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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인문학이나 예술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게임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제작기법론이나 마케팅 방법론에 치중되어 출판되어 왔다. 그렇게 출판된 책들마저도 대부분 외국에서 출판된 것이었고, 당연히 다루는 게임들도 외국에서 개발된 게임들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게임평론가 이상우는 그의 책 『게임, 게이머, 플레이 –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에서 게임을 인문학으로 읽어 보려고 시도한다. 이상우는 (이전의 앨리스온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게임문화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는 한국 게임 역사에 대해 정리하고 한국 게임에 대해 고찰하려 노력하는 게임문화연구회의 활동과 연관을 맺고 있다. 『게임, 게이머, 플레이』에서 이상우는 이러한 시도의 연장에서, 한국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게임들을 중심으로 게임의 지각적 가치에 대해 논한다.

  게임의 지각적 가치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게임이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가 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혹자는 게임이 과연 그런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매체인가 의아해할 것이다. 물론 이글을 읽는 일부 독자들은 게임을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오늘날 게임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커다란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며, 앞으로 장년 이상 세대에도 그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의심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지하철 안에서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길 바란다. 분명 전동차 한 칸에 한두 명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게임 산업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게이머들의 평균 연령은 37세로 이미 청소년층에서 청장년층으로 주연령대가 변하였으며, 50세 이상 게이머들도 29%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도 점차 게이머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추세이다.


  그래도 게임의 문화적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다면 영화의 역사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영화는 20세기 초 기계문명 하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이 열광하던 즐길거리였고,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문화산업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게임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세대들이 열광하는 즐길거리이며, 오늘날에는 산업 규모 면에서 영화 산업과 비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제작사를 소유한 부자들이 나타났듯이, 게임을 통해서도 수많은 자주성가형 부자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ATARI) 게임사에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국내의 경우 김정주나 김택진 등의 부자들이 부자 순위 20위권 내에 들어있다.


  물론 이는 산업적인 측면에 한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문화, 예술, 철학 담론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게임은 그 산업 규모에 비해 아직 그런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각국에서 영상진흥위원회 같은 성격의 기관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학술활동을 지원하고 자료들을 관리하는데 반해, 게임에 대한 제도적, 이론적 지원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상우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를 리뷰하면서, 이러한 게임의 문화적 상황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 게이머, 플레이』의 내용에는 문화적, 미학적인 고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게임의 예술적 가치(미학적 가치와 구별되는, 말 그대로 예술로서의 가능성과 가치)에 대해서 크게 논하지 않았다는 점은 『게임, 게이머, 플레이』의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하지만 독자들이 『게임, 게이머, 플레이』를 읽으면서 현재 게임의 문화적 지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은 분명 이 책의 미덕이다. 게임의 문화적 지위라는 문제는 단순히 게임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문화현상들과 뉴미디어아트에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정당한 문화로서 인정을 받았다고 말하긴 분명 어렵다. 물론 게임을 학문적으로 고찰하려는 시도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앨리스온에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그동안 북미와 유럽에서는 게임 스터디스(Game Studies)등의 학술단체나 개인 연구자들이 게임에 관한 연구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게임과 관련된 연구서들을 출간해왔다. (하단 참고) 예술적인 면에서도 이미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미 북미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뉴욕현대미술관 등 주요 전시기관에서 게임을 소장품 목록에 포함시키고, 수많은 갤러리들이 게임 산업과 연관을 맺으며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문학이나 미술에 비해, 그리고 사진이나 영화에 비해,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엄밀하게 고찰하려는 시도는 분명 미진하다. 더 심각하게는 새로운 것인 게임에 대해 마녀사냥식의 맹목적인 낙인을 찍는 수준에 그치거나, 기성세대 엘리트 연구자들이 우려를 담아 비평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한다. 북미나 유럽에서도 게임에 대한 유해성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논란이 된 게임규제법안 문제나, 총기사건과 관련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게임과 폭력성간의 상관성을 연구하도록 지시한 사례 등을 찾아보길 바란다. 게임의 수용자인 전문가나 대중들 중 상당수는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게임 제작자인 게임 산업 종사자들 역시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 종사자들은 게임의 문화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장기적인 대비를 하려 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이윤 추구에 더 치중해 왔다.


  한국 게임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게임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다. 예술계에서만 그 사례를 본다면, 최근 경기도 미술관과 313 아트 프로젝트 갤러리에서는 게임과 관련된 전시를 연적이 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전시들은 예술과 게임 산업 간의 간극을 좁히는데 크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원인은 명확하다. 문화로서, 예술로서 게임을 고찰하려는 ‘한국적인’ 시도 없이 이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우선 문화계나 예술계에 속한 사람들의 문제점부터 이야기해야 하겠다. 그들은 게임이 예술제도 안에 등장하는 것을 생경한, 혹은 엘리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게임 산업계에 속한 사람들은 예술을 자사의 강연회에 소개하여 단기적으로 빠른 위상 재고를 가능케하는 치장으로 바라보았을 뿐, 진지한 지원이나 고찰은 하지 못했다. 왜 게임이 문화,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게임이 문화, 예술이라면 무엇이 그것을 뒷받침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지 못했다.


  한국 게임 산업계의 문제도 있다. 한국 게임 산업이 국내 콘텐츠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인 수치가 문화로서 지위를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한국 게임 산업은 표피적인 그래픽중심주의, 혹은 타격감중심주의라 부를 태도에 빠져 있다. 단지 (주로 남성인) 제작자들의 취향만을 반영하여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 제작에만 열을 올렸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 매체에 익숙지 않은 (여성, 장년층 등의)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무언가를 시도하질 않았다. 경쟁만이 유희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게임 산업계 종사자들은 이윤창출을 위해 경쟁요소를 부각시키는 게임만을 집중적으로 제작해왔다. 그 결과 한국 게임계는 ‘게임의 현실화’를 이룩한 꼴이 되어버렸다. 각박하고 경쟁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그런 현실의 ‘상황’을 그대로 모방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더 많은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시도조차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실이다. 엄밀히 말해 현재 게임 산업계는 ‘시도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를 못하는 것’이라 봐줘야 한다. 매우 급격히 변하는 게임 산업 환경도 분명 문제이다. 대표적으로 최근에는 온라인 PC게임 중심에서 스마트폰 플랫폼 위주로 환경이 변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제작자의 창의성이나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 정부나 사회의 분위기이다. 1920년대 미국이 금주법을 시행했다가 벌어졌던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과도한 제제조치는 게임과 사회가 화합되도록 하는데 도리어 방해만 된다. 정부는 셧다운제나 PC방 금연 조례 등을 이용해 게임을 유해한 것으로 지목해왔다. 이로 인해 한국 게임계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올바르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유독 게임만이 극단적으로 유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공직자의 비리 등의 문제가 더 유해하며, 정부가 노력해야 하는 일은 문제가 있다고 제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정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용어처럼, 그것을 ‘양성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나 사회는 그런 여건 조성에 무관심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게임을 느긋하게 문화적으로 고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게임평론가 이상우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 –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은 이런 현재 상황에 걸맞은 책이다. 그는 벤야민, 아도르노 같이 기존 매체철학에서 다뤄져온 이론가들의 논의와 게임을 결부시킨다. 그는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된 한국 게임문화의 특성을 서술하고, 이 특성들 중 비판받아야 할 점들은 비판한다. 그는 한국 게임들이 로제 카이와 놀이이론의 사분면에서 아곤(규칙적이고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경쟁 게임)의 범주에 속하는 게임 특성들만 비대하게 발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상우는 게임이 다양한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게임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해 논한다. 또한 그는 사진의 지표성과 비교하여 게임도 지표적 특성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문학 전공자로서 게임에서 시적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그리고 한국 MMORPG와 SNG게임이 가지는 통과의례적인 성격 및 자본과 시간의 교환이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킴을 비판한다.


  벤야민은 당대의 매체가 당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상우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를 통해 미흡하게나마 그러한 시도를 해내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시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저작은 가치가 있다. 영화 같은 미디어 역시 과거에는 문화로서, 예술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었다. 만약 영화가 여전히 핍쇼 수준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향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 연구에서 당대 대중문화의 주요 매체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그러한 이해 없이 몰이해로 일관한다면 남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한 비판뿐일 것이다. 예술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비록 이 책에서는 게임과 예술성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이 책은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게임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단, 게임으로 인해 동시대 예술의 속성이 어떻게 ‘게임적으로’ 변화했는지를 고찰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이 예술로, 미디어아트로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글. 홍선표 (앨리스온 에디터)



저자소개 :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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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평론가. 학창 시절 학교보다 오락실이 더 좋았던 소년. 장르 소설을 쓰고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으나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순수문학의 세례를 받으며 시인 지망생으로 전직했다. 꽤 오랜 시간 경험치를 쌓으며 소위 ‘등단’이라는 몬스터와 싸웠지만 아직 물리치지 못했다. 본인의 시적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방황하던 어느 날 자기 정체성의 근원이 게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3년 게임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관련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운명적으로 ‘게임문화연구회’를 만났다. 그 후 지금까지 학계와 업계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순수한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해오고 있다. 2008년 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제1회 게임비평상공모전에 입상했으며, 2010년부터 계간 『자음과 모음 R』에 ‘컴퓨터 게임 깊이 읽기’를 연재하면서 게임에 관한 평론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콘텐츠 경영을 공부하는 한편 중앙대학교 미디어공연영상대학과 산업교육원 게임학과에서 게임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2011년에는 <Pixel on Canvas – 미술로 보는 게임의 역사>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게임과 삶을 하나의 텍스트로 엮어내려는 30대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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