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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사운드의 탄생 : 사운드 디자인 _book review

Ueber 2015. 6. 6. 03:42


많은 사람이 사운드아트, 혹은 오디오 비쥬얼이라고 불리는 작업들을 접하면서 보편적이지 않은 소리에 대한 예술성을 이야기한다. 그 예술성은 독특한 소리 자체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성을 갖는 설치작업이나, 영상과 함께 복합적이고 공감각적으로 읽히게 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사운드 작업은 관조하고 침잠해야 했던 기존의 예술작품과는 다르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감각을 열어야 한다. 그렇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어렵다는 느낌과 함께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물론, 청각을 압도하는 노이즈가 그 주범일 수도 있다). 


니체는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를 가지라고. 예술이라는 매체에 대한 호의와 선의를 갖기가 쉽지만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우리는 이미 사운드아트의 문법을 예술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적 맥락에서 익히 경험해왔다. 바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다. <사운드 디자인>의 옮긴이의 글을 보면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말을 인용하며 서문을 열고 있다.


 "Sound is the fifty percent of a motion picture's experience"


 (위키에 따르면 정확한 워딩은 "Sound is 50 percent of the moviegoing experience."라고 한다)

이처럼 영상예술인 영화가 사운드를 통해 이미지에 대한 감각을 극대화 시키는 문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사운드 디자인>은 영화적 문법에 입각한 책이다. (영문제목 또한 The Expressive Power of Music, Voice, and Sound Effects in Cinema이다.) 어떻게 하면 소리가 영화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에서 실무적인 부분까지의 사운드 디자인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인상적인 점은 영화 사운드 디자인을 엔터테인먼트적 맥락에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귀의 구조, 감각과 지각 같은 생물학적인 부분에서부터 게슈탈트 이론을 접목한 음향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주에서 사운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론에서는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마치 워크북 형식처럼 이론설명과 실습의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 사운드를 발견하고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1장 '단계적인 사운드 디자인 제작'에서는 실무에 적용한다는 느낌으로 시나리오부터 최종 믹싱까지의 사운드 작업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읽고 사용자가 무엇을 들어야만 하는지를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대상, 움직임, 배경, 감정, 전환점을 시나리오로부터 추출하고 시각적인 음향 연출 지도를 제작하기까지의 영화음향 작업을 전문가, 실무자적인 입장에서 상세하게 가이드를 해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2장 '창조적인 사운드 디자인'에서는 흥미로운 음향 트랙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영화 <캐스퍼(Casper)>의 유령소리를 만들기 위해 팀파니와 고무호스를 사용했다는 사례를 이야기하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소리를 디자인하고 만들어내어 녹음하는 방법에 대해 안내한다.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할 실무적 팁이 많은 장이다. 3장 '진동에서 감각으로'는 소리가 발생하고 귀에 전달되기까지의 물리학과 해부학 그리고 신경생리학적인 영역을 아우른다. 소리의 기본 특징인 리듬, 세기, 음정, 음색, 빠르기, 형태, 구조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으며 귀의 생물학적 메카니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교양적 성격의 장이다. 4장 '감각에서 지각으로'는 3장의 내용을 심화하여 단순하게 듣는 것과 청취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슈탈트 원리를 통해 인간이 시간, 공간, 음정을 지각하는 체계에 대해 논하며 이를 고려해 영화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을 설명한다. 5장 '음악'에서는 비언어적인 수단인 음악을 영화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살펴본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음악의 기원과 구조를 논하며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음악의 역할에 대해 짚어본다. 이와 더불어 음악의 구조와 기능, 리듬과 멜로디, 화음과 불협화음, 기본음, 침묵, 대비와 같은 음악의 세부 속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6장은 '인간의 목소리'다. 영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대사를 목소리, 발성 기관의 관점에서 대사의 인지(의미)와 감정의인지를 구분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7장 '소리와 이미지'에서는 눈과 귀 사이의 상호작용을 영화음악, 영화 대사, 공간 차원, 시간 차원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8장 '소리와 서사 구조'에서는 영화의 서사를 분석하여 어떻게 사운드로 영상의 극적인 연출을 강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무적인 내용을 주로 다룬다. 저자는 캐릭터를 분석하여 객관적인 관객의 시점, 주관적인 등장인물의 시점, 비문자적인 소리, 감정 연결을 어떻게 하는지 세세한 가이드를 제시한다. 또한, 머레이 쉐퍼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인용하며 영화 전체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하는 법까지 제안하고 있다.

 

<사운드 디자인>은 9장 '사운드 디자인의 미래'를 마지막으로 사운드 디자인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미래는 아쉽게도 영화 제작에서의 사운드 디자이너의 비중과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 말미에는 적게나마 인터넷과 상호작용 매체에서의 새로운 사운드적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고 있는데, 이 책이 2009년에 쓰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꽤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이 이후에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앱의 발달을 통해 AUI라는 측면에서 사운드 디자인이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도 AUI스터디를 위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물론, 본 책은 지극히 영화적인 관점에서 사운드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직접적으로 AUI의 맥락에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사운드를 만들고 다른 매체와 융합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 전민제 [앨리스온 에디터]



저자소개

데이비드 소넨샤인

저자 : 데이비드 소넨샤인
영화감독, 사운드 디자이너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대학교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하였고 이후 USC 시네마 스쿨(USC CINEMA SCHOOL)에서 음향 연출 실기 석사(MFA) 과정을 졸업하였다. 시네마 스쿨에서 <스타워즈>의 사운드 디자이너 월터 머치 등 세계적인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운드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 후 미국과 브라질을 오가며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의 작품 제작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음향을 이용한 치료에까지 관심 분야를 넓히고 있다.

역자 : 이석민
리코딩 엔지니어링(RECORDING ENGINEERING) 교육기관인 SAE(SCHOOL OF AUDIO ENGINEERING)를 졸업했다. 귀국 후 블루캡 녹음실에 입사하여 <쉬리>, <유령>, <텔미 섬딩>, <주유소 습격 사건> 등의 장편영화 제작에 사운드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이후 녹음실을 열어 각종 영화,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게임 등의 사운드 디자이너와 믹싱 엔지니어로 활약하다가 2007년 3월부터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