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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이 진실이다. 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16. 13:00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사진을 간직하고, 그걸 사람들과 공유하곤 한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또한 그와 같아서 수많은 사진을 보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길 즐기는 편이다. 몇 년 만에 급조한 내 취향으로 접한 사진들엔 인간 군상의 수만 표정을 담은 초상사진들, 그들이 머물렀을 세상에 대한 사진들이 있다. 어떤 사진은 관습화된 시지각의 외부 혹은 구멍처럼 무의식의 영역을 폭로하기도 한다. 혹은 세팅된 그 시·공간의 구색을 맞춰주는 소품으로써의 인간들을 보여주는 결과물/ 실존물이 되기도 한다. ‘보는 것’ ‘보이는 것’ ‘보지 못했던 것’ ‘낯설게 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계속 생산하고, 또 그걸 찾아보게 되는 이유인지 모른다.

<뒷모습>이란 제목의 이 책 또한 사진의 그 같은 묘미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특히 사진해설인 동시에 사진 속 세계와 언어로써 충돌하는 에세이를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총 쉰 석 장의 사진은 브라사이, 두아노와 같은 반열인 프랑스의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1923~99)의 작품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에두아르 부바. 그는 프랑스, 인도, 포르투갈, 스웨덴, 홍콩, 일본 등지를 다니며 그가 만났던 생의 적나라한 소박함을 ‘뒷모습’에 투영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코멘터리를 쓴 사람이 프랑스 현대문학의 최고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미셸 투르니에(1924~)다. 사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집에 자신의 글을 붙여 책으로 내놓은 바 있고, 부바와도 ‘뒷모습’(1993) 이외에 ‘캐나다 여행수첩’(1974), ‘열쇠와 자물쇠’(1996) 등의 작업을 함께 했다.

투르니에는 서문에서 부바의 사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동성애자들의 견갑골들은 그들이 남자임을 숨기지 못한다. 인간의 뒷모습이 보여주는 이 웅변적 표현… 뒤쪽이 진실이다! 부바는 자신의 작품에서 등 뒤의 진실을 답사하고 여기에서 해학,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오는 감칠맛 나는 즐거움을 음미할 자리까지 마련해 준다.”

나는 ‘뒤쪽이 진실이다’라고 폭로하고 있는 사진과 글을 바라보며 사회학자 고프만을 떠올렸다. 그는 일상, 삶을 연극에 비유했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위계로 세팅된 무대 위에서 개별 구성원들의 충실한 역할 수행이라는 연기로 이루어진 연극 말이다. 부바가 다가갔던 ‘흑판에 글씨를 쓰고 있는 소녀, 노르망디 해변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는 화가, 열대의 숲 속에서 포즈를 취한 나부(裸婦), 쟁기를 지고 가는 농부, 엎드려 기도하는 신자들, 물통을 들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정원사, 파도를 바라보는 가난한 연인들, 튀튀를 입고 있는 발레리나..’ 등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 정지된 그 시간 속에서 - 영원히 ‘역할 수행’ 중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상의 한편엔 연기의 영역(front stage)으로부터 벗어난, 연출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고프만은 이를 무대의 후면 영역(back stage)이라 명명했으며, 부바가 보여주는 후면 영역이 뒷모습에 해당한다. 미처 간수하지 못하고 어떻게 방어할 수도 없는 뒤통수, 정수리, 어깨가 자신들을 무차별적으로 강타해버리는 햇살 탓에 순진하다 못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부바는 흑백 필름으로 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지만 카메라의 프레임에 따라 현실에서 툭 떨어져 나온 이들 뒷모습은 왠지 고독하다.

하지만 투르니에는 독자가 자기 연민에 빠져들 찰나에 한 걸음 떨어져 이를 조망해보는 여유를 준다. 표지 사진에 대한 그의 글을 보면, 그는 여기서 훤히 드러나 버린 외설스런 목이 ‘별스런 헤어스타일(커트 머리) 때문에 쓰다듬기 좋은, 그래서 여성스런 모습이 된다고 설명한다. 차가운 겨울 바닷가에 빈약하게 서있는 연인의 뒷모습에서도 그들의 가난함을 발가벗은 부자의 수영에 대비해가며 정답게 읽어간다. '뒷모습'은 여기서 그 참다운 비밀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그 빈약함 때문에 오히려 효과적이고, 간결해서 오히려 웅변적이고, 약점이 강점이 되는 것이다.

역자 김화영 교수는 후기에서 부바의 사진을 바라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진 속 다양한 뒷모습을 보다가 살아 움직이는 삶의 앞모습을 만나면 즐겁다. 하지만 종이 위의 죽음이자 현실에서 목격하는 친근한 추상인 사진에서 본 뒷모습은 相으로 남아 그 즐거움의 배경을 끈질기게 상기시켜준다. 이것이 삶의 미적 균형을 경험하게 해주게 아닐 런지... 이 책에서 보이는 수많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가식 없는 나와 가면을 써야하는 나를 아울러보는 총체성을 경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진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내게 이 책은 사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했다. 기호학이라는 도식적인 틀에 따라 사진을 분석할 것인지, 투르니에처럼 삶의 경험과 그것을 온전히 연결 지어 볼 것인지- 둘 다 의미 있는 접근이겠지만 사진은 기계적 결과물이라기보다 실재성을 폭로하는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을 보며 스스로와 대화해보고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글. 옥미애 연세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ok-reall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