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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영화제_alic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5. 11:04



새로운 시각,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영화제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은 ‘국제영화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 해에 열리는 영화제의 개수가 자그마치 9개에 달하는, 자그마한 땅덩이 치고는 그 숫자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영화제가 열리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도시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국내 메이저 3대 국제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를 제외하고도 이름 앞에 ‘서울’이라는 타이틀이 덧붙는 국제영화제는 저마다 노동, 여성, 청소년, 만화애니메이션, 가족 등 장르를 세분화하거나 일반 상업영화의 주류 관객층을 벗어나는 다양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고자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기획되고 있으며 나름대로 각자 소기의 성과도 누리고 있다. 물론 영화제의 개수와 그 나라 문화예술 수준의 척도가 비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좀더 다양하고 신선한 영화를 접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이 영화제의 도시 서울은 꽤 스펙터클한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글을 통해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그러나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걸어 온 두 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 : Experimental Film Video Festival In Seoul)’과 ‘레스페스트 영화제(RESFEST Film Festival)’다.
앞서 열거한 각종 영화제의 타이틀을 통틀어 가장 진보적인 영상미와 혁신적 테크놀러지가 결합된 영상을 선보이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이 두 영화제는 오늘날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주는 대안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는 점에서 우선 공통의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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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실험영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제는 많지 않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올해 5회째를 맞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이하 EXiS)은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더욱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으며 지난 4회 영화제에서는 전 세계 43개국에서 550편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험영화 작가들 다수가 우리나라를 찾는 등 그 위상과 입지가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져 왔다. 미디어의 통합, 매체를 넘나드는 실험을 통해 하이테크 기술과 아날로그적 감성의 충돌이 빚는 신선함이 바로 EXiS의 매력이라면 레스페스트 영화제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영상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EXiS와 가장 큰 차이를 갖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스페스트 영화제는 본래 글로벌 투어 형식으로 기획된 포맷이 사실상 2006년에 폐막되었는데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는 간략한 레스페스트의 역사를 먼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레스페스트 영화제는 1997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미술관에서 조너선 웰즈에 의해 ‘저해상도 영화제(The Low Resolution Film Festival)'라는 명칭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전 세계 도시들을 돌며 상영되는 글로벌 투어 형식의 영화제로 발전했으며 한국이 참여한 것은 2000년부터이다. 레스페스트는 디지털, 하이브리드, 최첨단, 혁신적인, 트렌디함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국에서 강산이 한 번 변하는 기간인 10년 동안 전 세계 6대륙 45개국을 투어하는 글로벌 영화제로 발돋움했으나 2006년 영화제 창립자인 조너선 웰즈가 회사에서 물러나며 사실상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유난히 관심과 호응도가 높았던 한국의 레스매니아 관객들을 위해 레스페스트 코리아 측에서 2007년에 영화제를 독자적으로 기획하여 그 맥을 잇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으나 동일한 형식의 영화제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그러나 레스페스트 영화제는 국내에서 큰 규모로 치러지는 메이저급의 국제영화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협소하고 인지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영상을 만드는 전문가 집단과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훨씬 큰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툴을 배우고 접하는 통로가 되며 외국의 작가들에게서 직접 강의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유일한 축제로 기록되어 왔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다루어진 형식은 영화, 뮤직비디오, 디자인, 광고, 모션그래픽, 애니메이션, 다큐 외 각종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등 장르를 막론하였으며 행사 역시 상영회와 세미나, 이벤트, 콘서트 등 하이브리드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된,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축제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제가 바로 레스페스트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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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S가 존 조스트, 백남준과 같은 인지도가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들과 미국의 리튼 피어스, 프랑스의 파트릭 보카노프스키 등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실험영화작가들을 함께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면 레스페스트는 그간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스, 크리스 커닝햄과 같은 뮤직비디오, 영화감독들을 발굴해 내고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 왔다.(작년에 관객상을 수상했던 ‘한’의 나홍진 감독은 1년도 되지 않아 <추격자>를 가지고 충무로를 뒤흔든 대형 신인감독으로 상업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렇게 그동안 두 영화제를 중심으로 선보여진 작가들의 독창성과 실험적 영상세계는 오늘날 영상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내고 즐기는 젊은 세대들의 감각을 자극했고 그러한 감성은 곧바로 자연스럽게 주류 상업예술로도 연결되어 그 지평을 확장해 나가는 데 일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실험정신과 나날이 발전하는 새로운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융합이 일어나는 최전선과 관객이 조우할 수 있는 장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기존의 대중영상문화가 정체하지 않고 진일보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던 것이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위기라 불리는 요즘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책으로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한국 영화의 ‘퀄리티’와 ‘다양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만 관객 시대 한국영화 시장의 성장이 질보다는 양적인 측면에 치우쳐져 왔음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 영화시장의 파이를 나눠 먹고자 덤벼든 ‘유사’영화인들의 프로의식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분명 관객들에게도 있다. 더 좋은 영화, 더 퀄리티 높은 영화를 찾으면서도 그러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한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는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물을 주지 않는 화분에서 예쁜 꽃이 피어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토양을 다지는 기능을 그간 EXiS와 레스페스트가 함께 수행해 왔다면 레스페스트의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는 이제 EXiS가 모든 임무와 기대를 고스란히 넘겨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영화제의 성격과 컨셉은 분명 서로 차이가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EXiS가 더 많은 대중, 레스페스트의 관객들까지 흡수할 수 있는 영화제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EXiS는 경쟁 부문 뿐 아니라 비경쟁 부문을 작년부터 따로 개설하여 실험성과 내러티브가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상영하는 등 일반 대중의 관심과 참여도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EXiS가 기타 영화제와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이 역시 철저히 ‘실험영화’에만 집중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험성’과 ‘대중’의 접점을 넓히는 길은 EXiS로서는 결단코 쉽지 않은 과제일 것이다. 올해 5회째를 맞는 EXiS는 9월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 스페이스셀에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iS가 세계 각국의 젊은 실험정신이 교통하는 국제적 페스티벌로 발돋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영상작가와 매니아와의 만남과 소통만이 아니라 ‘실험영화’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관객층을 더욱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잘 차려진 EXiS라는 밥상에서 숟가락을 들어 마음껏 즐기는 것은 이제 대중에게 남겨진 역할이다.

작년 EXiS의 슬로건은 바로 ‘시점확장’이었다. 그 슬로건처럼 언제나 변화를 꿈꾸고 끊임없이 새로운 비주얼을 구현하고자 하는 영상 작가들과, 그들의 노력과 꿈을 함께 공유하고 독려하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만나 제 3의 ‘시선’이 만들어지는 영화제, 그 곳에서 불어올 신선한 바람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 한편 조너선 웰즈는 (레스페스트보다) 더욱 획기적이고 진보된 영상축제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가 과연 어떻게 그 약속을 지킬지를 지켜보는 것 역시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설레고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신은주
shinse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