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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관찰과 탐구는 과학자들만의 영역은 아니었다. 예술가들도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물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자신만의 논리와 방법을 통해 표현하였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본질을 이미지로 담아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구조를 탐구했으며 인간과 세계 간의 근원적인 지각 관계를 고민했다. 그는 하나의 객체에 대해 몇 시간이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붓질을 해 나갔고 결국 원뿔과 원기둥, 원이라는 조형 언어를 정립해내었다. 세잔은 감각과 지성을 대립항이 아닌 한 데 합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김윤철 작가는 세계의 형상인 이미지 너머의 본질, 질료에 관심을 두고 스스로 그 물질을 제작하고 다루어내고있다. 그는 물질을 다루며 완성되어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유동하는 상태를 만들고 그 잠재성을 드러내려 시도한다. 그는 유체역학, 재료공학, 기계공학을 넘나들며 메타물질에 접근하며 동시에 자신의 눈과 손을 통해 시간과 반복을 거쳐 그를 현실에 구현한다. 감각과 지성 모두를 물질에 풀어나가는 그를 만나 보았다.


 AliceOn  작가님이 걸어오신 길을 보면 음악에서 시작해 유체역학이라는, 관심을 가지고 진행하고 계신 분야간의 맥락을 전혀 알 수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청각 매체에서 시각적인 물질을 다루기까지, 예술에서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계기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계기는 다양할 수 있는데, 대학 때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자 음악을 다루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매체, 뉴미디어를 접하게 되고 시각 매체를 다루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죠. 퍼포먼스나 공연 예술을 접하게 되고, 그들과 합류하여 여러 활동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 중 시각 예술로 넘어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지금 하는 유체역학도 어떻게 보면 음악처럼 시간 베이스이고, 시간에 물질을 더하는 것이라 힘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면 조금 달랐겠죠.


또 다른 측면으로는 90년대 말의 상황이었어요. 당시 유럽은 프로젝션이나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아트와 같은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독일에 유학중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었죠. 그러던 어느 순간,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이 저 스스로에게 재미가 없어졌고 뭔가 다른, 만질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위해 목공소에 가서 나무도 만져보고, 이전에는 전혀 시도해보지 않았던 재료를 접해보기도 하다가 점점 저 스스로가 제어할 수 있는 물질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자기학이나 화학도 찾아보게 되고 그렇게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다가 이렇게 유체역학, 물리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에요. 5-6년 정도 꾸준히 시도하고 공부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AliceOn  콕 찝어 ‘유체역학’이 저에게 유별나게 다가왔던 이유는 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일 것 같습니다. 화학공학과를 다녔었는데, 그때 유체역학은 학생들 모두에게 악마의 과목의 대부격이었어요. 전공자에게도 그러한데 이러한 낯선 다양한 학문들을 접하고 자기화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5~6년 전까진 제가 다루는 것이 유체역학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독일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어느날 두 분이 찾아와서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어요. 한 분(천체물리학자 제이미 포레로-로메로(Jaime E. Forero-Romero) 박사)은 천문대에 속한 연구소에서 태양의 표면 물질을 연구하는 연구자라고 소개하며, 제가 하고 있는 것이 당신이 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마추한 작품이 <Triaxial Pillars>였습니다. 그 분은 유체체역학을 전공했는데, 저에게 테일러 코터 플로어(Taylor-Couette Flow)라는 현상을 찾아보라고 알려주면서 그 자리에서 강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연구분야를 자기 유체 역학(Magnetohydrodynamics)이라고 소개했는데, 그 말도 그분을 통해 처음 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용어들을 하나도 몰랐습니다. 이후에 그분은 저를 베를린의 포츠담천체물리연구소(Leibniz Institute for Astrophysics Potsdam/AIP)에 초대해서 본인의 연구를 보여줬는데 정말 제가 하는 작업과 비슷했습니다. 다만 다른 지점은 그분의 방법론은 모든 것을 데이터화해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었고, 저는 데이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상과 이미지와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체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머니가 김치를 만드실 때 효모가 어떻고, 발효과정에 대한 화학 작용이 어떻다는 메카니즘은 모르지만 그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체득하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시작했던 게 쌓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그분은 함께 공동으로 무언가를 해보자고 제안을 하셨고, 그분과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가 루치아 아얄라(Lu ca Ayala)박사와 2011년 프로젝트 그룹 '플루이드 스카이스(Fluid Skies)를 만들고 1년 동안 함께 하며 천문학, 물리학, 미술사, 여러 매체 이야기를 매주 진행했어요. 어느 순간 우리가 공통의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가 바로 융복합적인 무언가를 시작한 시점입니다. 과학자는 심포지엄에 대한 것을 준비하고 저는 전시를, 미술사가는 책을 썼습니다. 이 경험 이후부터 과학적인 방법, 과학 철학에 대해, 현대 과학에서의 예술과의 접점들을 알게 되었고 과학 세계와 과학자들과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본격적으로 미적분을 하고 방정식을 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논문은 정말 많이 읽습니다. 논문을  읽고 그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 예를 들면 광 결정을 얼마나 균일하게 분포시켜야 하는지  등의 조건이나 인자에 대해서 알게 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런 연구와 다른 지점은 그 사람들은 균일한 결정들을 원하는데 반해, 저는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는 거죠. 재미가 없는 거죠. 명료한 결과값이 아니라 더 불안정한 고분자를 만들어야 사건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제 활동을 사람들은 예술과 과학간의 교류, 융합 등등으로 얘기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전시를 보면 드로잉도 많고, 어떤 것들은 비과학적인 프로세스를 가지기도 합니다. 



Triaxial Pillars, 2010-2013

Glass Cylinders, Aluminum, Photonic Crystal, Neodymium, Motor, Computer, etc.
150 x 10cm, 150 x 10cm, 120 x 10cm each


 AliceOn  <Triaxial Pillars>라는 작업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 작업 같은 경우 광 결정을 이용한 것인데 어떤 계기로 그 물질을 다루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만들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한가지가 <Flare>처럼 은색의 어떤 액체였고, 또 하나가 나비 날개처럼 메탈릭하고 광학 작용으로 색이 다르게 보이는 상태였어요. 여러 가지를 찾다가 광결정을 이용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로플루이드(ferrofluid)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액체 자석인데 바로 광 결정 물질이죠. 그래서 페로플루이드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실험을 했어요. 페로플루이드는 특허도 풀려있는 상황이라 정보가 많았습니다. 페로플루이드를 제작하다가 표면이 푸른빛이 도는 금속성의 느낌이 나는 순간을 관찰했고, 그것을 보고 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막무가내로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염료도 넣어보고 식초도 넣어보고... 그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의도한 바에 대해 망치고, 잘 나오는 것에 대한 방법적인 기준이 생겼어요. 샘플병 몇 백 개를 가져다 두고 저 나름 서로 비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없어서 안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논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페로플루이드의 결정에 관한 나노 물질에 대한 논문이었죠. 그 전까지는 내가 만든 게 무엇인지, 어떤 원리인지에 대해 잘 몰랐어요. 논문을 읽으면서 비로소 어떠한 온도로, 몇 RPM으로 휘저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균일하게 나오는지 알게 되었고, 만약 그렇다면 결정들을 코팅으로 결정들의 빛의 굴절을 분명히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어느 순간에 진짜로 됐고, 정말 기뻤어요. 

제 첫 전시에서 천문학자를 만나 과학과의 연계성을 알았고, 이후에도 재료 공학이나 유체역학 하는 분들이 오셔서 제 작업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셨어요. 제가 만든 것이 메타 물질에 속하며 제가 만드는 물질이 그분들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재료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던 것 같습니다. 


 AliceOn   은색에 대한 액체에 대한 것은 어떻게 보면 액화된 금속, 혹은 물성에 대한 관심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이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하는 유동적인 물성을 다루는 데까지 연결되는 거로 볼 수 있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AliceOn   작품을 보면서 '이건 어떻게 만든걸까?' 라는 상상을 하다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진짜 맞는 것인가 확인하려고 했는데 제작방법이나 원리에 대해 비밀로 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어요.


안 가르쳐주지는 않는데(웃음)... 몇 분들에게는 선물로도 드리고 그래요. 제가 만드는 이 방법을 정량화해서 특허를 같이 내자는 분들도 꽤 있었고,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에게는 시작지점의 아이디어와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특별하게 특허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오픈소스라고 하기에는 물질 자체를 사람의 손으로 물리적으로 다루기에 쉽게 알려주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죠. 

이 물질을 다루는 저만의 노하우가 있어요. 과학 하는 분들도 어떻게 이게 이렇게 나오는지 궁금해해요. 그에 대해 저는 항상 비과학적 생각, 감각으로 체험하는 프로세스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해요. 과학 실험을 하시는 분들은 페로플루이드를 곤로에 놓고 가열하면서 200도, 250도 환경을 정확히 제어하고 체크하면서 기계를 통해 정량적으로 혼합하죠. 하지만 저는 애초에 그것을 제 손으로 진행합니다. 실험실에서 하듯 교반기를 쓰면 그 결과물로는 작업이 안 돼요. 불규칙한 결정들을 만들어야지 패턴이 입체적으로 나옵니다. 그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하기가 되게 모호한거죠. 



 AliceOn   과학자들이 같은 물질을 실험실에서 다루는 것과 작가님이 작업하는 것은 그 방향이 완전히 다르네요. 말씀하신 물질에 대해 정확히 계량하여 공식화하고 정의하며 다루는 것과 작가님의 감각을 통해 다루어 나가는 것 사이의 간극이 큰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다르죠. 재료 공학 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 황당해하는 분들도 많아요. 박사까지 하신 분들은 직접적으로 물질을 다루는 실험보다는 시뮬레이션을 많이 합니다. 제 누님이 화학과 교수인데 너같이 열심히 화학 하면 노벨상 나온다고 하는 말까지 해요. 어떤 때는 비커를 석 달내내 젓고 있던 적도 있어요. 저는 물질도 그렇지만 제 손의 운동을 관찰해요. 제 감각이죠. 과학에서는 데이터가 필요하지 감각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제 감각으로 진행하고 소화를 해야하니 두 달, 석 달을 비커를 저으며 그 물질을 '체험'해요. 애초에 불가능한 상상도 있지만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실현하기위해 실험의 과정과 원리가 필요하기에 대학원 수준의 논문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예술과 과학의 융합, 통섭이라는 거창한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어떤 카테고리를 만들면 작가들은 항상 빠져나오고 싶어하죠. 제가 고등과학원에서 일하는 것도 인문학적인 요소들을 가져오려는 것이지 예술에 과학적인 것들을 가져오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물론 제 작업이 과학과 관련된 영역이 있기에 거짓말은 아니지만 무언가 키워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부담은 있습니다. 



 AliceOn   과학과 예술의 키워드에 대한 부담을 느끼시는 이유가 이 두 가지가 분리되어있고 이들을 만나게 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윤철 작가님 작업을 보면 그런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이 목적을 가지고 이상적인 공식을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거라면 그 반대편에 김윤철 작가가 있는 것이고요. 

작가님의 작업을 기존 예술의 범주에서 보면 기존에 행해왔던 것과는 다르고, 한편 과학으로 보기에는 어떤 역행하는 부분도 있고 목적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과학과 예술이라는 키워드에 잘 어울리면서도 그런 시각으로 제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에티켓이 붙어버리면 제가 할 수 있는 얘기가 한정되는 거죠. 그리고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것이 금방 흩어지는 것이 아쉬워요. 예술가가 이용당한다는 측면도 있지 않아서... 앨리스온을 오래전부터 봐왔지만 이렇게 오래 지속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AliceOn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 더 깊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성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김윤철 작가의 작업은 시각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다른 것 같습니다. 물성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이 예술 언어 안에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Planck-Institut)의 소장 한스 욕 라인베르거(Hans-Jörg Rheinberger)가 쓴 실험 체계(experimental system)라는 논문이 있어요. 그 논문의 내용 중 과학자가 자신의 지식적 대상과 기술적 대상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는 체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과학이 어떻게 지식을 생산하는지, 어떤 실험을 통해서 방법론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논문을 젊은 독일 예술가들이 엄청 좋아해요. 어떤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감각적인 데이터를 버리거나 선택했을 때 그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프로세스가 생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예술가들의 실험과 과정과 비슷해요. 특히 유럽에서는 방법에 대한 담론이 많이 생성되어왔습니다. 예컨데 미디어에 대한 담론이 많았을 때는 사회학적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요. 이 때 방법적인 이야기가 주가 되면서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난 거죠. 사회 담론에서 과학 담론으로 변화하면서 이 시각이 문화 사회 영역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거죠. 결국 예술의 언어는 굉장히 다원화됩니다.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에서 오랫동안 감독을 한 안드레아스 브뢰크만(Andreas Broeckmann)은 미디어아트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요. 미디어아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과학철학, 기술 담론, 유물론, 소프트웨어 공학, 인공지능까지 들어와 너무나 다원화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매체'라는 단어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죠.  즉 브뢰크만은 미디어아트의 종언이 아니라 포스트 미디어로 넘어가자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과학적인 산물이 아닌 것으로 예술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것이 예술과 과학인 거죠. 



 AliceOn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철학적 흐름과도 굉장히 유사한 것 같습니다. 기호학에서도 대상으로 한정시킬 수 없는 개념, 과학에서 시도하는 개념화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과학과 예술 카테고리 안에서 그 어딘가쯤에 김윤철 작가님이 그런 흐름을 행하고 계시지만, 방법론에서는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것에 고민이 있으신가요? 


그런 개념화나 물질화, 대상화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개념작업인가, 물질에 대한 것인가 하는 고민이죠. 제가 하는 작업은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성질을 만지는 것이죠.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순 없어요. 새로운 물성을 찾아가는 건데, 제가 빈에 있을 때 그와 관련된 담론이 많았어요. 

그 고민과 연관할 수 있는 개념 중에 카렌 바르드(Karen Barad)라는 미국의 여류 과학철학자의 매터링(mattering)이 있습니다. matter가 뜻이 물질, 사건 두 개잖아요. 매터링이라고 하면 모든 물질과 개념을 다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과학자도 매터링을 하는 것이고, 주식을 하는 사람도 매터링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카렌 바르드는 페미니스트이기에 젠더 문제 역시 매터링이라고 봐요. 즉 모든 문제를 매터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제가 시도하는 것도 매터링이예요. 물성화하는 것이 매터링인 것이죠. 

이 매터링이라는 개념은 하이데거가 한 말과 연관 지을 수 있는데, 하이데거는 세상을 월딩(Worlding)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진행형으로 본 것이죠. 제가 보는 세계도 그렇습니다. 진행하고 있고 끝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기에 매터링이라는 개념이 매우 잘 맞는 것 같습니다. 



 AliceOn   물질에 대한 기존의 접근은 정리된 법칙이나 완결된 의미였습니다. 작가님의 경우에는 완결되기 이전의 가능성, 모든 것을 포괄한 지점에서 진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광결정은 물성을 안정화하고 고정하는 과정을 거쳐 디스플레이라는 완성된 상품이 되는데, 작가님은 그 이전의 과정에 집중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과정중에 잡아내는 물성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방향성을 미리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시는지, 혹은 미지의 결과를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설계냐, 발견이냐하는 차이일 것 같은데요.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둘 다 가지고 있어요. 완벽하게 광결정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어렴풋이 어떤 물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지금은 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상태에 온 것 같아요. 인공지능 분야에서 휴리스틱(heuristic) 방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휴리스틱이라고 해요. 모든 것을 확률로 할 수도 있지만, 해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절대로 알고리즘을 짤 수 없는 것들. 제가 만든 과정들도 어떤 것은 우연히 된 것도 있고, 목표한 것도 있고, 아예 절대 되지 않는 한계에 부딪힌 것도 있어요. 항상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AliceOn   우연적 발생과 제어라는 키워드를 말씀하셨는데, 이 두 가지가 충돌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우연적인 사건으로서의 발생, 그리고 발생을 정리하고 안정화하는 것이 제어의 측면일 것 같은데, 병행이 되야하면서도 분명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역설이기도 하고요. 특히 과학 하시는 분들이 놀라는 지점이 있어요. 재료 공학에서 광 결정이라는 것은 1g, 2g 단위에서의 문제인데 저는 한 5kg 단위로 과정을 진행하니 그분들이 놀라는 거죠. 그걸 언제 생산을 하냐는 거죠. 공장이 있냐 하시는데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찾아요. 그리고 단위 자체가 다른 상황에서 우연적인 사건도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AliceOn   맞물리는 부분이 항상 있는 거죠. 제어에서 발생으로 가는 측면과 발생이 결국은 제어를 수용하는 측면에서요. 전자 음악을 하셨던 것도 지금 말씀하신 부분과 비슷한 욕구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한국 대학의 음악관련 학과에서는 현대 음악만을 가르쳐요. 저는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현대 음악을 안 하면 학점을 못 받아요. 알지도 못하는데 12음 기법을 사용해야 하고, 온갖 특수한 악기를 연주해야 하고...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학습했는데 거기에 굉장히 싫증이 났던 것 같아요. 음이 12개니까 12개를 순차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거예요.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만 할 수 있으면 작곡을 할 수 있는 거죠. 그게 혁명적이긴 해요. 도, 레, 미, 파에서 권위 체계가 없어지고 민주적으로 배열되기 때문에 혁명적이라고 생각해요. 

잭슨 폴록이 물감 던지기를 시도한 건 분명 대단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미대를 들어갔더니 너도 물감을 던지고 있으니 저는 적응이 안 되는 거죠. 도와 레 사이에도 수많은 음이 있잖아요. 전자음악을 해서 그런 것을 없애 버리겠다는 반항심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AliceOn   작가님의 작업을 과학적인 방법과 언어에 대한 이해 없이 감상할 때, 피상적으로만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봐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머님들이 김치를 만들 때, 화학적인 작용을 모르지만, 그 과정을 감각으로 체득하고 계시죠. 제가 과학자와 분명히 다른 것은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중시한다면, 저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감각이란 사람마다 굉장히 다양하죠. 할아버지에서 아이들까지, 많은 이들이 많은 반응을 보입니다. 즉각적으로 보고 신기해하거나 징그럽게 보는 분들도 있어요. 독일에서 전시할 때는 매일 와서 보시는 분도 있었어요. 전문적인 질문이나 유체역학의 이야기도 좋지만 생생한 물질과의 조우에서 오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예술가로서 중요하고 감사하죠. 전시는 문화 차원이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은 꼭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프로세스나 작업과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조그마한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감각과 느낌은 좀 더 풍부해지겠죠.




 AliceOn   이번 전시 제목 <몽환포영로전>은 이번 전시를 위한 키워드인가요? 평소에도 생각을 하고 계셨던 생각인가요?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꿈 · 환상 · 물거품 · 그림자 · 이슬 · 번개)이라는 말이 제가 모은 단어가 아니고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에요.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장 덧없는 물질과 상상이 있는데 그게 꿈, 환상,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6개를 추렸대요. 제가 하는 작업이 6개의 요소가 다 들어가요. 몽환적이고 착시현상도 있고 거품도 항상 있고, 액체니까 이슬이 있고, 전기도 있죠. 



TRIAXIAL PILLARS from Yunchul Kim on Vimeo.


 AliceOn   모든 것이 항상 변한다는 의미와 실제 물리적으로 그것들을 다룬다는 이중적인 의미도 함께 있네요. 성질로 나누면 굉장히 다른 것인데 전기, 이슬 이런 것과 함께 몽(꿈)이 함께 있는 게 재밌네요.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가보겠습니다. <Triaxial Pillars>에 각각 이름(Daisy Chain, Morpho, Pulsar)이 붙어있는데, 각 명칭과 색에 대한 의미가 있나요? 


첫 버전에서는 세 개가 완전히 달랐어요. 지금은 독일에서 오리지널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완전히 똑같이 만들 수가 없어서 지금은 색만 다르지 성격이 비슷하거든요. 근데 원래는 차이가 있습니다. 펄사(Pulsar)는 정확하게 맥동해요. 전자석이 안에서 정확한 타이밍을 가지고 맥동을 가지기 때문에 펄사라는 이름이 붙었고, 데이지 체인(Daisy Chain)은 꽃다발 모양으로 자력선이 생겨요. 모르포(Morpho)는 모르포라는 푸른색을 가진 나비가 있어요. 그 나비의 날개에서 색을 착안했고, 원래는 더 투명한 푸른색입니다. 금색도 원래 의도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은색인데, 광 결정이 포화상태가 되면 금색으로 변해요. 또 균일하게 퍼질 때는 흑색에 가까운 은색이 되고요. 환경의 온도나 처음에 따를 때 상태로 색이 결정되고, 파란색은 특수한 염료를 섞었어요. 


최근에 하고 있는 실험인데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는 게 있어요. 광 결정이 조금 더 발전하면 색을 구조로 발현하게 돼요. 분자 간의 차이가 스펙트럼을 만드는 거죠. 말하자면 정말 신물질이죠. 현재 그게 가능해요. 상용화가 되면 모든 물감과 염료가 사라질 수 있어요. 물론 다 사라지진 않겠지만. 제 생각엔 나중에는 옷을 켜고 나가게 될 거예요. 원하는 색을 켜고 나가는 거죠. 실시간 변하는 구조색을 착용할 수도 있고. 저는 그것을 광 결정에서 이미 경험을 해요. 입자 간의 거리 때문에 색이 정말 변해요. 그 구조색을 만들려면 정말 결정이 완벽하게 안정적이어야 해요. 그동안에는 불규칙한 것들을 선호했는데, 구조색은 나노 입자가 99% 균일한 사이즈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이 쉽지는 않죠. 구조색이 나오면 미술계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liceOn   <Triaxial Pillars>가 세 개인 이유가 있나요?


제가 굉장히 비과학적인 사람인 게 꿈에 그게 나왔어요. 꿈에 책상에 칼이 세 개가 있었어요. 그러고 한참 후에 이 작업을 만들고 있는데, 옛날 일기를 보다가 <Triaxial Pillars>의 유리를 눕혀 놓으니 딱 그 칼 모양이었어요. 그 생각이 확 나서 꿈에 세 개가 나왔으니 세 개를 만들자 했죠. 그래서 세 개의 축을 가진 기둥이라는 이름이 X, Y 하는 축도 있지만 이 안에 수많은 자기장의 축들이 있어요. 그 숨겨진 축까지 포함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Vertigo, 2014

Flare Solution, Motor, Micro-controller, Double Jacket Reactor

250(h) x 60(d)cm


 AliceOn   <Vertigo>는 보면서 “이건 대체 어떤 물질일까. 수은은 무겁고 이렇게 경쾌하게 움직이지 않을테고, 갈륨일까?”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알루미늄 입자라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조건과 원리가 궁금합니다. 


구조 안에는 두 종류의 액체가 들어있는데 두 액체의 극성이 달라야 해요. 극이 다르면 물과 기름이 나뉘는 것처럼 두 액체간에 경계면이 생기고 그 경계면을 코팅하는 거죠. '그 경계면에 작은 입자를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에 시도해보았는데 막연한 의도에 대한 결과가 나와 너무 기뻤죠. 고등과학원의 천문학자에게 동영상을 보여드렸더니 ‘어 터미네이터 아니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만들었구나 했죠. 알고 보면 단순하죠. 


Whiteout, 2014

Hydrogel, Acid and Alkali Mixture, Glass, Polyvinyl Acetal

Variable dimensions


 AliceOn   <Whiteout> 같은 경우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중력만이라면, 아래 방향의 궤적만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위로 올라가거나 좌우로 퍼지는 줄기도 보입니다. 어떤 원리가 들어있나요?


작품에 사용한 친수성 폴리머는 염기성 표피를 만들고 산성 계열에 닿으면 녹으려고 해요. 그 두 개의 액체가 유리 기둥 구조물 안에 들어있어요. 그래서 중력에 의해 내려오면서도 산성은 이것을 뚫으려고 하고, 염기성은 이걸 다시 코팅하려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식물처럼 퍼져나갑니다. 계속 변화죠. 

만드는 과정은 기둥 구조물에 용액을 채워놓고 폴리머를 퍼트리게 되는데, 다른 성격의 액체들이 각 부위별로 배치되어 있어요. 폴리머가 염기성 지역에 들어가면 흰색 피복같이 시각화됩니다. 이 염기성 지역이 없다면 곧장 물에 물감이 풀리듯 모든 부위가 하얗게 되어버립니다. 중간 중간 존재하는 염기성 지역이 그 진행을 연기하면서 지속이 되는 거죠. 최종적으로는 완전히 흰색으로 마무리되겠죠. 그래서 제목이 <whiteout>이에요. 

폴리머를 만들 때 얼만큼의 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설정할 수가 있어요. 단단하게 만들면 진행이 정말 천천히,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진행되게 할 수 있고, 지금 같은 조건일 경우 6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어요. 그 뒤에는 하얗게 되는 거죠. <effulge>가 역동적인 시간을 볼 수 있다면 이 작품은 느린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EFFULGE, 2012-2014
아크릴, 유리, 알루미늄, 포토닉 크리스탈, 자석, 모터, 컴퓨터, 일렉트로닉 마이크로 컨트롤러, 일렉트로-마그네틱필드 발생기, 에어펌프

410 x 160cm


 AliceOn   작가님 작업을 방법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철학 담론이 있을까요?


저는 철학을 제 작품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지금 하는 철학의 이야기는 제가 너무 답답해서 시작을 한 거예요. 고등과학원에서 한의학에서 어떻게 물질을 궁금해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포항공대의 수학하시는 교수가 ‘한의학은 사기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아직도 이 벽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심하다고 생각해요. 열려있는 과학자도 많이 만났지만, 예술을 혐오하는 과학자도 많죠. 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유럽에서의 철학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왜 이런 노력이 진행되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건지 누가 쓰고 있고 누가 정리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진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어요. 과학 철학뿐 아니라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죠. 한국 같은 경우에는 워낙 없으니까. 현대 미술도 좁은데 그 안에서 미디어, 또 과학과 예술은 더 좁죠. 좁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으니까 안타깝죠. 


 AliceOn   안타까운 일이죠. 어깨가 무겁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어떤 작업을 계획 중이신지 여쭤보면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구조색 실험도 계속 하고 있고요, 폴리머 작업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cascade>에 보면 아주 미세한 1.5mm 이하의 관들을 만드는 작업을 마이크로 플루이딕스 (Micro fluidics, 미세 유체 역학)라고 하는데 엄청나게 작업이 어렵습니다. 관이 작을수록 물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져요. 30cm 움직이기 위해서 관의 형상이 엄청나게 복잡해져야 해요. 마이크로 플루이딕스에 대해 더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AliceOn   신작인 <cascade> 작업이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거네요. 


네 아마 CERN에 가서도 더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AliceOn   오랜 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 허대찬 (앨리스온 에디터)

녹취 및 정리 :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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