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_할 포스터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23. 10:01


할 포스터의 책은 유럽의 미디어 미학이나 철학자의 눈이 아닌 현대미술에서 출발한 시각문화 읽기란 점에서 미술사 전공자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각문화에 관심인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극히 신랄한 그의 어조는 그의 논점에 동조하든 아니든 간에 글 읽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 (Design and Crime and other diatribes)』라는 충분히 자극적인 제목은 건축가 아돌프 로스의 1908년의 저술 『장식과 범죄(Ornament and Crime)』에서 차용한 것이다. 아돌프 로스가 20세기 초, 모든 사물이 무차별적인 장식의 공격을 받았던 미술과 문화를 비판했다면, 할 포스터는 그가 ‘정체성의 브랜드화’, ‘디자인의 전횡’, ‘스펙터클의 진보’라고 표현하는 우리의 시각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또한 건축과 디자인의 우세로 문화의 영역에서 미술과 비평이 길을 잃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할 포스터는 미술사가와 문화비평가로서의 견지를 유지하면서, 20세기 초 산업과 문화의 격변과 그로 인한 시각예술에 대한 태도와 비판의 틀을 빌어 지금의 문화적 상화에서 나타나는 문화와 미술의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시종일관 벤야민과 아도르노에 대한 논의에 기대고 있으며, 그가 얼마만큼 이 둘의 강한 영향력 안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 시대와 예술에 대한 날선 비판을 서슴지않을 때면 아도르노의 편에 가깝지 않다 싶다가도, 이 책의 말미에서 희망과 구원을 결국 진정한 예술에서 찾으려는 태도를 보면 벤야민의 품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 건축과 디자인, 제2부 미술과 아카이브가 그것이다. 할 포스터의 미술비평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지금까지 알려진 할 포스터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2부의 내용부다는 1부가 훨씬 더 흥미로운 논의로 느껼질 것이다. 1부에서 할 포스터는 온갖 것이 디자인이라고 여겨지는 상황, 특히 그것이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와 결탁한 오늘의 현실을 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동시대 디자인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의 일부분이고, 디자인은 명백하게도 우리를 당대 소비주의의 시스템에 우겨 넣으려는 주요 에이전트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 극단적으로 그는 가엾고 어리석은 부자는 풍요로운 인터넷과 토털 디자인이 제공하는 새로운 아르누보 세상에서 미래의 모든 삶과 투쟁과 개발과 욕망으로부터 배제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의 비판적 관점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디자이너 브루스 마우나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램 콜하스를 그야말로 난도질 내고 있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에 대해 그는 관광객들의 탄성이나 자아내는 스펙터클한 관중성(Spectatorship)의 장소에 가깝다고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제도적으로 컬렉터와 큐레이터 연합체의 등장으로 비평이 대체된 미술계를 다루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론적 분석은 말할 것도 없고 비평적 평가마저도 거의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술매니저나 작가들은 이제는 이론적 분석과 비평적 평가를 능동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날카로운 비판의 끝에 할 포스터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일까? 그는 결국 아방가르드의 회복을 호소하고 있으며 실천들에 초점을 맞춘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전에 아도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부분 중에 하나는, 끝나지 않는 회의주의 끝에 결국 이 사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뭘까 하는 것이었다. 반면 할 포스터는 항상 그가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을 언급함으로써 그의 입장을 명쾌하게 드러낸다. 그는 제임스 콜먼, 윌리엄 켄트리지, 카라 워커, 그리고 스탠 더글라스 등의 영상작가들을 언급하며 그가 말하는 아방가르드란 결국 오래된 형식의 잔여물로부터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단일한 시각 구조 속에서 다른 시간의 표지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 매체는 재귀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내용에 열린 방식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며, 형식이 종종 역사적으로 침전되어간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이다.



<목 차>

서문

Ⅰ부 건축과 디자인
1장 짓밟힌 교양의 체제
2장 디자인과 범죄
3장 대목수
4장 건축과 제국

Ⅱ부 미술과 아카이브
5장 현대 미술의 아카이브
6장 미술사의 모순들
7장 극단론에 빠진 미술비평가들
8장 엉뚱한 송장을 차고 앉은 장레식

주해
찾아보기

글쓴이
할 포스터 Hal Foster 1955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미술비평가. 1981년부터 87년까지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의 수석 편집자로, 1987년부터 91년까지 휘트니 미술관 독립프로그램의 비평 및 전시연구 부문 책임자로 활동했다. 1983년에 그가 편저한 『반미학The Anti-Aesthetic』은 모더니즘의 종말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를 본격적으로 언급한 에세이로서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화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옥토버October』 『LA 타임스 북리뷰The Los Angeles Times Book Review』 『뉴 레프트 리뷰The New Left Review』 등에 논문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 책 『디자인과 범죄Design and Crime』(2002) 외에도 『재암호화Recodings』(1985) 『실재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al』(1996)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출처:인터넷 교보문고
www.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