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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3. 16:42


철골구조와 커튼월(curtain wall), 엘리베이터 등의 근대기술에 의해 건축은 점차 지역적 차이가 사라지고 세계 각국 도시에서 국제양식의 고층 오피스빌딩 같은 동질적 공간과 형태를 만들어 냈다.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전이 어떤 양식의 외관도 가능하게 만들고, 내부 기능이 감춰지는 대신 외부 이미지인 디자인에 의해 건축의 정체성과 가치가 결정되게 된다. 이른바 탈물질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를 압도하면서 건축은 소비사회에서 패션의 유행과 다름없게 되었으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근대사회의 기계미학적 선언은 급속도로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 현대 정보화 시대의 건축들이 더 이상 장소나 구조에 구속되지 않고 점점 표피적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간에는 오토캐드(Auto Computer Aided Design)와 같은 컴퓨터 툴(tool)의 발달이 매우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모니터 상에서는 어떠한 디자인도 가능하게 되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실제로 그러한 건물의 시공을 가능하게 만든다. 정보화 시대의 현대건축이 기술에 힘입어 실험적 디자인과 실천적 미학으로 낯선 형태와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미래적 감각으로 무장한 건축은 이제 스스로의 강력한 물질적 구축에서 벗어나 은유적 이미지의 정보를 끊임없이 전달하기 시작한다. 디자인 프로세스의 디지털화, 즉 컴퓨터를 통한 디자인 프로세스의 혁명적인 자동화는 더욱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그렉 린(Greg Lynn)이 자리하고 있다.

그렉 린은 1964년생의 미국 건축가로 컴퓨터를 활용해 매우 급진적인 디자인을 수행하고 있으며, 단순히 디자인 전개과정에서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컴퓨터에 의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가변적인 대상이 수학적 알고리즘에 따라 모핑(morphing)해 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고,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형상들을 건축적 해결안으로 제시하는 방법이다. 모핑은 어떠한 형태를 가진 한 개체가 자신과 무관한 다른 개체로 변형되는 인위적인 과정이며, 소스 데이터와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규정되어 만들어진 산출물은 낯설고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건축물로 인식되지 않기에, 건축가 스스로도 자신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복잡한 힘들의 상호 작용을 계산하는 조선(shipbuilding) 엔지니어의 프로세스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한편 그렉 린의 이러한 극단적 노선의 한 단면을 <발생학적 주택(embryological house)> 프로젝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기본적인 모핑 알고리즘만 선택하고 아이디어의 전개 과정을 전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에 맡긴 채, 컴퓨터가 다수의 해결안을 생성해내면 그 제안들 중 일부를 선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영상은 해당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데, 메인화면 우측의 1번부터 8번까지의 숫자로 표시된 컨텐츠를 확인하면 관련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유튜브(youtube) 사이트로 바로 연결된다. 더불어 그렉 린의 작업과 관련된 다수의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과연 이것을 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혹은 과연 종래의 ‘집짓는’ 건축가의 역할은 사라진 것인가라는 매우 구조적이고도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렉 린의 최근 작업은 2008년 11월 제11회 베니스건축비엔날레(Venice Architecture Biennale)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장난감 재활용 가구(Recycled Toy Furniture)’이다. 앞서의 숫자로 표시된 메뉴와 함께 메인 화면의 중앙 및 좌측에서도 이 ‘샤방하고 말랑한’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건물을 넘어선 건축(Architecture Beyond Building)’이라는 주제를 택한 이번 전시는 건축이 단순히 생산된 건물이 아님을 강조하고 물리적인 실체를 넘어선 건축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고, 그에 호응하여 그렉 린은 또 다른 건축적 선언에 가까운 설치물을 제출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디지털 형식과 관련된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 건축의 의미, 건축미학, 건축기술 등 전통적이고 고유한 건축의 관심사들을 드러내 비엔날레의 주제를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반성완 편역,,『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p.228.)에서 건축이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고유한 수용방식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건축물의 수용은 촉각과 시각의 두 가지 방식을 통해서이며, 관광객이 유명한 건물 앞에서 주의력을 집중하여 그 건물을 관조하는 식으로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시각적 관조와는 달리 사람들은 건축을 사용에 따른 익숙함을 통해 촉각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인데, 따라서 사람들은 그림을 보듯 건축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살면서 몸을 길들이고 경험하며, 그것이 일상에서 건축이 수용되는 방식이고 대중이 건축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의 이러한 언급이 있은 지 70년 정도가 흘렀을 뿐이지만, 건축의 수용방식에 관한 변화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과연 건축을 만질 것인가, 혹은 클릭할 것인가.

글. 김회철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큐레이터 agog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