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film & animation

스피드레이서(Speed Racer, 2008)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15. 01: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될만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화제를 낳으며 개봉한 '스피드레이서'.
2명의 워쇼스키가 만든 작품이니만큼(아..형제냐 자매냐 하는 논쟁은 소모적인지라..)
조금은 강박에 가까운 테크놀러지의 집착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말 그대로 영상 정보가 '쏟아지는' 장면, 장면들은 새로운 시대의 영상 혁명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러티브는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원작인 '마하 고고고'의 내용을 알고 있고, 모르고 있다해도 심지어  '스피드 레이서'라는 이름을 지난 주인공이 나오는 레이싱 영화에서 권선징악이 안 이루어 질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감독들이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것은 4번의 레이싱 경기 장면과 2번의 격투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이외의 것들은 저 장면들을 이어주는 고리에 불과한 것 이지요.

연결 고리(?)인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50년대 미국 홈드라마를 베이스로 전형적인 헐리우드 작품의 주 테마인 '가족주의'에 포커싱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뭐 이 이야기야 굳히 할 필욘 없을것 같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다른 '영상 혁명'이라고 불리는 레이싱 장면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소위 '카-푸'신이라고도 불리는 이 중력 무시의 화면들은 실로 엄청난 컬러와 빛을 뿌려줍니다. 재미있는것은 처음엔 그 황당함(?)에 기가 막혀 하다가도 3번째 레이싱 대회쯤 되면 황당무게함(?)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잊게되고 빛과 스피드, 그리고 컬러 폭격(!)에 정신을 놓아버리게 된다는 거죠. 색채는 전체적으로 원색을 중심으로 주인공인 스피드에겐 '빨강', '노랑', '파랑'등으로 배색되어 있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악인에겐 '보라', '황금'색 위주로 채색되어 있는데 이는 색이 가지고 있는 위계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원근법이 무시되어진 장면 구성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는 그 먼 옛날 오손웰즈가 '딥-포커스'이라는 기법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정보를 취사 선택하게 했던 지점에서 한발자욱 더 나아가려는듯 보입니다. 주로 롱-테이크 같은 사유가 가능한(즉 템포가 느린) 시퀀스에서 사용되곤 했던 딥-포커스, 즉, 이러한 '다중 초첨 방식'이 쏟아질듯한 컷과 색채의 홍수속에서 인지->사유가 아닌 '시각'으로 '촉각'을 느기게 하니 말입니다. 앙드레 바쟁이 딥-포커스에 대해 말했던 '컷을 나누지 않고도 세계의 존재론적 리얼리티가 다 담기고 리얼리티의 모호함이 드러난다'라는 정의가 새롭게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관객에게 다양한, 즉 취사 선택이 가능한 화면 정보 배열법을 쓰며 그 화면 정보를 선택할 새도 없이 몰아치는 새로운 영상 문법들. 어쩌면 워쇼스키들은  마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아냐리투 감독의 '21그램'에서 보여지던 '정신없이 몰아치는 컷 편집'속에서의 새로운 논리 재배열법(혹은 관객의 능동적인 사고)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들이 주장하는 '실사 아니매 영상' 기법을 통해 말이지요 :) 게다가 밑천이 뻔하게 보이는(그래서 금방 질리거나 더이상 신기하게 보이지 않을것 같은) 초반의 현란함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마지막 레이싱 장면에서 관객을 정서적으로 폭팔하게 하는 연출은 '뻔하면서도' 두 주먹을 꼭 쥐게하는 농밀함을 보여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보도 자료들을 통해 보여졌듯 그들은 이 영화의 99% 이상을 블루스크린 안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화면내의 모든 정보를 '그들만의 세상'을 위해 '그들의 뜻 대로' 재 배치, 창조 되었다는 것이죠. 이는 저맥키스 감독의 '베오울프'와는 또 다른 지점이며, 프랭크밀러의 '신시티'와도 또 다른 곳에서의 영상 문법 진화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제 진화인지..아니면 그저 '발견'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것 같지만 말이지요)

감독(들)은 영화도, 애니매이션도 아닌 또 다른 그 무엇(?)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작품인 매트릭스를 뛰어 넘기 위해 너무 나간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은 분명 이 영화를 즐기면서(!)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영화안에 잘 녹아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실험을 과연 대중 영화의 범주내에서 관객들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줄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말이지요. ^^ 

* 첫번째 레이싱에서 보이는 과거의 형이 몰던 차 잔상은 레이싱 게임을 한번이라도 즐겨본 사람이라면 알 '고스트 머신'의 인용이지요. 아, 오타쿠 양반들. ^_^ 

* * 몇년 전에 나왔던 '아우토 모델리스타'라는 게임이 생각나더군요. 이 작품은 신선하게도 카툰렌더링(!)된 레이싱 게임이었는데, '스피드레이서'에서도 종종 쓰인 '속도감을 내기위한 빗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지요.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속도감이 남달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