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구 서울역 옆에 들어선 신역사는 그야말로 치욕이었다. 번들거리는 유리에 금속 파이프들이 들여다 보이는 커튼월로 마감된 건물은 역사(驛舍)로서의 기본적인 정체성조차 갖추지 못했다. 벽면 위에 붙어있던 대기업들의 간판은 서울역이라는 장소에 얽힌 수많은 역사들을 일거에 매몰시키는 상징 기호였다. 100여년의 서사는 동시대적 탐욕의 저편으로 소멸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수많은 토론과 논의, 워크숍과 세미나, 기대와 주장, 염원과 이해관계가 갑론을박 하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울역은 ‘문화역’ 서울이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달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리노베이션을 마친 서울역사의 공간은 전적으로 신축 당시의 시점으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모든 벽면은 깨끗하게 채색되어 있었고 낡은 부자재에는 번들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