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202

네오토피아: 데이터는 우리를 어떤 미래로 이끌고 있는가.

우리가 만들고 있는 데이터가 증가하고 있는 속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기하급수라고 표현하는 그 너머에 있다. 구글의 회장 에릭 슈미트는 2012년 컨퍼런스 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2003년까지 인류가 쌓아 온 데이터는 약 5엑사바이트(5천만테라바이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틀만에 동일한 양의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다." 이틀만에 5천만 테라바이트이다. 지금은 이보다 더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저장을 위해 하루에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2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 2천 5백만개가 넘게 필요한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냥 흐르는대로만 놓아둔다면 유전자에 각인되거나 구전이 되는 일정부분을 제외하고 자연히 사라져버릴 지식들을 우리는 에너지를 들여 강제적으로 보존하고 쌓아왔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

기술에 대한 편집증적 고찰의 자세: 테크네 파라노이아_exhibition review

오늘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사용하는 상품과 기계가 어디에서 시작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 지는가를 알아내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기계와 상품들은 사용자로 하여금 ‘쉽고 편리함’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가장 복잡한 과정과 시스템은 이면에 숨긴 채, 최대한 간편하면서도 혁신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곁을 장악하기를 시도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깊은곳에 침투하고 일부를 이루며 인식과 행동을 제어하는데 탁월한 모습으로 일조한다. 지난 11월 플랫폼 엘 에서 열린 전시 는 김예슬, 두루필(곽주영)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팀 BAR 25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전시다. 일정한 기술에 입각한 인간의 제작활동 일체를 뜻하는 테크네(Techne)와 강박을 뜻하는 파라노이아(Pa..

사운드의 잔해:아르코미술관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 _exhibition review

의미는 혁명을 통해 획득된다. 빨주노초파남보만 있는 세계에 연두색이 불쑥 “나도 색깔이다.”라고 외치며 의미를 찾는 싸움. 의미망 안에 들어오지 못한 무의미한 존재들의 의미 찾기.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사실 존재 조차 알지 못했던 그들의 아우성을 있는 듯 없는 듯한 엠비언스 정도로 여기며 흘려 보냈던 존재들. 앞만 보고 걷다가 넌 도대체 무슨 소리를, 왜 하고 있었던 거냐며 그제서야 머쓱한 생각에 뒤돌아보게 하는 그 소리들. 아르코 미술관, 에 있었다. 예를 들어, 헤바 Y 아민 작가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준 소리와 같은 것이다. 이집트 당국이 폐쇄한 인터넷을 대신해 개발된 을 통해 이집트인들은 음성 메일을 교환하고 전화로 자신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닿기 위해 ..

세마 벙커 <비전 온 비전 (Vision on Vision)> : 실험영상의 다양한 변주 _exhibition review

“비전 온 비전 Vision on Vision” 르메트르 콜렉션 Lemaître Collection 전시 리뷰 – 실험영상의 다양한 변주 미디어아트 분야를 중점으로 전시기획하는 서울시립미술관 벙커(SeMA Bunker)에서 약 20여년 동안 실험영상을 수집해오고 있는 르메트르 부부(이자벨 Isabelle, 장-콘라드 르메트르 Jean-Conrad Lemaître)의 작품 11점이 공개되었다. 전시는 모두 스크린 기반의 순수 영상작품들로, 1984년부터 2017년 최근까지의 작품들이 시대와 나라, 문화권 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영상작품들은 스크린 크기에 변주를 주어 오픈공간과 블랙박스 안에서 영사되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에밀 자시르(Emily Jacir)의 (2003)..

독일 현대사진전 <Presentation/Representation> : 현대사진을 읽는 개념적 필터 혹은 ‘이후의 매체’를 진단하는 리트머스용지 _exhibition review

1. 지난 3월 성곡미술관은 독일국제교류처와 괴테인스티튜트와 함께 독일현대 사진전을 열었다. 여기서 많은 작가와 작품을 선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 사진의 스펙트럼을 가늠해 보기에 충분해 보인다. 전통적인 스트레이트 인물사진(알브레흐트 푹스Albrecht Fuchs), 사진을 이용한 혼합설치(클라우스 괴디케Claus Goedicke), 일상적 풍경사진(카린 가이거Karin Geiger), 21세기 아시아판 인물학(니콜라 마이츠너Nicola Meitzner), 아카이브에서 사용되는 사진형식의 작업(페터 필러Peter Piller) 등, 현대미술에서 사진이 어떻게 현상하는지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진의 짧은 역사를 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라는 제목도 이에 호응한다. ‘제시와 재현’은 ..

나의 뮤즈, 모두를 위한 디바 /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_exhibition review

북서울 미술관 (SeMA) 1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을 본적이 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 화려한 복고풍의 셔츠와 나팔바지, 통굽을 신은 그녀는 차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살짝 뒤로 기대어 긴 다리를 곱게 뻗은, 앳되면서 빛나는 그녀의 웃음에 나는 금방 사랑에 빠졌다. 짙은 스모키 화장 뒤 그녀의 맨 얼굴이, 가려지지 않은 눈빛이 궁금했다. 지난 8월 10일, 북서울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에 들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생기있다 못해 도발적인 눈빛을 한, 통넓은 나팔바지 입고 금방이라도 사진에서 뛰쳐 나올 것 같은 역동성을 가진 한 여성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시절 내가 보았던 흑백 사진 속의 그녀가 겹쳐졌다. Figure 1. 김추자 사진 전시장에 진열된 사진 속의 여성은 ..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갈래에서: 코리아나 미술관 <The Voice>_exhibition review

​ 후두, 입, 코, 성대, 인두, 목젖, 혀, 입술, 등 신체의 기관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고 다양한 음역과 발음을 꽤나 복잡하게 발성하는 목소리는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지구에서만 내고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어쩌면 굉장히 존재론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사람의 성별과 나이는 물론이고 키와 몸무게까지 추론할 수 있는 목소리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로써 큰 상징을 내포한다. 올 해 어느날, 한 정치인이 목소리를 바꾸고 나타난 일을 떠올려보자. 그가 새로이 개발한 목소리를 외치자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말들이 오갔다. 한 목소리의 변화를 둘러싼 이 술렁임에 있어서, 우리는 목소리의 변주를 일련의 변화의 상징으로 이해하며, 목소리란 비단 몸에서 나와 말을 전달하는 소리가 아닌 우리가 동원하고자 하는 감정과 의..

제약 속에서 공간을 창조해내는 마법: 용적률게임 _exhibition review

“(건물 연면적 m² / 대지면적 m² ) × 100 (%)”. 용적률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어렵지 않게 떠올린 공식이다. 필자가 그만큼 어느정도 나이를 먹은 방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들에게 부동산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위 공식은 건축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부동산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하면 익숙한 것이다. 용적률은 건축물에 의한 토지의 이용도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용적률이 높으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즉 단위대지당 사용 가능한 공간이 넓어진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해당 토지와 건물의 재산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이 익숙하다는 것은 다시말해, 사람들에게 사람들의 삶에서 부동산은 중요한 가치이고 이에 대한 ..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 _exhibition review

아트센터나비는 작년 11월 15일부터 올 1월 20일까지 라는 제목의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아티스트,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이 참여했고 구글의 딥 드림(Deep Dream), IBM 왓슨(Watson), 인공지능 알고리즘 마젠타(Magenta) 등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덕션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 외에도 AI 컨퍼런스, 해커톤 등 다각도로 인공지능에 접근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었다. 전시의 제목 '인간이 아직도 필요한 이유’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위험이 높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본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 쉴(?)만한 전시의 제목이지만, 낙관..

빛 - 사운드. 효과로서 의미를 전달할 때: 토탈미술관 <Through the listening glass> _ exhibition review

이 전시에는 작품설명 태그가 벽면에 붙어 있지 않다. 작품을 알고 싶으면 팜플렛을 뒤적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개미만한 팜플렛 글씨를 보는 건 최악이다. 작품설명은 고사하고 제목 태그 조차 없어, 팜플렛 안내동선과 내가 지나온 길을 일일이 대조해야, 내가 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다른 전시에 다 있는 제목태그 하나 붙이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전시 담당자한테 묻고 싶기까지 하다. 차라리 팜플렛을 덮어버리고 오롯이 작품만을 감상하고자 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전히, 팜플렛을 뒤적이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사실 빛과 사운드라는 이 전시 키워드는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나에게 예술이 주는 쾌감은 바로 규정된 경계를 허물어 버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