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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된 카오스_노르베르트 볼츠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4. 14:32

카오스로의 회귀? No. 새로운 카오스와의 조우

일명 ‘트렌드 분석의 왕’으로 통한다는 독일 미디어 이론가이며 철학자인 노르베르트 볼츠는 자신의 별칭의 유래처럼 현시적인 현상들을 파악하고 이론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독일계 학자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여러 이론가들 중에 독일계 학자들은, 특히 독일 철학의 전통 하에 현대성을 가미한 게다가 독일계 특유의 냉철함과 조밀한 특유의 이론적 전개를 통해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볼츠는 이러한 독일계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보다 접근하기 쉽게 현대(現代)의 뉴미디어 세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의 설명은 범문화적이며, 비경계적이다. 경제에서부터 디자인, 미학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를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들을 제공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 책의 제목인 ‘컨트롤 된 카오스’는 볼츠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관통한다. 태초에 존재하던 카오스는 신에 의해 정렬되었으나, 현대에 도래한 카오스는 조절된((Das) Kontrollierte) 것이다. 이것이 볼츠가 제시하는 디지털 시대를 파악하는 키워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라면, 표면에 대한 볼츠의 이해이다. 표면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은 다만 볼츠만에 국한 된 것은 아니지만, 예시를 통한 볼츠의 설명은 꽤 친절하다. 뉴미디어 세계에서의 표면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볼츠는 본문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게 되는 사물들조차 마이크로화와 전자화되면서 블랙박스로 변환된다고 언급한다. 기능은 사용과 별개의 문제가 되어, 그 기능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p.95) 블랙박스와 같은 표면이 현대의 표면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볼츠는 표면의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디자인의 과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들로부터 벗어나서 비물질적인것․비가시적인 것․미디어적인 것(p.96)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표면은 내면을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을 갖는다. 볼츠는 19세기 프로테스탄트인 쇠렌 키에르케고르를 인용하는데, “미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바깥으로부터 기대한다.”는 것이다. 비판적인 지적이지만 그 가치 평가를 배제한다면 명석한 지적이라고 볼츠가 평가한 이 인용문에서는 내부와 외부의 중요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내적 완결성과 별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외적 완성도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시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변환되는 주변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과 기능이 아니라 체험과 감성이며, 상품은 정신적으로 풍족한 상태를 요구한다. 포스트모던적 시장은 하나의 ‘축제화 된 소비’(아널드 겔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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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 by Troika digital sculpture for British Airways
 

“모든 것을 표면으로,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표면을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문명의 피부적 효과”(막스 벤제)

디지털화된 시대에서 ‘표면’은 새로운 숭배의 대상이다. 볼츠는 심층 없는 표면을 강조하며 이것은 현시대의 범분야적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심층없는 표면이 잘 드러나는 것은 도시의 건축물이며, 그 시작은 17세기부터 시작된 빛을 매개로한 건축의 탄생이다. 볼츠는 17세기 말 인공적인 빛이 도시에 들어간 이후로 나타나는 대도시의 건축술을 ‘빛의 건축술’로 명명한다. 도시의 조명의 도입은 “영화론적 건축술”을 만들어낸다. 볼츠의 논의에 따르면 “대도시의 ‘영화론적’ 건축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건축물의 조명이 아니라 빛의 순수한 구성적 적용이라는 사실이다. 대도시의 시지각의 가능성은 어떤 총체적인 전자적 조작에 종속된다. 건축물은 더 이상 단단한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것들은 이제 네온과 전기로부터 생성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건축은 더 이상 소재적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라스베가스나 도쿄와 같은 도시들이 오늘날 이미 보여주고 있는 것은 어떻게 건물들의 전면이 초차원적인 영상화면들의 테두리로서 기능하는가이다. 즉 영상화면 건축이라는 것에 관해 얘기가 될 정도이다.(p.283)” 이러한 빛의 건축술은 단지 건축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대상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성격인 전기적 생산에서 우리는 우리가 대하는 실체가 소재적 실체가 아닌, 빛(전기)의 생성물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볼츠는 현재가 가지고 있는 카오스적 성격에 대해 표면이 아닌 내면으로, 근원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그의 견해는 디지털 문명의 미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각을 구체적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컨트롤된 카오스’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미디어 이론서로 추천하고 싶다.

저자소개

노르베르트 볼츠 ( Norbert W. Bolz )

저자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는 1953년 출생으로, 베를린 자유 대학 철학과 교수를 거쳐 1992년부터 에센 대학 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소장 철학자이자 미디어 이론가이다. 그는 “트렌드 분석의 왕”(『포쿠스Focus』지)이라는 호평과 “언어의 거품”(『슈피겔Spiegel』지)이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으면서, 독일 전통 사상과 현대 미학의 줄기 속에서 뉴 미디어와 최신 트렌드를 조망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다독과 다작으로 유명한 그의 저서는 독일 철학과 미학, 현대 프랑스 철학, 뉴 미디어와 컴퓨터, 디자인, 사진 영상, 그리고 사회·문화적 최신 트렌드 분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 지난 10년 동안 Stop Making Sence(1989), Theorie der neuen Medien(1990), Auszug aus der entzauberten Welt(1991, 교수 자격 논문), Walter Benjamin(1991; 『발터 벤야민: 예술, 종교, 역사철학』, 서광사,2000), Eine Kurze Geschichte des Scheins(1992), Die Welt als Chaos und Simmulation(1992), Philosophie nach ihrem Ende(1992), Kult-Marketing(1995), Ruinen des Denkens(1995), Risikante Bilder(1996), Das Pathos der Deutschen(1996), Die Sinngesellschaft(1997), Die Konformisten des Andersseins(1999), Die Wirtschaft des Unsichtbaren(1999) 등의 저서와 Computer als Medium 등 몇 권의 편저서를 출간했다.
(문학과지성사 저자소개 참조 http://www.moonji.com)

- 목차 -

001. 머리말 ...19
제1장. 카오스와의 화해 ...39
제2장. 더 많은 돈을 시장의 카오스 관리 ...69
제3장. 표면의 의미 ...93
제4장. 복잡성의 관리 ...117
제5장. 포스트모던 정치 ...175
제6장. 역사의 종말 이후의 삶 ...213
제7장. 휴머니즘으로부터의 작별 ...233
제8장. 뉴미디어의 세계
제9장. 아직도 예술인가:새로운 주도과학으로서의 미학 ...349
011. 용어해설 ...383
012. 참고문헌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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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트 볼츠 지음 | 문예출판사 펴냄
디지털 문화가 궁극으로 치닫고 이미지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시대에 인문학의 의미는 무엇이고 휴머니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대상이 탈문자화되고 비트와 영상으로 환원되는 디지털 시대에 인문학이 갖는 위기의식의 실체를 규명하고 21세기에 대한 통찰과 비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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