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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와 무빙이미지포럼이 개최하는 프로그램 <PLAY for TODAY>에서 실험영화와 관련하여 강연과 스크리닝, 라이브공연 등 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간은 3월 14일부터 6월 21일까지 입니다. 

아르헨티나의 20세기 초반 무성영화 연계 공연, 60년대 이후 청취에 따른 실험음악의 역사에 대한 강연, TV의 예술적 중요성을 강조한 알도 탐벨리니의 영상작업, 율리세스 카리온의 70,80년대 영상작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에서 신청하시길 바랍니다.


http://artsonje.org/playfortoday/



아트선재센터는 사단법인 무빙이미지포럼과 함께 《PLAY for TODAY》를 개최합니다.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시대를 풍미한 영국 BBC TV프로그램 《PLAY for TODAY》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프로그램은 동시대의 다양한 이야기와 이미지의 형식을 정기적으로 소개합니다. 3월 14일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정기상영회는 6월 21일 목요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에서 늦은 7시에 진행하며, 라이브연주, 강연과 함께 선보입니다.

사단법인 무빙이미지포럼은 2004년부터 스페이스셀과 함께 매체기반의 제작지원과 매년 EXiS를 개최하여 국내의 영화계와 미술계에서 시네마와 관련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무빙이미지포럼은 역사적 아방가르드, 비디오 아트와 실험영화, 실험적 다큐멘터리 등을 국내외의 여러 미술관, 시네마테크, 교육기관, 공동체 상영관 등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상영 시간표

3월 14일(수요일) 오후 7시

 

  • 참여작가 
  • 데이비드 그럽스, 알도 탐벨리니, 알란 코르티스, 요한 루프, 율리세스 카리온


상영작 


<아르헨티나 무성 영화의 재발견 (REDISCOVERING ARGENTINE SILENT CINEMA 1900-1928)>
라이브 연주: 알란 코르티스 (Live music by Alan Courtis) 

이 프로그램에는 1900~1928년 사이에 제작된 아르헨티나 영화사의 중요한 초기 이미지가 소개된다. 대부분 35mm로 촬영된 이 작품들은 아르헨티나 영화산업의 선구자였던 페데리코 바예, 막스 글룩스만, 마리오 가요와 같은 중요한 영화인으로부터 무명의 사람들이 촬영한 기록에 이르기까지 영화 역사의 기록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다양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자국 내에서도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던 초기영화의 이미지를 아카이비스트이자 아르헨티나 초기 영화 연구자인 안드레스 레빈슨과 함께 이번 프로그램의 라이브 연주자로 내한하는 기타리스트인 알란 코르티스가 직접 선정하고 세르히오 수베로, 세르히오 바우에르와 에밀아노 칸토레가 편집에 참여하였다. <5월 혁명>(1910), <혁명 100주년 축제>(1910), <부에노스아이레스>(1924~5), <시점과 현실>(1910~1927), <대초원&산업의 전시>(1924), <아르헨티나의 농업사회>(1925), <황소들에게>(1928) 등과 같은 작품이 알란 코르티스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소개된다.

연주자 소개
알란 코르티스 (Alan Courtis, b.1972)
작곡자이자 기타리스트인 알란 코르티스는 197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으로, 사운드 아트와 즉흥음악과 작곡 등 전 방위에 걸친 음악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의 사운드 설치 작품들은 일본,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의 뮤지엄과 갤러리에 소개되었으며, 작곡 작품들은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멕시코, 캐나다, 미국 등의 앙상블에 의해 연주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여러 기관들에 커미션을 받아 작곡활동을 하는 한편 EMS, GRM, Cafe Oto, USF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200여장이 넘는 독주 및 협업 음반을 Mego, P.S.F., Pogus, SubRosa, RRR, Blossoming Noise, No-Fi, Antifrost, Tonschacht, 267 Lattajjaa, Quasipop, Alt.Vinyl, Riot Season, Kning Disk, Beta-Lactam, Prele, Matching Head, 8MM, Public Eyesore 등에서 발매하였으며, BBC(영국) / WFMU(미국) / SBS(오스트레일리아) / CJSF(캐나다) / WDR (독일) / Sveriges Radio(스웨덴) 등 여러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음반과 라이브 연주가 소개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주공간에 정기적으로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작곡자 폴린 올리베로스를 필두로 메르츠바우 / 히조카이단 / 리 라날도 / 필 니블락 / 에디 프로보스트 / 짐 오루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와 협연과 협력을 진행해왔다.

 

3월 28일(수요일) 오후 7시


강연
데이비드 그럽스 (David Grubbs, b.1967)

<레코드가 파멸시킨 지형: 존 케이지와 60년대 그리고 사운드 레코딩 (Records Ruin the Landscape: John Cage, the Sixties, and Sound Recording)>

이 강연은 데이비드 그럽스가 2014년 출간한 책을 기초로 한다. 《레코드가 파멸시킨 지형》이라는 책의 시작은, 그 스스로 실험적 음악가이자 그 스스로 자신의 시대를 앞선 실천을 기록하고 음반으로 발매하는 일을 하는 배급과 아카이빙의 실천가 그리고 음악 비평가이자 교육자로서 갖게된 질문이었다. “레코드 문화는 청취자에게 60년대의 실험음악과 아방가르드 음악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존 케이지는 레코드를 경멸했으며, 60년대에 활동하던 대다수의 실험적 음악가들은 레코드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극소수의 실험적 음악가들의 작품이 청취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달리 현대의 청취자는 아카이브에서 수 없는 자료들이 LP, CD를 통해 발매되고 무수한 정보와 음원들이 온라인에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현대의 청취자/청취 문화에 있어 소리의 기록이 갖는 불완전한 재현(매체적 관점에서)과 진본성의 문제는(아카이브적 관점에서) 라이브 퍼포먼스와 녹음이 다르다는 단순한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레코딩이 대중음악에서는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해왔던 반면, 아방가르드와 실험음악 그리고 즉흥음악에서는 광범위하게 대다수의 음악가들이 거부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의 청취문화에 의해 변형된 60년대 이후의 실험음악의 역사에 대한 태도와 이해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 강연을 통해 이야기 할 것이다.
데이비드 그럽스는 1967년 출생으로 작곡자이자 기타리스트이다. 12장의 솔로음반과 150여장이 넘는 다양한 음반에 참여했다. 1982년부터 밴드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하드코어 펑크 록 밴드인 스쿼럴 베이트 Squirrel Bait(1983~1988)와 짐 오루크와 함께 결성한 포스트 록을 대표하는 밴드인 가스트르 델 솔 Gastr del Sol(1993~1997)을 통해 포크와 록을 출발점으로 실험적인 사운드에 대한 방대한 관심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중반에는 코다인 Codein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토니 콘라드 Tony Conrad, 윌 올덤 Will Oldham, 로얄 트럭스 Royal Trux, 리처드 버크너 Richard Buckner, 아놀드 드레이블랫 Arnold Dreyblatt 등 아방가르드, 클래식, 록, 컨트리, 포크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와 협업을 진행했다. 다른 사운드에 대한 데이비드 그럽스의 관심과 지속적인 실험은 1999년부터 스웨덴 출신의 프리재즈 색소폰 연주자인 맷 구스타프손과 함께 낸 3장의 앨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한편 밴드활동을 하면서 혹은 작곡자로서 릭 무디와 케네스 골드스미스와 같은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우구스토 콘텐토를 비롯하여 브루스 요네모토, 할 하틀리, 알렉산더 클루게, 더그 에이트킨, 앤서니 맥콜 등 영화감독 및 시각예술가와 직간접적으로 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는 시카고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뉴욕시립대 브루클린 칼리지 음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정기적으로 신문과 저널에 음악비평을 기고하였으며, 2014년에는 존 케이지를 주축으로 한 실험적이며 개념적인 다양한 형태의 사운드 레코딩이 변화사킨 급진적 예술가들의 실천을 기록하고 청취하는 문화와 그것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 《레코드가 파멸시킨 지형: 존 케이지와 60년대 그리고 사운드 레코딩 Records Ruin the Landscape: John Cage, the Sixties, and Sound Recording》를 출간했다. 데이비드는 현재 《관객이 모인 지금 Now That the Audience is Assembled》(2018, 듀크 대학 출판부)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이 책은 참여적이며 사색적이고 논쟁적이며 절대 잠들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관객과 함께 밤새도록 지속되는 이름 없는 음악가들의 초현실적 즉흥음악 연주에 관한 가상의 시적 이야기를 주축으로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논쟁과 음악적 증명을 구조적으로 삽입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강연은 영-한 순차통역으로 진행됩니다.

 

4월 26일(목요일)


요한 루프 (Johann Lurf, b.1982)


상영작
<별 ★> (2017, 99min, Color/B&W, Sound)

요한 루프는 우주개발, 군산복합체나 사회적 감시를 매개하는 공간과 이미지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구조적 접근과 필름의 물질성에 관심을 둔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오스트리아 실험영화의 전통 속에서 헐리우드의 상징을 재구성한 대표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품인 <12개의 이야기>(2014)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산업적 이미지 혹은 이미지 산업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구조영화의 역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오고 있다. 그는 빈 예술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슬레이드 예술대학에서 영상을 공부했으며, 이후 2009년 하룬 파로키의 영화 클래스를 졸업했다.
2017년 겨울 비엔날레 영화제에서 일반에 첫 공개된 이후 2018년 선댄스 영화제를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실험영화인 요한 루프의 <별 ★>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한 많은 사람들은 더글라스 고든의 <24시간 사이코>(1993) 혹은 크리스천 마클레이 <시계>(2010)를 떠올리며 개념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인 방식으로, 기술적 프로그래밍에 의한 이미지의 추출보다는 강력한 몽타주 구성으로 기왕의 메타 영화적 실천의 계보를 잇는 2018년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라 극찬을 보내는 중이다. 미술사학자인 노암 엘콧이 <인공적 암흑 Artificial Darkness>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영화사의 “어둠”의 중요성을 미디어 고고학적 관점에서 상기시켜주었던 것처럼, 요한 루프의 <별 ★>은 극영화, 프로파간다, 교육영화, 홍보영화 등 100년간의 영화사 중에서 500여 편이 넘는 작품에서 밤하늘에 별이 나오는 장면만을 편집해 만든 작품이다. 밤하늘의 별을 통해 드러나는 서사적 특이성과 보편성, 영화 장치의 발전 과정, 모노사운드로부터 7.1채널에 이르는 사운드의 변화가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우선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5월 24일(목요일)


알도 탐벨리니 (Aldo Tambellini, b.1930)

“언젠가, 알도의 블랙 TV는 고전이 될 것이다.”(백남준, 1969)
“탐벨리니의 작품은 인터미디어 네트워크의 지각에 관한 것이다. 현대의 환경에서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는 수준의 가공된 인식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진 영블러드, 1970)

상영작
블랙 필름 연작 Black Film Series
<블랙 Black Is>(1965 4min, 16mm, B&W, Sound)
<블랙 트립 Black Trip #1> (1965, 5min, 16mm, B&W, Sound)
<블랙 트립 Black Trip #2>(1967, 3min, 16mm, B&W, Sound)
<블랙 아웃 Blackout> (1965, 9min, 16mm, B&W, Sound)

<블랙 TV BLACK TV>(1964-1968, 10min, 16mm, B&W, Sound)

알도 탐벨리니는 뉴욕 주 시러큐스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출신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 투스카니, 루카에서 보냈다. 루카의 예술학교에서 잠시 수학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1954년 시러큐스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이후, 1959년 인디애나 주 노터데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의 로어 이스트사이드로 이주하였으며, 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언더그라운드 대항 문화의 중심에서 기획자, 작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갔다. 60년대 중반부터 화학약품, 스크래치, 물감 등 다양한 재료와 오브제를 투명 필름 위에 직접 가공하여 만든 여러 단편 실험영화와 전자기 신호와 사운드 피드백을 이용한 비디오 테잎을 만들기 시작했다. 1969년 작 <블랙 TV>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969년 오버하우젠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알도는 페인팅, 필름 & 비디오, 시, 빛, 무용, 사운드와 라이브 음악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일렉트로미디어 퍼포먼스” 시리즈 발표하였다. 1966년 그는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을 소개하던 오프 브로드웨이에 있던 게이트 극장을 공동으로 설립하여, 매일 밤 자정까지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잭 스미스, 케네스 앵거, 로버트 브리어, 브루스 코너, 스탠 브래키지, 쿠차 형제의 실험영화 뿐만 아니라 이이무라 타카히코를 통해 일본 실험영화 소개했다. 1967년에는 제로 그룹의 오토 피네와 함께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와 설치를 발표할 수 있는 뉴욕 최초의 극장인 블랙 게이트를 설립했다. 당시 첫 번째 프로그램의 제목이 ‘블랙아웃 BLACKOUT’이었으며, 핸드페인트 필름과 여러 대의 슬라이드를 벽 전면에 영사하는 멀티미디어 이벤트 프로그램이었다. 이어 백남준과 샬롯 무어만의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코수기, 프레스톤 맥클라나한, 쿠사마 등의 초기 퍼포먼스등이 블랙 게이트 극장에서 소개되었다.
1966년 당시 상용화된 첫 제품이었던 소니 CV2000 카메라를 구입하여, 빛의 움직임과 사운드 피드백을 활용한 첫 비디오테잎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후 비디오 플라이트 엔지니어와 함께 전자 신호 피드백을 기록한 두 번째 작품을 발표했다. 1968년 지역 신문 인터뷰에서 알도는 텔레비전의 예술적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찾고 있다. 나는 다중과 동시성을 원한다. [..]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내게는 휴머니티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삶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을 소유하거나 경험을 독재화하는 행위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안된다. 누군가 ‘나는 반 고흐의 작품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적 개념과 삶의 형식과 경험, 마음을 어떤 사람들은 절대 가질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6월 21일 목요일


율리세스 카리온 (Ulises Carrión, 1941-1989)

상영작
<책 A Book>(1978, 7min 52sec, Color, Sound)
<아트 딜러의 죽음 (카날 제로) The Death of the Art Dealer (kanaal zero)>(1982, 19min 57sec, B&W, Sound)
<추잉 검 Chewing Gum>(1983, 8min 51sec, Color, Silent)
<릴리아 프라도 파일 The LPS File>(1985, 35min 39sec, Color, Sound)
<90개의 책 작품 재고 Bookworks revisited. Part 1: a selection>(1987, 36min 33sec, Color, Sound)

1941년 멕시코 산안드레아스 툭스툴라에서 태어났고 198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한 이후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 학업을 이어나갔으며 1972년 암스테르담에 정착했다. 그 해 암스테르담 최초의 아티스트 스페이스인 ‘인-아웃 센터(In-Out Center)’(1972-1974)를 설립하여 당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예술 운동과 개념을 인-아웃 센터를 통해 소개했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예술가들이 만든 책과 다양한 형식의 문서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서점이자 갤러리 ‘아더 북 앤 소(Other Books and So)’를 운영하였으며, 이후 1980년 이 공간은 ‘아더 북스 앤 소 아카이브’로 바뀌었다. 인쇄 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를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로 이끌었다. 대안적 형태의 배급과 소통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한편 예술가로서 사운드, 구체시, 메일 아트, 필름 & 비디오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60년대 이후 국제적 아방가르드 운동의 중요한 개념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책 만들기의 새로운 예술」, 「북웍스 리비지티드」, 「북웍스에서 메일 아트로」와 같은 글을 통해 현대적인 아티스트 북의 개념을 정립하기도 했다. 최근 그의 글과 활동을 새롭게 발견하는 전시와 프로젝트들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었다.《울리세스 카리온: 우리는 승리했다! 그렇지 않는가?》(포도르 뮤지엄, 암스테르담, 1992), 《가십, 스캔들과 좋은 매너: 울리세스 카리온의 작품들?》(쇼룸, 런던, 2010) 《친애하는 독자에게. 읽지 말 것》(레이나 소피아, 마드리드, 2016) 등의 전시를 비롯해 2017년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울리세스 카리온의 친구들의 사회 The Society of Friends of Ulises Carrión>라는 이름으로 그를 기념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김소현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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