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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_장 뒤뷔페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17. 18:26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똑바로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광기는 확실한 도움이 된다. 원래 광기는 고삐를 끊고, 기억을 말소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광기는 외부의 영향과 지배로부터 몸을 지키는 여러 방법을 알려 준다. 그리고 이러한 광기의 도가니 속에서 지적 예술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강인한 작품이 태어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며, 다시 말하지만 도대체 어디부터가 광기인지 그것이 문제다."

- 1959년 장 뒤뷔페가 설립한 아르 브뤼트 컬렉션의 카탈로그에서

전통적인 미술 재료를 거부하고 타르 ·모래 ·유리 등 여러 종류의 정크(폐물)의 집적을 통한 작품 제작으로 '모든 버려져 있던 가치들을 새롭게 주목받도록 이끌어 낸' 장 뒤뷔페는 아이들의 드로잉, 슬럼가 벽의 낙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나 정신 이상자들의 그림 등 문화적 전통의 영향을 받지 않은 모든 종류의 개인적 경험의 즉각적인 기록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미술계 내부에 만연한 엘리트주의와 가식, 인공적이고 모방적인 자기선전, 자본의 힘 등에 질려 있던 프랑스의 장 뒤뷔페(1902-1985)는 자연스럽게 독립적인 예술을 동경하게 된다. 그는 본래 예술 창작이란 내적 충동과 정신 착란적 고독, 주관적인 모험심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정한 창작이란 전통과 유행 양식에서 자유로우며, 모든 사회적 타협을 초월하고 정신적 광기와 자폐적인 내적 욕구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945년 그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 브뤼트(Art Brut)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고, 아동, 정신 장애자, 정신병자, 미술계와 동떨어진 사람 등 미술제도 바깥에 은밀하고 묵묵히 존재하며 충실히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을 생산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웃사이더들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그린 '덜 사회화된' 그림들을 보고, 그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독창성에 감탄한 적이 누구나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외부에서 요구하는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이 보는 세상을 그리며, 그러므로 아이들의 그림은 그들의 감정과 정신 상태와 더욱 순수하게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자신에게 온전하게 충실한 상태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가지고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 사회적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치 생존의 유일한 조건이라도 되는 것 마냥 절대 고독 속에서 탄생한 작품, 광기 속에서 그 어떤 의심과 회의 없이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힌 상태에서 재현된 이미지들과 세상. 뒤뷔페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창의적 예술이며, 아르 브뤼트 예술가야 말로 백지처럼 기성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충실히 자기 자신의 분신을 낳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빌 트레일러, 마르틴 라미레스, 헨리 다거, 하인리히 안톤 뮐러, 모튼 바틀릿을 포함해 그가 보여주고 있는 27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은 풍요로운 원초성과 내밀한 무의식, 광기의 치유와 부채질, 자유분방한 형식과 그 어떤 사조에 포섭되지 않는 양식 등을 보여준다. 유명한 에니메이터 퀘이 형제(Quay Brothers)는 스위스의 정신 병원에 있었던 하인리히 안톤 뮐러(1896-1930)의 회화에 영향을 받아 The Epic of Gilgamesh(1985)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헨리 다거(1892-1973)의 삶과 작품에 관한 책과 다큐멘터리 필름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디오사방(idiot savant)을 연상시키는 자폐적이고 고립된 이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아웃사이더 아트>는 예술가와 비평가, 관객들에게 좀 더 본원적인 지점으로 돌아가 예술의 본원적 기원과 역할과 가치, 예술 작품과 작가와의 관계, 작가의 예술과 사회의 예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광기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상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아웃사이더 아트>는 예술가들에게는 고착되고 마비된 시선과 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예술과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과 상태에 대한 고찰의 시간을, 독자와 관객들에게는 불완전하고 미숙하게 보일지라도 충분히 탁월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즉, 외부의 시선과 보상에 무관심한 채로 마음껏 그림을 그렸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크레파스와 연필, 사인펜과 색연필을 들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충동을 선사할 것이다. 


글. 권민정.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siempreflo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