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thisAbility vs. Disability’ : 창의적 감각으로 장애를 만나다 _exhibition review

yoo8965 2008. 7. 30. 01:23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의 확장을 통한 미술의 체험은 최근 미술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 새로운 감각의 발견으로 장애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전시가 토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마샬 맥루한에 따르면 모든 미디어는 인간 신체의 확장이다. 인간은 본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을 지니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은 잠재되어있던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여 시각중심의 사고로부터 벗어나 감각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 전시는 테크놀로지 중심인 기존의 미디어 아트 전시와 주제 면에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 병삼씨는 그간 매체 예술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이나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사회, 정치적인 이슈들을 간과했음을 지적한다. 그는 미디어를 통한 감각의 새로운 재발견을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미술에 있어 장애라는 주제가 다루어질 때에는 자칫 내용이 심각해지거나 오히려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인식시키는데 그치기 쉽다. 그러나 ‘thisAbility vs. Disability’ 전시는 장애라는 주제를 구호적이거나 무겁지 않으면서 세련된 방식으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비장애인들이 감각의 전이를 경험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안드레아스 하이네터 박사가 기획한 어둠속의 대화전시와는 비슷한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듯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안에서 일반인과 시각장애인은 완전하게 동등하다. 아니 오히려 시각 외에 다른 기관의 감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들이 일반인들의 손을 잡고 가이드한다.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시각중심의 미술보다 소리, 움직임, 상호작용의 특징을 지닌 미디어 아트는 장애인들에게 더욱 효율적이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창의적 감각으로 장애를 만나다라는 전시 부제와 같이 미디어 아트와 장애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는 바람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며 보는 그림, 목소리를 인지하여 움직이는 로봇, 심장박동을 감지해 연주하는 유리종 등 시각 외에 청각과 촉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국내외 미디어 아티스트 열 팀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김해민의 <
dot . a scene = sinθ at the sea _ tactuaL [si:gak] series #2
점입가경點入佳境 . 점으로 시작된 빛나는 바다>는 만짐으로써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공감각적인 작품이다. 소라에 새겨진 점자를 손으로 읽으면 화면에 넘실대는 파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생생한 파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손을 통해 볼 수 있고 눈을 통해 들을 수 있다.




David A. Parker
<Heartbeat Carillon 심박편종>은 자신의 심장박동을 유리종의 울림으로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두 손으로 센서를 잡으면 심장박동신호가 척추뼈를 연상시키는 다섯 개의 유리종으로 전달되어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할 경우 각기 다른 템포의 종소리는 오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작품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하나의 인간 그 자체이다. 어떠한 차별과 구별도 없이 동등하게 울려 퍼지는 유리종의 맑은 소리는 장애라는 편견과 선입견을 향해 울리는 경종의 소리처럼 들린다.

 



박진완
과 이재중의 작업은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감각이 아닌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순간, 찰나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사진은 현재를 붙잡아두려는 몸부림이며 존재를 대신하는 허상이다. 디지털 사진은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Vestiges of Being 존재의 흔적>의 사진은 찰나의 이미지를 포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 오래도록 멈춰 있는 피사체를 담아낸다. 카메라 앞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이미지는 더욱 또렷해진다. 작가는 거동이 불편하여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의 경우 <Vestiges of Being 존재의 흔적> 앞에서 가장 또렷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한다. 가상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뮬라시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존재를 의심하고 확인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각자 나름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간의 이미지가 아닌 존재의 흔적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아날로그적 시도가 화려한 작품들 사이에서 조용하게 마음을 붙잡아놓는다.

 

휠체어의 출입과 이동을 고려해 전시장내 불필요한 부스를 없애고 전시 동선도 매우 간결 하게 짜여 있다. 도슨트가 수화로 진행되는 세심한 배려도 다른 미디어 전시와는 차별이 되는 부분이다. 미디어 아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의 만남과 그것의 미학적 가능성 혹은 철학적 접근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미디어 아트가 가진 확장된 감각, 확장된 감성을 통해 장애라는 주제를 다루어 사회적인 소통을 시도한 이 전시가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모색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 김 현(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