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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_2004.12.21~2005.1.30

   지난 12월 21일에서 1월 30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한국 테크놀러지 아트의 태동과 전개란 제목의 주목할 만한 전시가 펼쳐졌다. 어떤 일이나 사건의 발생 시기와 과정을 되집어 보는 일은 그것의 현재적 특징과 문제점을 풀어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전시는 한국의 미디어 아트가 어떤 계기와 경로를 통해 시작되었는지, 나아가 초창기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기술과 예술의 만남 혹은 접목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미디어나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진화하고 세분화되고 있는 미디어 아트는 일반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오기 마련이고 그들이 시각과 사고에 충격과 놀라움을 주곤 한다. 따라서 초기 미디어 아트들을 통해 미디어 아트의 특징과 메커니즘을 이해를 통해 관객들에게 현재 미디어 아트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었다는 차원에서 교육인 의의 또한 찾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전시를 살펴보기에 앞서 관심을 끈 부분은 바로 전시 제목에서 테크놀러지 아트 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이다. 기술을 매개로 한 예술을 일컫는 명칭은 아직까지도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지 않지만, 미디어 아트란 용어가 일반적이고 기술 매체가 점차 디지털화되고 디지털이 가지는 의미가 부각됨에 따라 디지털 아트란 말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테크놀러지 아트란 용어는 미디어 아트가 처음 도래한 시기에 기술을 어떻게 예술에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를 회상케 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진다. 1960년대에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예술과 과학의 접목은 예술과 과학 두 분야 모두에서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로 부각되었고, 미국의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MIT대학에 설치된 시각실험기술연구세터(Center for Advanced Visual Studies,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와 같은 기관들의 설립은은 이러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이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선례들과 맥을 같이 하여, 이번 전시가 유수의 과학 기술 대학, 연구소, 기업체들이 밀집한 과학과 기술의 메카로 급부상한 대전에서 열린 점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를 도화선으로 삼아 많은 과학자 혹은 엔지니어 그리고 예술가들이 협력할 수 있는 연계프로그램들이 계속될 것이 기대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현대미술의 현장에 테크놀로지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도입되고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하게 자리잡은 백남준의 텔레비전 조각 작품인 <거북선>이 우선 관객들을 압도한다. 이것은 이번 전시는 텔레비전 아트와 비디어 아트가 국내에 도입된 시기를 한국 미디어 아트의 태동기로 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서구의 경우,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인간의 시각과 인식 나아가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조망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태동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예상보다 좀 더 먼 미술사적 원류들이 제시되곤 한다. 미디어 아트는 20세기 전반에 있었던 3가지 예술운동, 즉 미래주의(Futurism), 다다이즘(Dadaism),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명백한 영향 속에서 태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술에서 빛과 움직임을 새롭게 사용한 전처로서 키네틱(kinetic)과 라이트 키네틱(light kinetic) 또한 테크놀로지 아트의 가장 중요한 방법적 원천 중의 하나로 목격된다.[1] 이러한 미술사적 전사를 고스란히 흡수하여, 1970, 80년대에 꽃을 피운 비디오 아트를 통해 미디어 아트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는 이러한 비디오 아트의 거센 물결 속에서, 더욱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고 평가되는 백남준이 한국 출신의 작가라는 점이 작용하여 비디오 아트에 더욱 쉽게 동화되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한 위성중계방송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well)은 국내 대규모의 대중들에게 소개된 최초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이후 비디오 아트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아트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증대되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앞서 언급한 서구의 미술사적 흐름과 호흡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비록 그의 작품에서 한국적인 정서나 정체성이 내포되어 있기나 하지만 그의 작품 자체의 발전과정을 한국의 미디어 아트의 전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는 없다. 백남준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텔레비전 아트와 비디오 아트가 소개됨에 따라, 미디어아트의 자생적 태동의 움직임이 아직 미진했고 그것을 받아들일 토대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너무나 급작스럽게 이 땅에서 미디어 아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렇다면 박현기를 필두로, 오경화, 조태병, 육근병, 김영진, 홍성민, 공성훈, 김재권, 이원곤, 김윤, 김해민, 문주, 심철웅과 같은 작가들은 이렇게 단편적으로 유입된 비디오 아트를 접하면서, 그것이 탄생한 서구와는 다른 한국적 배경 속에서 이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보도록 해준다. 전시 구성에서도 백남준과 박현기를 하나로 묶어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란 제목으로, 나머지 작가들을 <TV세대, 새로운 감수성의 대두>라 분리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백남준과 박현기는 함께 분리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 보인다. 백남준의 영향력은 너무나 명백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엄청난 불씨와 숙제를 함께 안겨주었고, 그것을 풀어간 것이 나머지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백남준의 작품 <거북선>, 이 작품을 중심으로 에워싼 ‘ㄷ’형 전시공간을 나머지 작가들의 작품들로 채운 전시 구성은 이러한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 기획자의 지적대로 대부분의 국내작가들은 미술을 전공하고, ‘현대미술’의 시야에서 뉴미디어를 접한 작가들이었다. 백남준의 작품을 지나 맨 처음 만나게 되는 박현기는 이러한 작가들 중에서 소위 1세대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그는 이번 전시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건축을 공부한 그는 순수 국내 파로, 70년대 미니멀리즘 작품으로 출발하여 지난 25년 동안 한국 비디오아트의 사실상 대표작가였다. 그는 대표작인 <비디오 돌탑>을 통해 돌의 물성과 비디오 매체의 비물질적 속성을 화합시키고 조형적 실험을 보여준다. 그의 뒤를 이어 80년대와 90년대에 이르러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예술창작의 도구로 도입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 중에서 몇몇 작가와 작품들을 되돌아 보면, 오경화는 <비디오 성황당> 연작을 통해 비디오 영상 매체가 전해준 가짜 현실, 혹은 현실가상이라는 이원적 인식구조에 감화되었고, 결국 비디오 안에 한국의 샤머니즘이라는 한국적 정서의 현실과 가상의 매개 영역을 담아냈다. 말하자면 비디오 테이프에 기록된 이미지(과거체)를 무당의 신으로 본다면, 모니터를 무당으로, 공간에 설치된 발광상태를 현재라는 시점으로 본 것이다. 미디어 아트 작가이자 이론가로, 이번 전시의 기획에도 참여한 이원곤의 진술을 보면, 그가 이미 1980년대에 인간 두뇌의 사고처럼 기록과 재생이 가능한 시공간 4차원 모두를 갖춘 4DR(4-dimentional Recorder) 기술을 상정한 언어와 상징체계의 변화에 대해 예견하고 있어, 작가로서의 앞선 시대감각을 보여주었다. 한편,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보여줌으로써 주목 받고 있는 작가인 김영진의 초기 작품 <시간의 Montage> <Y의 정원>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자아의 몸 속에 내재된 타자성과 자아 내면의 나르시시즘을 발견하는 매체로서 비디오를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작업들은 그의 향후 작업들과의 긴밀한 연관되어 있다. 또한 테크놀러지 시대에 어울리는 멀티미디어 설치작가란 평을 받고 있는 문주<미완의 정원>은 언어가 아닌 시각 예술만으로 충분한 의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데,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남겨진 결론’을 도출해내는 그의 미디어 설치작업의 초기 시도로 보여진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의 수많은 망점을 작은 스피커로 바꾼 홍성민의〈Appropriation>은 낭만적인 사랑과 당시 공포의 대상인 AIDS를 암시하는 중의적 작업으로 남의 만화를 차용한 리히텐슈타인을 다시 차용하는 ‘차용의 차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매체란 현시대의 사회적 이슈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느끼게 해준다. 그가 이러한 초기작품들로부터 현재의 실험극 형태나 소위 타임아트(time art)의 방향으로 발전해가는가를 추적해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전시에 보여진 작품들은 현재 미디어 아트를 접해본 관객들에게는 너무나 단순하고 심지어 조잡해 보이기까지 한 단순한 구조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의의는 이러한 작품자체의 감상이라기보다는 작가들이 새롭게 주어진 기술적 매체 혹은 테크놀로지를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과 결합하였는지를 되짚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작품의 설명보다는 당시 작가의 진술을 소개한 것도 작가의 의도와 의식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종합적으로 되돌아 보면, 한국의 미디어 아트의 태동과 전개라는 주제를 다룬 이 전시가 텔레비전 아트와 비디오 아트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 미디어 아트가 한국의 현대미술 발전의 흐름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아트와 비디오 아트의 갑작스런 유입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가 현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빠르게 뿌리내리지 못했던 이유와 아직까지도 미디어 아트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이론적 토대가 부족도 이유도 일정부분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의 시기의 초창기 미디어 아트 작가들의 애씀 덕분에 현재 한국의 미디어 아트는 제 2의 태동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IT기술의 발전과 국제비엔날레와 크고작은 미디어 전시들을 통해 미디어 전시가 소개되고 발굴될 수 있는 점들을 보면, 미디어 아트가 발전하기에 유리한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작가가 새로운 매체나 기술을 통해 새로운 조형성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노력일 것이다. 마리오 카스타(Mario Casta)는 “예술 속에서의 테크닉은 단순한 차원의 테크놀로지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로부터 모든 방법과 상상력을 얻고, 테크놀로지로부터 그 꿈을 실현하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매체나 기술을 선택하는 것은 작가이지만, 일단 작가가 그것들을 매개하는 순간 새로운 기술과 매체가 열어주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과 자신의 정체성 지향점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결합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탐구가 미디어작가들에게 요구될 것이며, 이점 이 바로 이번 전시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1] 프랑크 포베라, 「전자예술의 시대」, 박숙영 역, 도서출판 예경, 1999




                                                                                                     글. 이주연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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