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Beyond Experience of Dual Space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2. 17. 19:17



정글주스(Jungle juce)….이는 지난 9월에 청담동에 둥지를 튼 갤러리 엠의 첫 번 째 전시명이다. '정글 주스'는 여러 종류의 알코올과 주스를 섞어서 만드는 도수 높은 알코올 음료로,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다른 매체를 가지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함께 모아 기획한 전시를 빗대는 말이라고 한다. 첫 번째 기획전시에서도 드러나듯이 갤러리 엠은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성별, 나이, 전공 등의 개인적인 배경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포용하며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제작해 나가는 작품을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현재 진행되는 두 번째 전시는 어떠한가? 오늘날,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달로 인해 초기 군사의 전유물로 쓰였던 컴퓨터는 60년대 말에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컴퓨터의 대중화는 사이버문화 시대를 초래했고,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컴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예술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특히, 컴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네트워크의 개념이 예술적 공간에 실행되면서 가상현실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확대되었다. 예술적 차원에서 컴퓨터는 비디오 이미지와 그 외의 다른 이미지들의 제작, 사이버네틱 조각, 환경, 광디스크 등의 작품생산을 추구한다. 어떤 작가들에게 있어서 컴퓨터는 자신의 작품을 수월하게 제시하기 위한 보조적인 도구의 기능을 할 뿐 이지만, 또 어떤 작가들의 경우 에 그것은 시각적 작품을 제작하는 개념 그 자체가 된다. 이처럼 갤러리 엠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매체들이 컴퓨터 안에서 조작, 변형되어 제작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매체의 정체성은 컴퓨터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변해왔다.1 모든 뉴미디어객체들, 처음부터 컴퓨터로 만들어진 것이든 아날로그가 전환되었든 그 객체들은 수적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환권의 작품은 수적으로 계산이 가능한 비트의 공간에서, 디지털화를 통해 이미지가 조작, 변형, 왜곡된다. 이렇듯 비물질적인 공간에서 제작된 디지털 이미지는 출력을 통해 조각의 직접적인 오브제가 되면서 물리적 공간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이 작업의 결과물은 가상과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공간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연 / 2003/ FRP / 214×15.5×21cm


이환권의 작업이 디지털의 특성을 그대로 적용했다면, 정연두와 이시우의 작품은 전통적인 매체를 통해 디지털을 창조해 낸다. 정연두의 작품 <로케이션 #12>는 사진으로 연출되기 어색한 장소인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여, 이 공간이 마치 컴퓨터 속에서 가공된 듯한 장면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작업은 컴퓨터를 통해 변형된 이미지가 아니다. 이시우의 작업 역시 디지털 그래픽을 통해 완성된 색감을 전달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회화를 매개로 디지털화를 재현해 낸 것이다. 또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구축되어 온라인 공간상에서 존재하는 아바타의 이미지를 실제의 공간으로 이동시켜 놓은 듯한 이 작품은 하나의 공간 안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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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ayama Hirofumi / Vectorscape-015 / 2002 / C-print / 40.6 x 50.8 cm / Ed. 1 of 5


 동경종합사진학교를 졸업한 가타야마 히로후미의 작업은 사진의 이미지로만 나타낼 수 없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재매개화 되어 디지털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가타야마는 광각렌즈로 실재현장에서 찍은 사진, 즉 가상이 아닌 실재 사진을 가지고 새로운 이미지 창조를 위해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이미지의 변형을 시도한 것이다. 가타야마의 시도는 컴퓨터 기술을 통해 전례 없던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 내며, 아날로그 이미지의 단순한 복제를 넘어선 수행방법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영상미술 분야를 대표하는 그룹, 블루수프(bluesoup)는 알렉스 도브로프(Alex Dobrov), 알렉산더 로바노프(Alexander Lobanov), 다니엘 레베데프 (Daniel Lebedev) 그리고 발레리 포트코넨(Valery Potkonen)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그룹은 1996년 결성되어 현재 사진, 비디오 영상 작업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비디오아트가 예술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기 훨씬 이전부터 비디오 영상물만을 고집하며 활동해온 블루수프는 러시아의 현대미술분야에서 비디오 애니메이션분야를 부각시킨 대표주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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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 2003 / Lightbox / c-print / 2800mm * 800mm


이들의 작업은 실재의 공간을 직접 촬영한 듯한 느낌을 전달하지만, 영상물의 이미지는 컴퓨터기술로 제작된 이미지들이다. 실재의 공간처럼 꾸며진 가상적 공간을 상정하는 영상물은 물리적 실재공간에 놓이게 되면서 가상과 실재가 혼합되어 있는 듯 한 세계를 선보인다. 가상현실의 문자적인 해독방법과 이를 실제적인 경험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단계에서 올리버 그라우(Oliver Grau)는 가상과 실재가 혼합되어 있다는 뜻으로 혼성실재(Mixed Real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2 이처럼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듯 보이는 그들의 작업은 컴퓨터로 구현된 가상의 공간에 관람객을 개입시킨다.

가상과 실재, 컴퓨터기술, 아바타, 비디오영상물, 사진 등의 다양한 개념들을 한 장소에 모아 놓은 이번 전시는 오늘날, 점차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아날로그, 디지털 그리고 가상과 현실의 이분법적 경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컴퓨터로 구현되는 가상현실 작품은 특정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3차원에 놓이게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현상은 시각의 확장 뿐 아니라, 관람자의 지각변화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적인 지각방식과는 다른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오늘날 예술의 다양한 변모를 이번 전시를 통해, 혹은 갤러리 엠의 또 다른 전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선보여지길 기대해 본다.


1. Lev Manovich, The Language of New Media, 뉴미디어의 언어, 서정신 옮김, 생각의 나무, 2004, p. 70.
2. Oliver Grau,  Virtual Art, From Illusion to Immersion, Gloria Custance(trans), The MIT Press, 2003, p.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