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나쁜 주체들이 꾸미는 미래 기획: 뉴아트행동주의 _book review

sjc014 2016. 12. 7. 20:17


오늘날 뉴 미디어를 사용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어떠한 모습일까?

   '아방가르드(Avangarde)'는 전위 부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에서 온 것이다. 초기의 아방가르드는 순전히 군사적 용어로만 쓰였지만, 프랑스의 사회주의 혁명가인 생 시몽이 아방가르드는 ‘인습적인 권위와 전통에 맞서며 사회의 발전을 앞당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게 되었다.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아방가르드는 남들 보다 앞선 것, 진보를 의미했고 정치적 급진주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고정된 개념은 아니다. 아방가르드는 당연하게도 시대를 달리하며 표현방식의 변화를 겪어왔다. 글의 서두에서 오늘날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뉴아트 행동주의: 포스트미디어, 횡단하는 문화실천』은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뉴 미디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주목하는 서적이다. 저자인 이광석은 지난 2010년 '사이버(cyber)'와 '아방가르드(Avangarde)'의 혼합하여 『사이방가르드: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를 출간한 바 있는데, 이 책이 해외의 사이방가르드 예술 사례를 살핀다면 '뉴 아트 행동주의'에서는 국내의 주목할 만한 미디어 저항과 비판적 예술 문화적 사례를 소개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뉴 아트 행동주의(New art activism)'라는 개념은 특정 정치 이슈와 관련한 예술행동, 문화간섭(cultural jamming), 대안 미디어 운동 등을 통해 현대자본주의 권력에 저항하면서 자신들의 주권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한국의 최근 예술, 문화계의 경향을 의미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전술미디어(tactical media)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이론적 논의를 다룬다. 서구에서 전술미디어의 개념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한국사회에는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 역사와 한계에 대해 살핀다. 마지막으로 전술미디어가 오늘날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문화실천적 함의를 살핀다. 이어서 2부에서는 국내의 뉴아트행동주의 창작자 열여덟 명을 소개한다. 이들은 기존 체제에 들어가길 거부하면서 자신의 삶과 주권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작가, 문화기획자, 문화미디어 행동주의자들이다.

  저자는 열여덟 명의 창작자들을 세 부류(표현의 자유와 시각적 상상력의 복원, 온라인 소셜 가치와 뉴아트행동주의, 자립형 기술문화의 탄생)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부류는 권위에 저항하면서 다양하고 해학이 넘치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미디어 작가군이다. 팝 아트 형식으로 정치인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가 이하, 한국의 뱅크시로 불리는 그라피티 작가 구헌주, 패러디와 해학으로 역사의 이면을 고발하는 조습 등이 이 분류에 포함된다.

조습, <묻지마>연작 중 물고문, 5.16, 2005

구헌주, <네이버 검색 - 용산참사>, 부산대학교 대학로 거리, 2009

  두 번째는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회적 개입을 꾀하는 작가들이다. SNS를 통해 박정희 코드와 일베 등 우익 문화를 개념적으로 풀어가는 팝 아티스트 강영민, ‘아트택시’라는 개념아트 작업을 통해 커뮤니티의 개념을 확인하는 작업을 한 홍원석, 라이터를 나눠주며 대선투표를 독려한 ‘라이터 프로젝트’의 배인석 등, 이들의 작업은 화이트큐브를 벗어나 불특정 다수와 소통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술과 문화 개입이 좀 더 실험적인 제작문화운동 형태로 성장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작가들이다.‘크래프트 행동주의’을 내세워 활동하는 청개구리제작소나 디자이너 그룹 길종상가, 대안적 플랫폼 개발을 통해 예술가들의 자립성을 키우고자 하는 전시 매개자 와이피(YP)가 이에 속한다.

길종상가, <인생사용법-길종상가 서울상가>, 설치, 문화역 서울284, 2012

             청개구리제작소, '도끼빗과 자작 베틀' 워크숍 포스터, 2013                              '적정기술과 작은제작' 워크숍 포스터, 2012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열여덟 명의 창작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개념으로 나쁜 주체(bad subject)라는 말이 있다. 나쁜 주체는 권력과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통칭 '삐딱이’들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권력의 편재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들인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 개입하고 있으면서도 예술, 미디어, 문화실천 각 계열을 넘나들며 유연하고 모험적인 태도로 창조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양적으로는 흔하지 않은 나쁜 주체들이 자본주의의 권력 통치에 균열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이 책에서도 기존 전통에 저항하며 개별적으로 흩어지고 모이는 디지털 수용 주체들이 바로 대안 사회를 구성하는 출발이자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인은 약화되고 자본의 권위와 억압은 강력해진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진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리고 소개되지 않았더라도 뉴아트행동주의를 실천하는‘나쁜 주체’들이 그리는 대안적 미래사회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때이다.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