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85

검색, 사전을 삼키다_book review

이전 직장에서 ‘검색’은 공적인 하루 업무 중 하나였다. 언론인의 꿈을 안고 들어간 모 통신사의 이슈팀에서 인턴 기자로 일을 시작한 첫 날, 나는 펜을 무기 삼아 현장을 누비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너 쪽으로 정리된 얄팍한 기사 작성 매뉴얼을 손에 들고 나서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됐다. 우리의 취재처는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의 기자실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과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나 오유(오늘의유머), 인스티즈, 엽혹진(엽기혹은진실), 디젤매니아, 파우더룸, 아이러브싸커 등의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말하자면, 회사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현장 취재가 아니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1위부터 10위까지 ..

사피엔스: 인간 종의 비극적 서사시 _book review

인간에 대해 논하는 책은 많다. 모든 인문학이, 문화가, 예술이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이 소비하고 즐긴다. 그렇다면 ‘종’이라는 부분은 어떨까.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유발 하라리의 는 "우리를 지칭하는 ‘인간’은 하나의 종이 아니었다" 라는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지구에 퍼져 있던 인간종 중 우리의 직계 조상인 '사피엔스'는 실로 타고난 잔혹한 정복자였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던 형제 종들을 모두 절멸시키고 스스로의 숫자와 활동 영역을 불리며 지역을 정복해 나갔다. 결국 사피엔스의 뒤에 남는 것은 사피엔스 자신과 자신이 사용하고 다룰 몇몇 종들 뿐이었다. 동등하거나 신체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가진 사피엔스가 그의 형제 종, 그리고 여러 대형 동물종을 멸종시키거나 복속시킬 수 있던 이유는 ..

래디컨트 The RADICANT _book review

"현대 미술가는 기호탐험가이다. 더 이상 고전적인 평평한 공간이 아닌,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 있어 무한한 네트워크인 하이퍼텍스트 세계의 조사자이다. 또한 형태의 생산자라기보다는 형태의 가치 유지, 그것들의 역사적, 지리적 권위의 통제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 니꼴라 부리요 최근 출판된 이 책은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평론·이론가 니꼴라 부리요의 가장 최근 저서인 『래디컨트』(2009)를 번역한 것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문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두고, 담론의 장이 형성되길 바란 것 같다. 현대 미술이 과거의 모더니즘 체제에서의 보편성 대신 문화권 단위로 이해되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달라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설명키 위한 용어가 ..

기술의 충격 WHAT TECHNOLOGY WANTS: 케빈 켈리_book review

"나는 기술이 정말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기술의 근본 특성을 이해하지 않는다면,매번 기술의 새로운 산물이 등장할때마다 나는 그것을 얼마나 약하게 또는 세게 껴안아야 할지 판단한 기준 틀을 지니지 못할 터였다. "_케빈 켈리 세계 최고 과학 기술 문화 전문지 의 공동 창간자이자 7년 동안 편집장을 맡았던 케빈 켈리는 '기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면,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기술이 없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지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기술의 자율성, 독립성을 강하게 옹호하고 있다. 저자가 이처럼 기술을 강하게 옹호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기술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해답을..

궁극의 리스트 _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_book review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으로』를 쓴 소설가로도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는 다시 한번 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그 깊이에 감탄하게 되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에코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목록들과 열거의 예를 보여주면서 목록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문화사 전반에서 '목록'은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 시대에, 그리고 특히 근대와 포스트모던 세계에 계속해서 등장한다. 결국 우리가 여러 다양한 이유로 목록의 무한성에 얽매여 있다는 징후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목록은 여러 형태의 예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박적인 리듬이 반복되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는 그 ..

디지털 미디어 백과사전 한조각: <디지털 미디어의 /최신/ 지식>_book review

디지털 미디어의 최신 지식, 스티브 존스, 이재헌 역,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6 미디어, 특히 뉴미디어라고 불리우는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반의 분야에서는 쓰이는 용어들의 개념이나 정보들이 하이퍼 텍스트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구조의 특성상 다양한 하위 정보들과 각 분야들을 신속하게 넘나들 수 있는 참조 구조는 정보의 풍부함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원전의 불확실함, 그리고 많은 정보로 말미암은 혼란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제 자신도 사용되는 여러가지 개념이나 용어들을 알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뿌리나 확실하게 정리된 정보는 내놓을 수 없고, 또한 그러한 내용을 찾으라 해도 막상 손에 잡히지 않는 단서로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티브 존스Steve Johns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_반성과 인식의 매체로서의 게임미디어 실험하기_book review

곤살로 프라스카 (Gonzalo Frasca)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아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라니? 비디오게임이 단순히 일반인들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해결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비디오게임은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미디어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의 시각에 게임은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좀 먹는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게임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된다면 어떠할까?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줄 수가 있을까? 혹은 그러한 게임이 있을 수는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곤살..

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 - 현대예술의 위기 그 시지각의 소멸에 관하여_book review

폴 비릴리오 지음_이정하 역_열화당_2008년 6월 그의 글을 읽으면 푸주칼이 떠오릅니다. 노련한 도살자는 짐승의 뼈를 다치지 않게 살을 발라낸다는 말이 있는데, 비릴리오에게도 어울리는 비유일듯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슷하게 말하자면, 푸코는 회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과거를 되살려내어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도록 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들어내는 시각은, 아직 살아있어 보이는 싱싱한 요리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아직은 그가 발라낸 살을 보는 건 난감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끔찍하게 여길 수도 있어요. 마키아벨리의 글은 잘 단련된 남성의 근육을 닮았다고 누군가 말한 기억이 나는데, 그걸 좀 고쳐말하면 비릴리오에겐 죽은 사람의 근육이 보이거든요. 하나의 책을 다 읽었을 때, 여운처럼 어떤 이미..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_최혜실_book review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 : 매체는 진화하고 이야기는 태어난다 최혜실 지음. 한길사, 2007. 우리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진 ‘말의 술래잡기’를 알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피켓에는 풍자와 익살이 가득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집회 해산 명령에 “노래해”라고 대답하고 물대포를 맞으며 “온수”를 외쳤다. 집회 현장에서는 으레 이성적이고 무겁고 투명한 말들만이 오가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경찰과 정부의 직설법에 다양한 수사법으로 응답했다. 감성적이고 가볍고 꼬인 말들, 중·고등학생들이 쓴 소의 탈, 젊은 엄마들이 밀고 나온 유모차와 전경 버스에 밧줄을 매 끌어당긴 넥타이 부대의 제스처, 그들의 몸의 꾸밈과 움직임, 모두의 손에 들린 촛불이라는 여러 언어들이 이성적이고 무겁고 투명한 ‘..

컴퓨터 예술의 탄생_book review

관람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여러게의 숫자와 선들이 일정한 규칙을 니닌듯 지니지 않는 듯 바삐 움직이며 궤적(軌跡)을 만듭니다. 그 모양이 마치 능숙한 화가의 붓놀림 같기도, 이제 막 태어난 생명체의 움직임 같기도 합니다. 그때쯤 드는 의문 한가지.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작가는 작가 본인인가, 아니면 프로그래머 인가, 그것도 아니면 컴퓨터 자체인가? 점점 더 기술이 발전하고 빠른 연산 처리가 가능한 컴퓨터들이 등장하면서 단순한 반응 속도와 처리 능력으로는 컴퓨터가 인간을 앞선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으로는 따라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예술적 감흥'을 여러가지 우연적인 변수와 난수의 조합으로 '흉내'를 내는 기술도 개발된 현실입니다. (물론 그것이 인간의 것과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