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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풍속화집_을지로 순환선

aliceon 2008. 4. 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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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보문고를 들러 이리저리 부유하며;; 책들을 둘러봤더랍니다. 그러다 문득 책 한 권의 표지가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이미지입니다.
유독 이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제가 본 첫 단체전에서 강렬하게 시야에 들어왔던 작품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003년 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진경 - 그 새로운 제안>전에 전시되었던 최호철 작가의 <을지로 순환선(220X90cm, 2000)>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이쪽에 발을 들여놓은지 겨우 5년밖에 지나지 않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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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책으로 출판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미지출처)
을지로 순환선. 거북이북스라는 출판사에서 최근 출판되었습니다. 집어서 훑어보니 제가 미술공간에서 보아왔던 작업들 말고도 각종 월간지에 개제되었던 시사만화와 기타 스케치 작업 등 작가님이 작업하고, 기록하고, 서술해 온 서울 생활에, 서울의 삶의 이야기집이자 작품집이었습니다.

음...현대판풍속화라고나 할까요.
시사만화와 민중미술로 유명하신 분이라 그런지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한 호흡 한 호흡이 그림 구석구석 배여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민중미술가로서의 그의 역사적 위치, 회화와 만화의 경계선상의 오고감의 위치, 단원 김홍도 등의 조선시대 풍속화로부터 이어져 온 풍속화로서의 모습 등 미술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담론이 만들어지기 때문에라도 미술로서 읽혀졌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을테지만 그것 말고도 다시한번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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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산, 105x74cm, 1995

처음 이 작업을 보았을 때에는 사진적인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기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장이나 사람들과의 거리와 눈높이는 사진의 그것입니다. 풍경을 그릴때처럼 너무 멀지도, 정물화를 그릴 때처럼 가까이도 아닌, 사진기를 들고 서서 피사체를 바라볼 때의 그런 시선의 위치입니다.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공간의 범위는 거대한 화폭에 담아내는 넓은 서울시내 곳곳의 조망은 화각 180도를 넘나드는 어안렌즈의 화각을 연상시킵니다. 하나의 사건, 한 눈에 담는 피사체 하나의 포착이 아닌 그 주변부 모두를 아우르는 시선입니다. 그런 넓은 화각과 큰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엄청난 디테일의 모습에서는  베허부부의 테크니션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작업은 반 사진적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정적이며 한발짝 떨어져 있는 시선입니다. 고정되어있는 시점이 아닌, 상정한 하나의 프레임안에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 복합적인 시점의 모습입니다. 르네상스 회화의 1점 원근법의 모습도, 사진에서 드러나는 기계적이고 일정하게 정돈된 구성이 아닌 왜곡된 시선과 배열의 모습을 보입니다. 사진으로는 표현되기 어려운 여러 사건들이 한 평면위에 모여있습니다. 하나의 배경아래, 하나의 주제 아래 모여진 그 시간, 그 공간의 군상들은 1/300초, 1초, 10분, 1시간이라는 기계적이고 분절적인 시간의 기록이 아닌 한덩어리 시간의 모습이고 우리가 살아온 한 시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미술'이라고 부르는 경계 안에 들어와 있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담론을 생성하고 담론 안에서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다른 문화들과 구분되기 위한 참 아슬아슬한 경계점이라고나 할까요... 한편으로 인간과, 사회와, 삶을 투영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회의 주류와 다르고 충격적이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힘과 활력, 한쪽으로의 지나친 편중을 막는 대립항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분리되어 하나의 장이기 위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으면서도 지금 보이는 작업처럼 일러스트, 만화, 회화의 틈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이런 작업은 매체를 달리 하면서 그 위치와 효과 역시 분명히 달라집니다. 그런 것들이 이렇게 책 한권에 모이니 또 의미가 틀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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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립도서관(2005, 뉴스메이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들. 더 나은 조건의 포장을 위해 사각의 틀에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가두는 공공도서관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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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개(2003, 작은 책)
"그래, 언제라도 지금처럼 활개 펴고 당당하게 살려무나. 그리고 아빠 너무 밀지마.."


답답한 현실의 모습이 많습니다. 분명 답답한 상황에 답답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지만, 어찌보면 현실 고발적인 모습이지만 짜증나지는 않습니다. 온기를 느낄 수 있다랄까요. 그의 시선과 서술은 결코 서민 이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80% 이상을 구성하는 서민들의 모습이죠. 정말이지 아침드라마와 완전 반대의 극점을 보이고 있다라는 조악한 비유를 해 봅니다^^ 결코 멋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고 지겨울정도로 함께하는 모습이지만 질리지 않고 호소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네요. 한 이미지에 꼭꼭 담겨있다가 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화악 풀어져 한가득 물들이고 적셔줍니다. 무언가 변하고, 무언가 채워지죠. 이런게 미술이 가진 힘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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