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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다시금 공연을 앞두고 있는 태싯그룹의 장재호, 가재발 작가를 만났다. 2000년대 초부터 그들은 국내에서 생경했던 사운드 아트 및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운드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로부터 그들의 삶을 직조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주의 작업과 유사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엄중한 의미를 상호작용적인 유희적 요소로 풀어내었다.


지난 10여년간 태싯그룹이 발생시켜온 사운드는 어디쯤 와있을까?



Q. 태싯그룹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재호 : 태싯그룹은 2008년에 결성됐습니다. 전자음악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것, 특히 알고리듬 아트에 매력을 느껴서 대중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태싯’은 ‘침묵’이라는 뜻으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입니다. ‘4분 33초’는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작품으로, 악보에는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예술의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린, 혹은 무한대로 확장시켰다고 할 만한, 20세기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태싯그룹은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21세기에 충격을 던질 만한, 예술계에 필요한 획기적인 일을 벌여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Q.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그룹으로 시작했다가 몇몇 사람의 소규모 창작 협업으로 전개되는데, 태싯그룹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멤버들과 그룹 형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그룹 형태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장재호 : 태싯그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융합입니다. 특히 한 사람 안에서 다양한 장르가 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죠. 굳이 예를 들자면 다빈치가 그런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다양한 장르를 융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룹을 이루면 또 다른 시너지가 나고 또 다른 차원의 융합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태싯그룹의 생각입니다.


Q. 존 케이지의 작품이 소음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 와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 태싯그룹의 작업은 디지털적인, 컴퓨터 알고리듬에 기반한 사운드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기반한 사운드를 제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재발 :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다빈치에게 컴퓨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시대에 컴퓨터는 가장 매혹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툴입니다. 다빈치의 시대에 붓을 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면 현대를 사는 저희들에게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거죠. 시대에 따라 주요하게 사용하는 매체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컴퓨터는 그룹 작업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요.

이 점이 환경적인 요소라면, 또 다른 면으로는 컴퓨터로만 가능한 사운드 작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다닐 때 아주 짧은 소리 두세 개만으로 곡을 만들라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죠. 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하면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Q. 사실 컴퓨터 이전 세대에도 알고리듬 같은 코드를 사용하거나 디지털적인 사고를 가지고 작업한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루솔로 같은 경우가 그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알고리듬으로 사운드를 만든다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합니다. 과거에 사운드를 만들어온 행위와 지금 알고리듬을 베이스로 사운드를 제작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장재호 : 지금까지 작곡가들은 이미 만들어진 악기를 바탕으로 음악을 상상했습니다. 플룻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 바이올린으로 들려줄 수 있는 것이 다르니까요. 이런 상상력이 악기의 발전을 가져왔고, 또 악기가 발전됨에 따라 작가들은 더욱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을 탐구해왔습니다. 그렇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날에 이른 거죠.
전자악기의 경우는 처음에는 어쿠스틱 악기를 흉내 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자악기 고유의 매력을 인지하게 됐고, 더욱 전자적인 소리를 만드는데 포커스를 맞추게 됐습니다.

태싯그룹은 이 ‘악기’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어떤 소리가 나고 어떤 가능성을 가졌다 하는 일반적인 개념보다는 이 악기 안에서 공기가 어떻게 흐르기에 이런 소리가 나는 걸까 하고 따져보는 것에 가깝죠. 말하자면 좀 더 과학적인 베이스 위에서 사고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새로운 소리를 찾으려 하는 것은 예전 시대의 작곡가나 태싯그룹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예술적인 감성에 기반해 작업했다면 태싯그룹은 그 사고의 지평이 수학이나 물리학 법칙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System 1(2014) from Tacit Group on Vimeo.


Q. 전통적인 음악과 태싯그룹의 작품은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결과물 또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가재발 : 대중음악의 목적 중 하나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결과물들이 나오는 것이고요. 태싯그룹의 경우는, 물론 관객들의 즐거움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과물보다는 사운드가 생산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주력합니다. 저희들도, 연주자들도 어떤 소리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죠. 기존 작곡가들이 완성된 결과물을 생각하면서 작곡을 했다면, 태싯그룹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구축합니다.

Q. 과거 음악가들은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없는 음악을 만드는 것을 일종의 금기로 생각했다면, 태싯그룹은 오히려 우연적인 요소를 중시한다는 말씀인가요?

가재발 : 이런 고민은 있습니다. 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러니까 사운드가 생산되는 시스템을 만든 거죠. 그런데 그 결과로 나온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저희는 사운드 자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작으로 돌아가서 시스템 자체를 고칩니다. 어떤 분은 그렇다면 그건  제너러티브 아트가 아니다. 무조건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까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합니다. 이건 우리 작품이니까 관객이 좋아하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쓴다. 무작정 그런 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재호 : 태싯그룹의 목표가 알고리듬 아트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리듬은 태싯그룹이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알고리듬 아트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절대 이런 경계를 벗어나면 안 돼 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작가에게는 우연성, 즉흥성 자체가 목표이기도 하지만 태싯그룹에게는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즉흥 자체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기보다는 즉흥적인 것을 통해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업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태싯그룹의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재발 : 재작년쯤 ‘궁극의 작곡 툴’을 하나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뭘 넣든 좋은 음악이 나오는 알고리듬을 만들겠다는 건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사람들이 머리로 즐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이러저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나왔구나 하고 아는 것만으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이죠.

Q. 과거 예술에서 즉흥성이나 해프닝은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개념이나 과정을 공유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결과물이 관객들에게 일정 정도 이상의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미적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자생적으로 발생은 하되 관객들과 호흡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환경을 조성할까를 고민하고 조절한다고 해서 그 것이 발생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요. 최근 들어 컴퓨터를 이용해서 만든 음악이 많이 전파됐다고는 하지만, 기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직은 이질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태싯그룹이 분명 그런 걸 알고 있을 텐데도 그런데도 그런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부분에서 관객들이 이런 음악을 들어줬으면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장재호 :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스타일, 새로운 방식, 새로운 장르를 실험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운드 같은 경우는 꽤나 보수적인 장르여서 관객들은 익숙지 않은 소리를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래서 이질적인 사운드에 익숙한 요소를 섞어 관객들이 은연중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질적인 사운드에 익숙한 비주얼 요소를 섞는 것이죠.



System 2(2014) from Tacit Group on Vimeo.



Q. 태싯그룹이 비주얼에 신경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사운드만 들려줬을 때 관객들이 너무 어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왔습니다. 좀더 편안한 시각적 요소와 낯선 사운드를 융합해서 소개하는 것이죠. 게임적인 요소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장재호 : 게임오버에 그런 의도가 다분히 많습니다. 알고리듬 아트를 사운드로만, 또는 추상적인 그래픽으로 보여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알고리듬 아트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재미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재미를 관객들이 느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툴로 떠오른 것이 게임입니다.
 
Q. 태싯 그룹의 작업은 프로그래밍된 영역에서 보자면, 세 가지 층위에서 이야기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첫째는 작가가 시스템을 만들어 사운드가 발생하는 것. 둘째는 그 역할을 컴퓨터가 위임받는 것. 마지막으로 인간과 컴퓨터가 한 팀이 되어 작업하면서 야기되는, 예를 들어 게임 같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요소들. 각각의 층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장재호 : 전통적인 예술, 그중에서 미술을 예로 들면 화가와 매체가 있는데, 그중 매체의 역할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체가 컴퓨터로 바뀌면서 매체 자체에도 작가의 의도가 들어갈 수 있게 됐죠.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매체를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태싯그룹이 컴퓨터에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일정 부분 위임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역시 그것도 우리가 만들어낸 작업입니다. 대신 이전의 매체로는 불가능했던 것들, 예를 들어 수학적인 방법이나 랜덤한 방식을 적용하거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하며 가능성을 엿보는 것 같은 것을 할 수 있게 됐죠.

Q. 가장 큰 차이는 지금은 매체가 발생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작가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사운드를 위임하면서, 작가와 매체와 상호작용하는 것이죠.

장재호 : 전자음악이 시작되면서부터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전자음악이 단순히 소리가 전자적인 것이 아니라 작법적인 측면에서 개념 차이가 있습니다. 악기는 한 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죠. 플롯이 바이올린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자악기는 한 악기의 소리에서 다른 악기의 소리로 변해갈 수도 있습니다. 작법적인 측면이 달라진 거죠. 또 옛 악기에는 조율과 음계 라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지만 전자악기는 광활한 벌판처럼 제한이 없습니다. 그런 차이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바꾸고, 작곡가의 생각을 바꿉니다. 이와 비슷하게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것도 그런 개념의 차이, 작품을 만드는 접근 방법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Q. 또 한가지, 컴퓨터로 인해 시각적인 요소와의 융합이 원활해졌습니다. 우리는 예술을 청각적인 것, 시각적인 것 이렇게 구분을 해서 독립 장르로 즐겨왔습니다. 특히 시각예술에서는 사운드를 시각 요소를 도와주는 장치로 사용해왔죠. 태싯그룹의 작품은 사운드와 비주얼이 융합된 종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요. 청각적인 예술을 시각요소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는지 궁금합니다.

장재호 : 태싯그룹에 있어 시각적인 요소는 아름다움이나 배경이라기보다는 컨셉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안입니다. 작품을 만들 때, 소리는 어떻게 갈까 그래픽은 어떻게 갈까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컨셉을 정하고 거기에서 사운드와 그래픽이 만들어지는 거죠.

가재발 :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부차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모르스 쿵쿵’ 같은 경우는 그래픽 요소를 먼저 시작했고, ‘Drumming’이나 ‘훈민정악’은 사운드가 먼저였습니다. 사운드가 됐든, 그래픽이 됐든,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Q. 6년 전 누군가 태싯그룹을 분류한다면 어떻게 분류되고 싶은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그룹이라고 대답하셨는데, 비주얼이나 오디오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그룹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가요.

가재발 : 항상 생각하는 부분인데, 다른 사람이 이미 해놓은 작업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슷한 아티스트가 있는가, 누구에게 영감을 받았나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사실 별로 없습니다. 작업을 할 때에도 누군가의 작품을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아주 혁신적이지는 아니더라도 미처 누군가 발견하지 못한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Q. 그런 부분이 태싯그룹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의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름의 마니아층이 생겼을 것이고요. 한국에서 이런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든 점은 어떤 것입니까?

장재호 : 제일 아쉬운 것은 우리 작품에 대한 비평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공연을 의뢰할 때도 태싯그룹의 작업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와 컨셉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니 공연을 해달라라기보다는 그냥 이름만 보고 의뢰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의뢰가 들어올 때는 다릅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이해하고 태싯그룹이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알고 섭외가 들어옵니다.

가재발 :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인지 다방면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평을 넓혀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싯그룹의 작품에는 여러 장르가 융합돼 있는데, 막상 함께 일하게 되는 디렉터나 큐레이터들은 자기 분야 외부의 인접예술에 대해 인지하고 탐구하려 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Q. 기획자로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태싯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가는 팀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새로움만을 취하려고 할 뿐, 왜 새로운지, 왜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새로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립니다.

가재발 : 태싯그룹의 작업이 향후 예술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말로는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어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분명 사명감이 존재합니다.


LOSS(Life of Sounds) from Tacit Group on Vimeo.



Q. 태싯그룹은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가재발 : 리얼타임이라는 매력이 있습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공연에서 ‘LOSS’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29분에 강제 종료해야 했는데, 이를 두고 미학적인 관점에서 과연 강제 종료를 해야했나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관객들이 너무 지루해 했습니다. 사운드도 이질적이고요. 사실 우리 귀에는 사운드가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이 들리지만 어떤 관객에게는 그냥 삐 하는 소리 정도로만 들리기도 하니까요. 반면에 사운드가 너무 풍부하고 아름다워서 이 연주는 지금까지 중 최고라고 생각되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스튜디오에서는 깎고 다듬어서 이런 거친 현장성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Q. 환경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안전한 방공호 같은 곳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하고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요소들이 종합된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측면에서 공연을 중시하시는 거군요.

장재호 :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민인 지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공연할 때 연주자들이 컴퓨터를 앞에 놓고 앉아 있습니다. 관객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틀어놓고 하는 척 하는 것과 진짜 하는 것의 차이가 무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Q. 실시간성, 즉흥성, 우연성에 의해 연주가 미묘하게 변할 때 과연 관객들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가. 즐길 수 있나 하는 것이군요.

장재호 : 어떤 작품은 화면에 손을 보여준다거나 해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지점은 항상 고민입니다.

Q. 대부분의 경우 관객들이 예술 장르를 접할 때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지금부터 어떤 공연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예상치가 있는 거죠. 태싯그룹의 공연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관객들이 바뀌어간다는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까.

장재호 : 많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관객이 중간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인지 달라진 느낌이 있긴 합니다.

가재발 : 공연을 잠깐 멈추면 어떨까도 생각합니다. 2-3년 정도? 태싯그룹의 공연이 비슷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섯 명의 연주자와 스크린, 그리고 이해 못 할 사운드. 영상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매번 똑같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rgan(2014) from Tacit Group on Vimeo.



Q. 그런데 태싯그룹이 그런 공연 형태를 확립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공연의 한 레이아웃을 만들어낸 거죠. 공연의 내적 요소, 사운드나 비주얼을 보고 있는 관객은 작품의 의미를 이해할 겁니다. 그런데 레이아웃만 보는 관객에겐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관객의 한계와 관습화된 형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부적인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보죠. ‘ORGAN’은 ‘SPACE’와 연계지점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발생 예술적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소리의 일생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생각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재호 : 사운드를 생명체로 보겠다는 컨셉은, 유학시절 아티피셜 라이프에 대해 배우면서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신에 되어 내 세계를 창조한다는 컨셉이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실험했던 것은 태양계를 만든 것이었는데, 수치를 조금만 바꾸어도 별들이 부딪쳐 죽어버렸습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걸 음악을 만드는 데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때는 기술적인 부분이 힘들었습니다.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이 나오지 않은 거죠. 태싯그룹을 시작하면서 이런 컨셉을 다시 시도해본 작품이 초기작인 ‘SPACE’입니다. ‘SPACE’의 원칙은 단순합니다. 별들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죠. 그후 ‘LOSS’ 같은 경우는 유전학 같은 아이디어를 가져와 작업했습니다.

가재발 : ‘LOSS’에서는 연주자가 연주를 하지 않습니다. 버튼 하나로 초깃값을 주는 게 전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컴퓨터가 작업합니다. 전시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죠. ‘LOSS’가 어려운 작품이었던 것이 계속해서 난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소리가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은 서로 다른 성끼리만 해야 하는 걸까. 서로 다른 성이라면 누구와도 결혼을 해도 되나. 아이가 아버지 소리를 만날 수 있나. 만나야 하나. 모럴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싯그룹의 시각이 개입하는 겁니다.

Q. ‘LOSS’가 사운드들이 오래 아름답게 사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ORGAN’에서는 그런 배려가 보입니다.

장재호 : ‘LOSS’의 엔딩은 모든 사운드가 죽는 것입니다. 비극적인 결말이죠. 반면에 ‘ORGAN’은 밝은 측면이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사운드를 주시하면서 컨트롤하고 캐어할 수 있는 환경인 거죠.

Q.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재호 : ‘LOSS’가 생명체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면, ‘ORGAN’은 아주 작게 들어가서 사운드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라는 개념입니다.



Six Pacmen from Tacit Group on Vimeo.



Q. ‘Six Pacmen’의 경우는 직접적인 메타포를 가지고 작업을 한 듯합니다.

가재발 : ‘Six Pacmen’은 연주자들이 협력해서 장애물을 클리어하는 협동 게임입니다. ‘훈민정악’이나 ‘GAME OVER’가 대결 모드였는데, 그걸 넘어서는 게임 형식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Pacmen’ 게임을 조금 틀어서 협력을 해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든 거죠. 사운드나 비주얼을 먼저 생각했다기보다는 컨셉을 찾은 것이고, ‘Six Pacmen’이라는 아이디어는 Steve Reich의 ‘Six Pianos’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Q. 배틀 모드에서 공동 생존의 게임으로 프로세스가 바뀌었고, 그래서 사운드도 달라졌다는 것을 관객들이 눈치채 줘야 하는 데요.

가재발 : 그런 것들이 비판이나 평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Drumming from Tacit Group on Vimeo.



Q. ‘Drumming’의 경우 원곡이 있습니다.

장재호 : ‘In C’ ‘Drumming’ ‘Six Pacmen’이 원곡이 있는데, 모두 미니멀리즘에 속하는 작업입니다. 태싯그룹의 작업들이 미니멀리즘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대부분 단순화된, 끝없이 반복되는 형태를 떠올리는데, 음악적으로 보자면 결론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작업입니다. 그런 점에서 알고리듬 아트와 유사하죠.

가재발 : 미니멀리즘 작업을 좋아하고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 즐기기에 쉽지는 않죠. 태싯그룹의 공연으로 tacit.perform 시리즈가 있는데. tacit.minimal이라는 별도의 공연 시리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좋은 작품인데 난해해서 접하기 힘든 것들을 태싯그룹이 재해석해서 즐기기 쉽게 만들어 해보자는 의도였죠. ‘In C’ ‘Drumming’ ‘Six Pacmen’를 작업했고 ‘Bolero’ 작업을 하던 중 결국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Q. 태싯그룹이 기존 악기와 협주를 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의 속뜻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정수만 남기는 행위라고 봤을 때, 그런 생각으로 기존 사운드와 협연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장재호 : 태싯그룹 이전에는 그런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전통적인 전자음악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했던 작업 형태죠. 그래서 안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태싯의 포커스는 악기보다는 컴퓨터 안에서만 최대한 뽑아내보자는 것입니다.

Q. 태싯그룹의 작품을 경험하는 관객들에게 작가들이 당부의 말, 가이드를 준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까?

장재호 :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을 즐기던 분들, 아닌 분들. 이렇게 나누어본다면. 전자의 경우 태싯 그룹의 작품이 해석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 작품의 메시지가 뭔가. 이게 음악인가 소리인가 같은 혼란이 올 텐데 전통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려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기존의 판단 툴을 떠나서 어떤 생각을 담으려 했는지 작품을 관찰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즐길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가재발 : 태싯공연은 현장성(real time performance)을 강조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친 부분들이 있습니다. 작품자 입장에서 관객에게 감안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설명을 하자면 사운드의 경우, 가수의 공연 같은 경우는 미리 준비를 해놓기 때문에 매끈한 소리가 가능하지만 태싯그룹은 즉흥이나 우연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에 준비를 해놓을 수가 없습니다. 영상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작품마다 도입부에 작동원리, 그러니까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것들을 심어놓습니다. 그때 집중해서 보면 원리를 알게 되고 이후 작품이 재미가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장재호 : 초기에는 태싯의 방향성이 정해져있지 않았습니다. 그때 만든 작품들이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달려왔고, 이제 다음 방향성을 생각해봐야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재발 : 8년 동안 정기공연을 6번 했습니다. 공연마다 다른 작품을 하려고 했고, 1년에 세 작품 정도를 새로 작업한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양이죠. 그래서 태싯그룹 공연이 매번 똑같다는 말에 더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공연이 아니라 다른 매체도 생각합니다. 음반이나 책, 전시도 좋겠고.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재호 : 저 같은 경우는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아서 하드웨어로 무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Q. 긴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태싯그룹(Tacit Group)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tacit.group



인터뷰 진행 : 유원준 [앨리스온 편집장]


* 본 인터뷰는 2015년 10월 아르코 미술관의 [미디어 프로젝트 - 아카이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르코 미술관 : http://art.arko.or.kr

http://art.arko.or.kr/nr5/?c=5/23&sort=order_uid&orderby=desc&uid=12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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