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에 이르는 문화의 진행과정을 짚어간다.

플루서에게 키치는 문화로 되돌아가는 폐기물의 재순환이며, 대화란 선행된 정보들의 불개연적인, 예측 불가능한 결합의 전산화이며 담론이란 대화를 통해서 생산된 정보들이 계속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전화라는 매체에서 문자는 소멸되고 숫자는 어떠한 잉여적 요소도 없는 하나의 코드로서 작동한다고 언급한다. 현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코드화된 세계로 현대세계를 파악하고, 미래의 우리의 발전상에 대해 예측하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해 정확히 한다.

<그림의 최후통첩>에서 플루서는 미디어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그림’, 카메라, 텔레비전, 비디오에 대해 분석하면서 나아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이나 권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더 나아가 플루서는 '정보 사회의 디자인'에 대해 논한다. 각각의 소고는 잠재적 현실에 대한 분석들로 채워져 있다. 마셜 맥루언이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미디어를 설명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플루서는 오히려 모호하다 할 만한 키워드를 가지고 정보 사회를 설명한다.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빌렘 플루서를 ‘빛나는 안경알과 잿빛 수염을 지닌 예언자’라고 지칭하였다. 키틀러의 언어를 빌려 플루서를 말하자면 ‘뉴테크놀로지 시대, 새로운 소통의 예언자’ 쯤으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미디어가 대폭주하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그가 더 이상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함을 애석해하며,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대한 그의 명석한 이해를 공유하고 싶다면 차근차근 이 책의 소고들을 꼼꼼히 읽어볼 것을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