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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가상과 현실의 틈을 꿈꾸다 : 김해민_Interview

kunst11 2016. 6. 23. 20:20



작가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 말하는 김해민 작가님을 앨리스온에서 인터뷰하였습니다. 김해민 작가는 1980년대 한국의 미디어아트가 태동하던 시기부터 현재까지 35년에 걸쳐 가상의 이미지를 현실공간에 드러내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고, 미디어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영상설치 작업들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그 중 대표작인 <TV 해머>(1992), <신도안>(1994)은 이번 4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구 공간화랑)에서 오랜만에 다시 전시되면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AliceOn. 안녕하세요, 앨리스온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신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해민입니다. 80년대 중반 쯤인가 우연한 기회에 비디오 매체를 접하게 되었지요. 그 당시 비디오 매체에 뭔지 모를 강렬한 끌림으로 나는 비디오 예술 영역에 이런 저런 관심을 두게 됩니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비디오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한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AliceOn. 1980년대 중반 부터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을 해오셨는데, 그 당시는 미디어아트가 대중에게 각인되기 전이고 이해나 창작의 환경 등 한국에서 활동하시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과거 한국의 1980 - 90년대의 초기 미디어아트는 어떠한 위상과 철학을 지녔고, 당대 예술계의 분위기나 환경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상상이 잘 안가거든요 ^^;

80년대에는 인터넷도 없던 시기라 미디어아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죠. 단지 간간히 미술잡지에 소개 되는 비디오 예술대한 정보는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 예술 세계가 전부였어요. 따라서 비디오아트하면 백남준 선생의 작업이나 작품세계가 곧 비디오 아트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 작품을 하는 작가는 누구도 백남준 선생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가 없었어요.

비디오 매체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때입니다. 그 즈음에 개인용 비디오카메라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나오는 영상에 비해 화면의 질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비디오 영상 편집만 보더라도 지금은 오버랩 같은 영상 합성 처리는 컴퓨터에서 ‘프리미어’ 같은 툴로 아주 쉽게 편집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그런 장면 하나를 만들려면 먼저 두 개의 영상을 동시에 재생시키고 중간에 다른 합성 장비를 통해서 합성하고 녹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런 장비들은 꽤 비쌌고 방송국이나 큰 비디오프로덕션에만 있었기 때문에  개인이 쉽게 사용할 장비가 아니었지요.

그 때는 비디오 영상 분야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는데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만든 새로운 형식의 뮤직비디오들과 다채로운 광고영상, 방송영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더욱이 어떤 작품이 비디오예술 영역에서  작품이 되는 것인지 조차 기준이 모호했고요. 사실 비디오 예술 쪽 작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품 정보 교류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비디오 작품은 자신이 새롭게 정의해서 만들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신도안 Sindoan_media installation(color, sound)_dimensions variable_1994

music: 황병기, 밤의 소리 Sound of the Night (1985)
© Courtesy of AliceOn



TV 해머_Media installation(color, sound)_8min 20sec, loop_1992 © Courtesy of AliceOn



AliceOn. 처음 비디오아트나 미디어아트에 기반한 작품 활동의 계기나 이유는 무엇인지요? 또한 현재까지 어떠한 변화와 함께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군대를 제대했던 80년대 초에 쯤에 개인이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용도로 개인용 캠코더 카메라 나왔는데 베타맥스, VHS 이런 규격의 일본 제품들입니다. 비디오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지인과의 인연으로 이런 장비들을 접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비디오라고 하는 매커니즘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죠. 


그 당시에는 브라운관 TV를 통해서만 비디오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브라운관 TV 화면이 유일한 비디오스크린 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백남준 선생이 비디오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모니터 장비는 브라운관TV 였어요.  그당시는 브라운관TV를 가지고하는 작업이 첨단의 작업이었죠. 2000년대 초반까지 브라운관TV는 주요한 미디어 장비 였습니다. 80년대 중반쯤에 나는 개인용 비디오 캠코더와 브라운관 TV라는 장비를 가지고 비디오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 시기 대전과 서울에서는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퍼포먼스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처음으로 비디오를 매체로 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필름과 달리 비디오 매체는 현상이라는 과정 없이 비디오카메라와 모니터를 연결하면 즉각 모니터에 영상이 보여 지게 됩니다. 주로 그런 기능을 이용한 미디어 퍼포먼스 작업을 하기 시작했지요.

<Image Section>(1988)이라는 미디어 퍼포먼스 작품을 살펴보면은 피아노 연주자의 피아노 건반 위에다가 비디오캠코더 다섯대를 설치 하여 피아노 건반을 5개의 영역으로 분할하여 촬영합니다. 그렇게 촬영된 건반 영상을 무대 공간에 분산 설치된 TV 모니터로 연결하여 피아노를 치는 손가락 영상이 라이브로 모니터 화면을 옮겨가면서 나타나게 하였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비디오 캠코더에 들어있던 미리 녹화하여 넣어둔 비디오테이프의 피아노 영상을  재생시킴으로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 영상과 녹화된 피아노 연주 영상이 음악과 함께 무대 공간에 어우러지게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디어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고  외국에서 미디어 아트를 공부한  작가들이 귀국하면서 다양한 여러 미디어 작품들이 보여 지기 시작합니다. 그 시기에 내 작업 역시 변화하면서  <TV해머> <신도안>이라는 미디어 설치작품을 하게 되었지요.
 
 


AliceOn. 초기 대표작 <TV 해머>(1992)는 망치가 화면을 내려칠 때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TV 모니터를 통해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이유와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89년도였나 그때 당시 저는 대전 소재 조그만 연극 소극장에서 극장의 소소한 일들을 도와주며 관계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소극장 무대 뒤 쪽에 깨진 무대 조명기 렌즈들이 있었는데 어느 땐가 비디오카메라를 TV와 연결한 상태에서 카메라렌즈 위로 무대 조명기 렌즈를 얹어놓고 그 렌즈표면에 초점을 맞추고 이런 저런 조작을 하다가 우연히 렌즈 표면을 만지게 되었는데 TV에서 나오는 영상은 TV브라운관 속에서 브라운관 경계면을 만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비디오카메라 렌즈 자체에서는 이렇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보여지 않는 이유는 카메라에는 카메라 후드라는 것이 있어서 카메라 렌즈 옆의 빛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렌즈 겉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자 TV영상은 브라운관 속에서 브라운관 경계 면을 톡톡치는 느낌으로 보여 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손가락 영상이 브라운관을 칠 때 마다 TV가 움직인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TV 해머>작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면서 제대로 된 미디어 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 당시는 꽤나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마침 유학 후 귀국한 선배 작가가 한분 계셨는데 제 작업 계획을 듣더니 좋은 작품이 될 거라고 조언을 해 주었는데 정보가 부족했던 시기에 그 선배의 조언이 힘이 되었지요. 그렇게 망치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그 작품 전체를 작가가 오롯이 다 하는 것 같아도 저는 완전히 그렇다고 보지 않아요.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데 어느 순간 물감이 흘러내렸다고 할 때  그 흘러서 내린 물감의 흔적이 작가가 마음에 들어 그대로 두었다면 그 흔적의 형태는 중력이 관여한 것이든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공간의 에너지 상황이 관여했다고 나는 봅니다. 망치 작품을 만들 때 먼저 움직임을 구현시킬 수 있는 키네틱 기계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제 구상으로는 망치가 브라운관을 칠 때 ‘쾅’하는 사운드와 함께 동시에 TV가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용도의 컴퓨터는 없던 시절이라 생각해낸 것이 망치가 브라운관을 칠 때 쾅하고 나는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센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어렵게 그 센서를 만들었지요. 쾅하는 사운드가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센서를 통해 전기 신호가 들어왔다 나갑니다.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전기 신호를 가지고 무거운 브라운관 티비를 움직일 수 있는 전동장치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술적으로 더 많은 진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망치 작품을 독일, 일본 등에서 전시를 할 수 있었고 어쩌면 이 작품 때문에 제가 미디어 작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AliceOn. 특히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망치질 소리는 어떻게 채집하셨는지요? 실재 사운드 인지요?

그렇죠. 사운드가 중요했어요. 사운드로 키네틱 장치를 컨트롤 해야만 하는 작품이니까요. 사운드는 실제 렌즈유리를 때릴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 작품에서는 원래 유리를 치는 소리만 들려야 하는데  TV를 움직이게하는 전동장치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기술적으로 그 소리를 완전히 없앨 수가 없었고 그 소리는 작품의 일부분으로 되었어요.

이번에 아라리오 미술관에서 전시한 버전은 그 소리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엔 움직이고 안 움직이고 하는 것은 이것도 아주 단순한 건데 영상플레이어 기기에 있는 스테레오 두 개의 사운드 중에서 한쪽 사운드는 전동장치를 움직이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또 다른 사운드는 실제 유리를 치는 소리가 나오게 하는 용도로 만들었지요. 그래서 유리를 치는 소리는 망치 영상이 브라운관을 칠 때마다 계속 들리게 만들었고 실제 TV를 움직이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운드는  TV가 이따금씩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정한 겁니다.



AliceOn. 작가님의 대표작들을 필두로 작품세계를 관통하여 ‘가상과 현실’이라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실재로 모든 미디어 작품에는 ‘가상과 현실’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다고 저는 봅니다. 제 작업에서 본다면 <TV 해머>가 대표적 인거죠. 모니터 속 가상의 망치가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의 브라운관 경계면을 내리치면서 자신이 속한 공간 자체를 흔들리게 만드는 인터렉티브한 작품입니다. TV가 흔들리고 난 후  화면속의 망치가 화면 밖을 향해 견주면서 움직이면 관객은 가상과 실재 사이에서 혼돈스러워하며 재미있어 합니다.

<TV 해머>는 오래된 나의 초창기 작업이었지만  인터렉티브 키네틱 작업이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터렉티브 작품의 관점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AliceOn. 여러 미디어아트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작가님 작품에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의 문제에서 미디어의 비물질성이 갖는 것들을 시지각적 측면에서 어떻게 재인식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어떻게 읽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요. 그냥 단순하게 보면  움직인다는 것은 기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사실은 <TV 해머>에서 가상의 망치가 정면으로 날아오다가 TV브라운관 경계면에 걸치는 거잖아요, 브라운관 유리면에 부딪히는 힘의 크기가 TV전체로 전달되어서  덜커덕하고 TV를 움직이게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화면 속의 움직이는 망치 영상은 실제로 화면 속에 이미지 인거지요.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이미지로  인식을 합니다. 하지만 그 망치영상이 브라운관을 내려쳐 TV가 흔들리고 난 이후의 망치 이미지는 비 물질이지만 이미 비 물질이 아니고 실재적 물질의 위상을 획득 합니다. 망치 작품에 있어서 그렇게 인식되는 지점이 재미있고 중요한 지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만을  말할 뿐이지요. 꿈을 꾸는 거랑 해몽 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꿈을 꾸는 게 작품이라면 해몽 하는 것은 비평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해몽에 맞춰서 꿈을 꿀 수 없는 노릇이지요.. ^^ 작가는 작가로서의 꿈을 꾸면 되는 거지요.
 


AliceOn. <신도안>같은 대표 작품을 보면 한국적 샤먼 같은 동양적 사유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미디어와 샤머니즘의 관계는 무엇인지요?

기본적으로 중개자 역할을 하는 거라 생각해요. TV가 중개자 역할을 하듯이, 예를 들어 무당도 그런 역할을 하는데 무당들은 죽은 자와 산 자와의 중간 역할을 하죠. 작품을 하는 작가 들도 무당의 속성이 있다고 봐요. 나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많은 고민을 해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번뜩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있죠 그런 영역이 무당하고 닮은 점이예요.

미디어도 샤머니즘과 진행되는 속성이 많이  닮은 데가 있어요. 방송 전파 같은 거 있잖아요.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고 만질 수 도 없지만 존재는 하잖아요.  TV를 켜면 이미지가 나오잖아요. TV가 무당의 역할을 하는 거라 볼 수 있죠. 방송전파는 ‘기(氣)’ 라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무당은 이 ‘기(氣)’를 받아들여 현실로 변화시켜서 이야기 해주는 겁니다. 그 ‘기(氣)’라는 것이 지금은 근거 없이 보는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상위적인 담론이었어요.

<신도안> 작품은 80년대 말 쯤 인가 사진촬영차 계룡산 신도안에 갔었는데 많이 놀랬죠. 길가에 양쪽으로 이어져 많은 촛불들이 켜져있는 무당의 제의(祭儀) 광경을 보고 어떤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을 받았어요. 그 제의(祭儀) 광경을 소재로 한 작업이 신도안 작품입니다. 실제적으로 촛불, 재단 등 제의(祭儀)에서 보았던 인상을 미디어로 재구성해서  설치를 했던 작품이에요. 중요한 것은 붓하고 초의 관계죠. 바로 사운드 소리에 반응하는 작업이었는데 촛불은 신과 인간이 소통하고자 할 때 쓰이는 도구로 보았고, 붓은 인간과 인간끼리의 소통할 때 쓰이는 도구 구요. 그리고 붓끝과 촛불의 형태가 비슷합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의 <밤의 소리>라고 하는 가야금 연주를  신도안 작품의 음악으로 선택했어요. <밤의 소리>를 선택한 것은 마지막에 무당들이 신을 받을 때 굿 행사의 최고조가 되는데 그 상황과 어우러지는 격정적인 리듬이 있어서 그 곡을 쓴 것입니다.

TV모니터가 설치된 공간바닥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그 스피커 위에다 붓을 세워 꽂아 둡니다. 스피커에서 가야금 소리가 날 때 그 소리의 진동으로 꽂아둔 붓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붓끝을 비디오 카메라가 잡아서 그 붓의이미지를 공간에 설치된 모니터로 전송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공간을 가득 채운 TV모니터들의 화면 속에 촛불 영상들과 붓 영상들이 가야금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보여 지는 작업이 <신도안> 작품입니다.



AliceOn.  <TV 해머>, <신도안> 외에 작가 김해민의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무엇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에게 있어 작품을 구상 할 때는 구조적 형식이나 조형적 형태가 먼저 떠오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 떠오른 형식의 흐름에  맞게 내용을 넣게 됩니다. 그런데 구조적인 형식의 틀이 없이 작업을 한다면, 예를 들어 내가 자본주의의 이면에 대해 작업을 구상한다면  나는 먼저 이 작업을 모니터 설치로 작업을 할까  프로젝션으로 작업을 할까 하는 것처럼 매체의 구성이 먼저 떠오른다는 겁니다. 이런 형식의 구성이 선행되지 않고선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설치 작품들을 보면 형태들이 나름대로 있고 기본적으로 평면적이 보다  입체적으로 인식되는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망치’작업도 약간 그런 편이고. 또 <RGB 칵테일> 작품이라던가 <발광으로 부터의 발광> 도 이런 작업에 속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구애 Seeking for Love> 작품을 좋아합니다. 어쩌다 전시를 하게 될 때 그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관객을 만나기도 하지요. 3개 채널의 비디오 작품인데 왼쪽 모니터에는 초저녁 어두운 밤거리를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가운데 모니터에는 나체의 여성이 밤거리에 서서 차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하고, 오른쪽 모니터는 교회의 신부가 기도를 하는 영상이 나옵니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 자동차 불빛이 3개의 모니터에 동시에 비추게 설정했어요. 사실 3개의 영상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리된 영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소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빛이 비출 때 마다 그들은 끝없이 희망을 걸고 구원을 바랍니다.이 시대에 진정 구원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작품입니다.  

나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 앞으로 계속 작업을 할 생각이니까 좋은 작품도 나오게 되겠지요. 하려고 하는 작업중에 뭐가 있나면 ‘춘향전’ 작업이 있어요. 근래에 했던 작업 중에 카메라 포커스 기능을 소재로 했던 <삼촌과 이모> 라는 작품이 있는데  내용은 포커스가 맞는 사람끼리만 소통하는 것처럼 보여 지게 만든 작업입니다. <춘향전> 작업도 카메라 포커스 기능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신상옥 감독이 아내이자 배우인 최은희씨가 납북 되었을 때 신상옥 감독은 최은희씨를  찾으러 북한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영화를 만들게 되지요.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라는 뮤지컬 ‘춘향전’을 만드는데, 그는 이미 60년대에 김진규, 최은희를 주연으로 춘향전을 만들었습니다.  남과 북에서 두개의 춘향전을 만든 거예요. 그 두 개의 춘향전을 가지고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3개 채널의 비디오 스크린을 앞쪽에서 뒤쪽으로 일정 간격으로 설치합니다. 제일 뒤쪽 스크린은 신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춘향전이 나오고 앞쪽스크린은 남한에서 만든 춘향전이 나옵니다. 그 중간에 설치한 스크린에는 6.25 전쟁이나 이산가족 등 분단에 관계된 영상이 나올 거예요.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삶의 곡절도 결국 분단의 문제에서 나온 거잖아요. 이 작품은 분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작업이고요. 작품 제목은 <신춘향전>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신상옥 감독의 2개의 춘향전을 가지고 만드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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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 Seekin for love_비디오 프로젝터, 이미지 컨트롤장비_가변크기_2008 © Courtesy of AliceOn


R.G.B 칵테일_비디오 프로젝터, 유리잔, DVD 플레이어_가변크기_2003-2008 © Courtesy of AliceOn


갓 쓴 남녀1_모니터 2대_2014

접속불량_단채널 비디오_비디오 프로젝터, DVD 플레이어_가변크기_2005
© Courtesy of AliceOn



AliceOn. 1990년대 이후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비디오아트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대신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소위 뉴미디어아트 / 디지털을 기반한 예술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는게 사실인데요. 한국의 1세대 미디어아티스트로서 현재의 미디어아트의 환경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기술의 혁신성을 이용한 일부의 미디어아트웍들이 예술적 철학이 많이 결여 되어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미디어 쪽은 그림 처럼 접근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림은 19세기 때 쯤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나요? 그 시기의 그림에 대한 기준들이 지금까지 유효하게 남아있다고 봅니다. 근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미디어 기술은 대단한 발전을 이루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빠르게 급진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합니다. 미디어 아트는 그 변화에 따라 쉬지 않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존 미디어 기기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미디어 기기들이 등장하니까요. 그 변화에 따라 호흡을 맞춰 작업하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장비들을 잘 다뤄야 하지요. 그런 측면에서 젊은 작가들이 유리하지요. 그들이 테크놀러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미디어아트는 젊은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또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기점으로 리셋 된 나라라고 봐요. 모든 것이 초기화 된 겁니다. 데체로 모든 것들이 전쟁 후에 다 들어왔다고 봐야죠. 모든 서양 예술 사조들도 순차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동시에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시차 없이 들어온 서양 논리들이 이 땅에서 우열을 놓고 많이 부딪친 겁니다.


저는 그 시대 문화를 보는 척도를 과학으로 기준합니다. 과학 자체가 그 시대에 전체를 전반적으로 대변한다고 보지요. 미디어 테크놀러지 쪽에서 본다면 21세기는 완전한 디지털시스템의 시기로 들어섰지요. 예를 들어 비디오 영상의 어느 지점을 찾고자 한다면 아날로그시스템에서는 테이프를 감는다던가 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디지털시스템에서는 렌덤으로 즉각 그 지점을 찾아낼 수 있지요. 대표적인 디지털 시스템이 인터넷인데 상호 정보 공유가 즉각적으로 이뤄집니다. 필요한 정보들이 공평하게 공유된다면 문화에 있어 중심과 변방이 없어지게 될 겁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요.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가장 최신의 장비들만 사용하면 됩니다. 컴퓨터를 쓴다면 최신 윈도우10이 깔린 컴퓨터를 쓰면 됩니다. 과거의 도스나 윈도우 XP 같은 소프트웨어를 배울 필요가 없지요. 그러니까 과거의 경험이 새로운 것을 익히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거지요.

미디어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 과거에 만들어진 미디어 작품들과의 연결 고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작품을 구현하는 장비들이 변해있기 때문인거죠. 지금은 브라운관 TV를 일반적으로 쓸 일이 없는 거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범용적으로 많이 나오는 장비를 사용해야 여러 측면에서 작품을 만들기가 용이합니다. 지금에 와서 문제인 것은 미디어 기기의 다양한 것만큼이나 미디어 아트의 종류도 매우 다양화 되었습니다. 기존의 개념으로는 미디어 아트라고 볼 수 없는 작품들도 속속 등장합니다. 분명 새로운 작업이지만 새로운 담론이나 미디어 이론들을 생성하지 못하지요. 그만큼 미디어 아트 쪽에 인문학적인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디어 전문 이론가들이 있는 앨리스온 같은 매체가 아주 중요한 겁니다. 시대가 그런 것인지 미디어 매체 자체를 가지고 실험하는 작업들은 많이 위축된 것 같습니다. 소위 주제전 기획 비엔날레가 많다보니까 미술이 가진 본연의 조형성을 중시한 작품 같은 것들은 다 사라져버린 거 같더라구요.


빨강그림자 파랑그림자1_모니터 2대, 프로젝터 1대(3채널), 조명 4개_2014 © Courtesy of AliceOn



AliceOn. 사실 과거부터 미디어의 사회적 작용과 영향은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고, 아마도 작가님의 작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텐데요. 예술에서 미디어의 궁극적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실질적으로 미디어는 귀의 영역이 있고 눈의 영역이 있다고 봐요. 귀 영역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장르는 음악이라 할 수 있죠. 음악의 소리 파동은 가슴으로 전달되어 오기 때문에 머리의 생각으로 따지지 않고 느끼면 되는 겁니다. 근데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은 약간 의심하게 되어 있거든요. 동영상이라는 것도 정지 장면을 이어 붙힌거 아닌가요? ‘왜 움직이지?’하고 말이죠. 의심을 한다는 건 머리를 쓰는거죠. 그래서 의심이 가장 많이 드는 영역이 미술이 아닌가 합니다.^^ 

눈의 영역은 안보고 싶으면 안보면 되지만 귀를 통해 듣는 소리는 내 의지로 막지를 못해요. 예를 들어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면?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위험을   빨리 감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귀는 항상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미디어는 우리의 오감을 계속 확장시킬 겁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지구의 모든 곳을 다볼 수 있는 거대한 눈,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거대한 귀, 모든 곳을 다 만질 수 있는 거대한 손을 갖게 될 것이고 지구의 모든 삶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껴안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게 되겠지요. 예술에서 미디어의 궁극적 역할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AliceOn.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작업 방향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몇 개의 계획된 작업이 있는데  게을러져서 자꾸 미뤄져요. 좀 더 바쁘게 작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춘향전> 작업도 빨리 하려고 합니다.




AliceOn.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과 정리:


정세라 (앨리스온 편집위원), 유다미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