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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John Cage)가 4분 33초의 침묵을 지켰을 때, 음악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현대 음악의 가장 위대한 침묵의 시간. 누군가는 ‘절대 0도’를 향한 한 음악가의 혁명적인 시도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청중을 우롱하는 엘리트 음악가의 영특함에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그렇게 4분 33초의 시간은 현대 예술의 텅 빈, ‘空’의 상징이 되었다.

바쁜 현재를 살다보면, 4분 33초 역시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누군가 명령한다면, 당신은 분명 자신 있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시간을 참아내는 동안 시계를 몇 번 쳐다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또는 온갖 잡생각과 망상으로 온 몸을 꼼지락 거릴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더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2009 Nordic Game Jam에서 베스트 이노베이션 게임으로 선정 된, 핀란드 헬싱키 공과대학 게임 개발 팀 클루니게임스(kloonigames)의 “4 Minutes and 33 Seconds of Uniqueness”는 이러한 4분 33초를 버텨내는 훈련을 시켜준다. 제작자가 명백하게 밝히듯, 이 게임은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 모티브로 만든 게임이다.

게임은 간단하다. 웹사이트를 통해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실행한다.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4분 33초 동안 전 세계에서 다른 누구도 그 게임에 접속하지 않으면 승자가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그 시간 동안 화면에는 흑백의 화면이 겹쳐질 뿐,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무능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낼 수 없다. 혹시 누군가 접속하여 자신의 유일성을 방해하지 않는지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이 게임은 ‘미디어’(media)다. 미디어가 쓸모없는 정보와 시각적, 청각적 재현을 하는 오락적 도구로 전락되어, ‘매개’의 가치를 상실한 지금, 오히려 미디어가 무언가와 연결되는 통로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 게임의 목적은 ‘단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접속시키려 하는 것이 인터넷 산업이다. 관계와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모르는 타인들이 무의미한 접속을 즐기는 인터넷 안에서, 자발적 소외를 통해 자신의 유일성을 증명하려 한다. 게임은 그러한 간접체험을 목적으로 한다. 수많은 미디어의 재잘거림 덕분에 우리는 혼자라는 것, 철저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크래용(crayon)이라는 아트 게임을 제작했던 클루니게임스의 Petri Purho의 작품이기에, 게임은 만만치 않은 철학을 담고 있다. 만약 이 당신이 4분 33초를 성공적으로 버텨냈을 때, 그 때 느끼게 될 그 허무함은 존 케이지의 ‘절대 0도’와 비슷한 공허함을 안겨줄 것이다. 어쩌면 이 게임은 ‘게임’이란 무엇이고, 그 너머의 ‘미디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아니 더 나아가 네트워크라는 환상을 전복하려는 유일한 ‘미디어아트’일지 모른다.

4 Minutes and 33 Seconds of Uniqueness 게임으로 바로가기

http://www.kloonigames.com/blog/games/4mins33secs


클루니게임스의 웹 사이트 가기

http://www.kloonigames.com





* 본 리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kloonigames.com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글. 양기민. 기술미학연구회. neomimes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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