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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calendar.ucsd.edu/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은 매우 가까이 와있다. 그러나 이미지 생성이나 인식, 컴퓨터 비전 등 기술의 성급한 발전에 비해 아직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미 40년 전, 인간과 인공지능의 예술을 보여준 선구적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해럴드 코헨(Harold Cohen,1928~2016)과 그가 개발한 아론(Aaron,1973~2016)[각주:1]은 창작에 있어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매개성을 보여준 선구적인 사례였다. 이들의 협업은 현대적 인공지능이 등장하기에 앞서 인공지능 예술의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의의를 지닌다. 


  원래 코헨은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던 추상파 화가였다. 그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와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를 진행했고, 1966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의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1968년 미국 실리콘밸리로 여행을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코헨이 아론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1960년대에도 컴퓨터 아트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했지만, 그는 단순히 컴퓨터를 사용해 그림을 만들거나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작업과정을 이해하고 행동을 결정하며 그림을 생성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코헨은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코헨은 추상 화가였기 때문에 이미지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과 관련된 인지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과 형태, 색의 관계에 의해 인간 정신 속에서 생성되는 관념 공간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고 아론은 그 결과물이었다.[각주:2]


사진 출처:  http://www.sandiegouniontribune.com/obituaries/sdut-harold-cohen-computer-generated-art-pioneer-87-2016may11-story.html


  아론은 1973년 개발되어 그다음 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고 끊임없이 기능이 보완되었다. 아론은 동작을 시작하면 무엇을 그릴지, 그림의 구성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 초기 아론의 그림은 선을 이용한 추상적 형태였으나 점차 발전하여 복합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한 버전에서 다음 버전으로 발전할수록 아론의 창작 능력이 극적으로 변화했다. 예컨대 초기 아론은 추상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만을 그릴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아론을 ‘추상화 아론’이라고 부르는데 추상화 아론은 종이 위에 임의로 시작점을 설정하고 ‘IF-THEN 알고리즘’을 따라 그림을 완성했다. 예를 들면 아론은 어떤 방향으로 그릴지, 하나의 선을 계속 그릴지, 혹은 닫힌 형태의 선을 그릴지 등을 선택하면서 그림을 완성한다. 추상화 아론이 완성한 그림은 상형문자나 어린이가 그린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그림에서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음 단계의 아론은 인간의 형상이나 풍경같이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형태를 그릴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복잡한 그림, 예컨대 ‘나무와 꽃이 있는 들판에 사람이 서 있는 형태’ 등 여러 주제가 혼합된 형식의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초기 아론은 색을 직접 칠할 수 없었고 코헨이 완성된 드로잉에 채색했지만, 이후 코헨은 색과 구성을 위한 알고리즘을 연구했으며 1995년 물감을 섞고 색칠하는 아론을 완성했다.[각주:3]



Drawing, 1980


  추상화 아론은 그림 전체를 볼 수 없었고, 기억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 활동을 반영하지 못했다. 반면 발전된 단계의 아론은 그림의 특징을 미리 계획할 수 있고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내용과 구도, 양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예컨대 사실주의 양식으로 공을 들고 있는 인물을 그린다고 가정한다면, 아론은 종이에 시작점을 찍기 전에 인물의 구도뿐 아니라 중력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게 인물의 팔, 다리까지 계획해야 했다.[각주:4] 그림을 그리기 위한 계획에 작가인 코헨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는 아론이 스스로 그림의 내용을 구성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그려진 아론의 그림이 보기 좋은 형태에 속할지는 모르지만, 독창성이 드러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아론은 인물이나 풍경 등 한정적인 주제만을 그릴 수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복잡한 형태를 반복하며 이미지를 만들었던 기존의 컴퓨터 아트와 아론은 차이가 있다. 초기 컴퓨터 아트는 컴퓨터 알고리즘이 얼마나 많은 기호를 생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컴퓨터 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만프레드 모어(Manfred Mohr)의 플로터(Plotter) 드로잉도 알고리즘을 이용해 생성한 선을 무수히 반복한 이미지였다. 이 경우에 인간의 손보다는 빠르고 간편하게 반복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지만, 하나의 이미지를 위해 한 번의 프로그래밍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론은 서로 다른 특정 유형의 그림을 끝없이 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그림이라도 그 유형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각주:5]


  이러한 전제는 지키기 쉬워 보이지만, 꽤 복잡하다. 코헨은 머리를 그리는 데에만 4000가지의 규칙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아론은 얼굴에 그려진 코나 눈의 형태가 얼굴의 방향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부릴 수 있는 두 개의 팔다리[각주:6]가 물체를 집거나 바닥을 디뎠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그 바닥이 평평한지 둥근지 등 창작을 위한 수많은 지식을 알아야 했다.

채색을 위해서는 색에 대한 지식도 갖춰야 했다. 실제 세상에서 그 물체가 지닌 색, 예를 들면 땅은 분홍색이 ‘아니라는 것’까지 알아야 했다. 심지어 추상화라고 할지라도 근접한 색들 사이의 조화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한다. 그러나 아론은 이 모든 조건을 달성했다. 1985년 일본 쓰쿠바(筑波郡)에서 열린 박람회 동안 아론은 7000점의 그림을 선보였지만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미적으로도 인정받았다.[각주:7]

  이는 아론이 미적 만족을 주는 결과물을 생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이 명화를 만들었던 과거의 화가들과 비견할 수 없지만, 아론의 그림에서 미적 감흥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Meeting On Gauguin's Beach, 1988. Oil on canvas


  하지만 아론에게도 넘을 수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 각각의 그림은 해당 버전의 아론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었는데, 추상화를 그리는 아론은 결코 인물을 그릴 수 없었고, 그다음 단계로의 발전은 프로그램의 자발적인 자기  수정이 아니라 코헨이 개입해야 했다. 다시 말해 “오늘은 추상화가 지겨우니 풍경화를 그려볼까?”하는 변덕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아론이 ‘인간’ 작가가 만든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결과물을 아론의 창작으로는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현대적 인공지능은 아론이 지닌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아론은 자기수정하지 못했지만, 딥러닝을 이용하는 현대적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고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인간을 필요로 하고, 인간이 만든 구조(알고리즘) 안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계산 결과는 수백만에서 수억에 달하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론 역시 그림을 완성하는데 수천가지 이상의 규칙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입력한 코헨도 결과 이미지를 설정하거나 예상할 수 없었다. 한 인터뷰에서 코헨은 자신이 아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오해할까봐 관람객들이 아론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은 키보드 앞에도 앉아 있지 않았다고 회상했다.[각주:8] 엄청난 양의 규칙을 정하고 프로그래밍한 것은 코헨이지만, 결과물은 순전히 아론의 창작물인 것이다. 


  따라서 코헨은 창작과 결과물을 위한 ‘주관성’을 아론과 나눠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호매개의 가능성이 열린다. 여기서 상호매개성이란, 창작의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가 연합하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인간과 기계는 미리 결정되어 작동만 하는 ‘닫힌 개체’가 아니라, 상호매개를 할 수 있는 ‘열린 개체’로 존재해야 한다. 기술철학자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완전히 닫혀 있는 자동적인 기계는 피상적인 결과물만 제공할 수 있지만, 고도의 기술성을 지닌 열린 기계는 하나의 기술적 앙상블을 실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각주:9] 앙상블은 시몽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그는 인간과 기계가 상호 협력하는 ‘인간-기계 앙상블’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개체성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말하는 개체초월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에 의해 발명되었고, 사유되었고 요구되었고, 책임 지워졌던 ‘기술적 대상’”이 매체이자 상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몽동의 주장을 통해 예술에서 상호매개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화가 코헨에게는 자신이 발명한 아론이라는 기술적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아론은 코헨의 노예이거나 도구가 아니라 코헨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자 매체인 것이다. 아론 역시도 코헨이 발명한 도구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관계와 존재를 획득한다. 당시 코헨은 아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아론이 자기 스스로 완전히 창의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기계의 지능을 같은 종류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주장하는 것 대신 인간과 기계의 ‘연결’이 지금까지 인간이 해오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각주:10] 이는 상호매개적 상황에서 개체가 가진 본성을 지닌 채 연합하는 시몽동의 개체초월 개념으로 이들의 작업을 해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창작하는 인공지능 역시 인간이 자신의 창작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매체이자 상하 관계를 벗어난 평등한 창작 주체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머신러닝과 같은 현대적 인공지능 기술은 코헨이 꿈꿨던 미래형 아론을 위한 기술적 토대일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대상은 코헨과 같은 존재, 즉 기술들을 엮고 이어주는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에 시몽동 역시 인간-기계 앙상블을 위해서는 기계들이 서로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 통역자, 조정자, 발명가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시몽동의 언어를 빌리자면,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앙상블 안에 자리매김하는“매개”이다.[각주:11] 따라서 창작하는 인공지능의 등장 앞에 인간 창작자는 인공지능을 서로 연결하고 조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마치 “여러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를 조율하는 지휘자”처럼 말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 창작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며 인간-기계 상호매개성의 진정한 의미이다. 


해럴드 코헨 웹사이트: http://www.aaronshome.com/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1. 해럴드 코헨은 지난 2016년 4월 27일 작고했다. 그가 개발한 아론은 프로그램으로 남아있으나, 코헨와 아론 사이의 상호매개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아론이 개발된 1973년부터 코헨이 작고한 2016년을 제작년도로 표기하였다. [본문으로]
  2. 이인식, 『사람과 컴퓨터』(까치, 1992), 434-35. [본문으로]
  3. Paul Cohen, “Harold Cohen and AARON,” AI Magazine La Canada Vol. 37, Issue. 4, (Winter 2016): 63-66. [본문으로]
  4. 마거릿 A. 보든, 『창조의 순간: 새로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고빛샘 외 옮김(21세기북스, 2010), 260-68. [본문으로]
  5. 위의 책, 269. [본문으로]
  6. 그림에서 팔이 하나로 보이는 인물을 그리려면 제공되는 신체 모델에 팔의 개수를 설정하는 슬롯이 있어야 하고, 그 슬롯의 기본값이 ‘2’이면서 ‘1 또는 0’도 수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보든, 앞의 책, 272. 참고. [본문으로]
  7. 위의 책, 269. [본문으로]
  8. John Schwartz, 앞의 글. [본문으로]
  9.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김재희 옮김(그린비, 2011), 13. [본문으로]
  10. Harold Cohen, “A Self-Defining Game for One Player: On the Nature of Creativity and the Possibility of Creative Computer Programs,” Leonardo Vol. 35, No. 1 (February 2002): 60. [본문으로]
  11.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1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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