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Media Architecture, 양만기 개인전_캔버스가 곧 스크린이다.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1. 15:42



모든 예술가들은 기술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각 시대 혹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다. 물감, 붓, 캔버스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1600년대 화가와 고가의 복잡한 기구를 사용하여 장편영화를 제작하고 편집하고 상영하는 1990년대의 영화제작 집단은 크게 다르다. 물론 어떠한 시대건 다양한 테크놀로지가 존재하며, 그 안에서 옛것(old) 새것(new)이 동시에 공존한다. 따라서 뉴미디어의 등장이 반드시 올드 미디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1) 이처럼 21번째의 개인전을 예화랑에서 선보인 양만기의 작업에는 다양한 매체들이 공존한다. 회화와 조각과 컴퓨터로 이루어진 디지털 이미지의 조화로 완성되어진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다양한 수용의 경험을 제공한다.



양만기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의 특징은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소통의 문제이다. 기존에 회화를 전공한 그가 캔버스를 통해 작품과 대화하는 방법을 인식했다면, 다음단계에서는 기존의 매체와는 또 다른 결과물로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이는 점차적으로 관객과 작품 사이에 직접적인 경험을 위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한 매개화 작업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회화와 영상, 조각, 디지털 이미지의 혼합적 복합물로 구성된 전시장 각각의 작품들은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의 사고를 요구했다. 회화와 디지털이미지의 감상의 경계 혹은 조각과 첨단기술의 조화는 더 이상 한 종류의 감각에만 의존하는 작품 감상방식을 해체시켰다.



더 나아가 컴퓨터의 탈물질화 성격을 띠는<Sound dot>은  텍스트, 그래픽, 사운드 등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시각적 매체, 청각적 매체 등을 모두 디지털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됨으로써, 그러한 매체간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었고, 모든 매체는 동질적으로 처리 가능하다. 이러한 컴퓨터의 기술적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디지털 예술작품은 전례 없던 예술현상으로 관람객과 투명성의 경험을 담보한다.2) 이처럼 다양한 감각적 기능들을 모두 흡수시키는 양만기의 디지털 작업은 끊임없이 인터페이스의 또 다른 과제를 남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디지털 매체의 등장과 파급으로 인한 매체들 간의 상호작용과 상호흡수는 일반적인 경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실험적인 매체를 통한 인터페이스작업에 열중했던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는 또 다른 코드로 작품을 관객에게 어필시킬 수 있다면, 그 점은 단연 작품의 세련됨과 톡톡 튀는 캔버스의 색감처리이다. 이는 Media Architecture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이니 만큼 현대사회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생산해 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세련된 색감 때문에 작품의 다양한 기능들이 전시장에서 다 보여 지지 않았음에 아쉽다. 왜냐하면 시각적인 즐거움 때문에 캔버스 속과 Laser cutting 속의 스크린의 사운드는 잊혀 지기 쉬운 아이템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 Jhon A. Walker, Sarah Chaplin, Visual Culture,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7, 『비주얼 컬쳐』, 임산 옮김, 루비박스, 2004, pp. 364~365.
2) 3차원 공간에서 투명성의 경험은 미디어속성을 지워내면서 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투명한 인터페이스는 그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이며, 이에 따라 관람자는 더 이상 미디어를 대하지 않고 그 대신에 미디어의 내용과 즉각적인 관계를 맺는다. Jay David Bolter &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ida, Massachusetts: The MIT Press, 1999,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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