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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상 기반의 예술 작품은 그 어느때보다 활발히 제작, 유통 그리고 전시되고 있다. 비물질적인 무빙이미지(moving image)는 여타 다른 예술 작품과 다르게 고정되지 않고 여러 미디어를 유영한다. 영상 예술이 더이상 낯설지 않은 장르가 되었음에도, 영상 예술에 대한 비평의 장은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앨리스온에서는 영상 예술의 지형을 보다 비평적으로 조망하고자 여러 영상예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영상예술 비평지 [오큘로 OKULO]의 발행인 유운성 평론가를 만나 [오큘로]의 활동과 함께 그가 지적하는 국내 비평의 현주소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유운성 선생님. 우선 앨리스온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01년에,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 수상을 하면서 영화 평론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당시엔 평론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준비가 된 상태도 아니었죠. 시나리오를 쓰거나 제작을 하는 것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평론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당선이 되어서 ‘평론을 해볼까’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죠. 그때는 당선이 된 사람에게 매주 글 청탁을 주었는데,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재미도 있었고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전공도 완전히 다른 쪽이어서 그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 전문사 과정에 들어갔어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글은 계속 썼어요.


Q. 오랜 시간 동안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당시 광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계셨던 임재철 선생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관심 있는 학생을 모아 영화제의 코디네이터로 일할 기회를 주셨어요.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일하다가 논문을 쓸 무렵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았죠. 그때만 해도 영화제가 생겨나고 모습을 갖춰갈 때라 현장에서 일하던 평론가에게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영화제에서 2004년부터 9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약 8년 동안 일했어요. 그전에 글 쓰는 쪽에 관심을 두었다면 영화제에서 일하면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가 더 집중하게 되었고, 국내외 영화인들을 많이 알게 되는 계기였어요.


Q. 첫 시작이 영화였지만 지금은 시각예술 분야의 영상까지 폭넓게 다루고 계시잖아요. 영화비평에서 시각 예술로 분야를 확장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해임되고 나서 문지문화원 <사이> 의 주일우 실장님이 연락을 주셔서 이쪽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당시 저에게 색다른 일이어서 해보게 되었죠. 그때 <사이>에서는 전시기획이나 공연, 행사, 강의 기획, 출판까지 하고 있었어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 정도 <사이>에서 일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었죠. 실제로 일할 때 재미있었고, 자연스럽게 영화계와 다른 문학계, 미술계, 디자인에 종사하는 분들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어요.


Q. 그때의 경험이 영화가 아닌 분야의 평론을 하시게 된 시작점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구체적인 계기를 꼽자면, 당시 리움(Leeum)에서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전시가 있었어요. 그 전에도 영상 관련 전시는 봤는데 딱히 흥미가 가는 작품은 없었어요.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아니지만, 마클레이 작품은 생각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비-영화 영상’ 평론을 하게 되었어요. (웃음) 마클레이의 《시계 The clock》에 관련해서 [인문예술 잡지 F]의 창간호에 글을 썼습니다.

Q. 마클레이의 작업을 시작으로 ‘비-영화 영상’ 평론을 시작하셨군요, 이후에 더 흥미를 가지게 된 작품이 따로 있나요?

시청각이 개관할 때 현시원 씨를 통해서 옥인콜렉티브(Okin Collective)을 처음 알게 되었고 대담을 맡아서 하게 되었어요. 사실 그때 처음으로 옥인콜렉티브 작품을 보았는데 그중에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라는 영상 작품이 있어요. 이건 확실히 영화는 아니죠. 영화평을 할 때는 전통적인 기준, 물론 일괄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미장센 중심적-쇼트 구성이 어떻고 몽타주가 어떻고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짜임새가 있고 등-이죠. 그렇지만 이런 영상은 그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걸러지는 게 없어요. 그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라는거죠. 아무래도 이런 작품이 흥미로웠던 건, 제가 한국에서 영화 평론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의 형식(form), 그 자체의 미적인 것을 중시하고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했는데, 마클레이의 작품 때도 생각했지만, 이런 작품을 그 형식으로 읽었을 때, 무의미에 가깝거나 그 자체로는 어떤 가치도 없게 되어버려요. 그렇다면 이런 작품은 이 작품을 구성하게 만든 개념에서 출발해야 하는 건데, 옥인콜렉티브의 작업이 저에게는 미술 쪽의 작품에 접근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물음을 던져준 작품이었어요. ‘작품이 이 형식으로 오게 만든 외부적 동기,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져서 보이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한국의 미술계, 제도라는 전체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결국 그 힘을 보게 한다는 거죠. 모든 미술계의 영상 작품이 이런 식으로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영상을 보게 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계기로 영화, 실험 영화의 맥락 안에서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면서 미술사의 계보 안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읽히는지 정리하던 시기가 2012년에서 2014년이었어요.


Q. [오큘로]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오큘로의 발행인으로 계신데요. 오큘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우선 밝혀야 할 것은 발행을 저와 임경용 씨가 함께하고 있는데요. 오큘로를 구성하고 있는 편집진이 젊은 비평가들이고 그 전에 출판 경험이 없던 분들이라 창간 이후 1년 정도는 함께 회의도 참여하면서 주제 잡는 것을 같이 많이 했어요. 1년이 지나고 최근에는 발행인은 책을 홍보하거나 배급 문제에 신경을 쓰고 내부 편집 관련 일은 5명의 편집진들이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2016년 3월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오큘로]


Q. 그렇군요. 그래도 그 시작에 관해서는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2016년 3월 첫 호가 나왔고 지난 8월 [오큘로]의 5호가 출간되었어요. 2015년부터 준비하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해임되었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강의가 끝나고 학생 몇 명이 찾아와 영화, 영상 비평의 문헌을 계보적으로 잇고 싶은데 스터디 모임 지도를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어요. 2012년 겨울부터 2주에 한번씩 만나 20세기 초기의 국∙영문 문헌을 골라서 역사적으로 보는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처음에 4명으로 시작해 10명 정도, 더 많아질 때도 있었고요. 스터디 모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어요.
정확히 2015년 1월11일 [오큘로] 창간 모임을 시청각에서 했어요. 당시 2년 정도 스터디를 했었는데 공부뿐 아니라 과거의 것을 동시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석하고 써 내려가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지식 마니아에 그치게 된다고. 풀어내는 방식 중 가장 좋은 방법이 잡지라고 생각했었어요. 애초에 [오큘로]의 창간 목적은 저에게는 뚜렷했어요. 반드시 실전으로 쓰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동시대 영화, 미술계의 최고의 필진을 모아 글을 쓰자는 게 아니었고, 제가 현실적으로 느낀 아쉬움, 젊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저 역시 쓰는 일로 영상을 시작했고, 그게 과정이었어요. 28살, 2001년에 글을 처음 썼을 때, 제가 비평계에서 제일 어렸어요. 2014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제가 어리더라고요. 10년이 넘게 지났는데 저보다 더 아래 세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가 많지 않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걸 가로막았던 것은 ‘너는, 혹은 너희들은 아직은 아니다’ 라는 게 생겼어요. 그런데 제가 시작할 때는 없던 거에요. 제가 시작할 때, ‘넌 안돼’라고 말할 정도의 선생님은 없었죠. 그러나 제 세대부터 시작해 십몇 년 동안 다 선생님, 중견이 된 거예요. 저는 비평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것에 도움도 받아야하지만, 비평가에게 가장 큰 자질은 시사성을 감지하는 능력과 문장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으면서 글을 써야 한다고 보았고 필진의 능력을 키워서 잡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거죠.


Q. [오큘로]를 종이로 출판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종이가 가진 힘일 수도 있는데요. 사실 웹진은 본격적으로 해보진 않았어요. 웹으로 무언가를 해 본 적은 있었는데, 다 중도에 멈췄어요. [오큘로]를 창간할 때, 저와 임경용 씨를 빼고 모두 다 이 잡지를 통해 처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웹진으로 했을 때보다 종이 잡지로 출간했을 때,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글이 안 나오면 환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또 교정 교열의 과정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고요.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1호에는 조판을 2번 하기도 했고요. 글쓰기 자체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합니다.

[OKULOscreening]

[오큘로] 창간 기념 행사 및 오톨리스 그룹의 <래디언트> 상영
2016.3.8 @ 한국영상자료원 2관


Q. 매 호의 주제를 선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나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주제가 선정되는지도 궁금합니다.

큰 원칙은 하나에요. 영화 잡지도 아니고 미술 잡지도 아닌 ‘영상 잡지’. ‘영화관, 미술관, 혹은 TV에서 상영되거나 스마트폰에서 상영되는 것, 영상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모든 것에 비평적으로 접근한다’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특집 중 하나는 꼭 동시대 영상을 가로지르는 공동 주제를 골라서 해보자였어요. 그래서 1호는 <오디오 비주얼 리서치>, 최근에 영화에서도 리서치 기반 다큐멘터리나 에세이가 나오고 있었고, 미술에서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영상물에도 적용되어 개별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모았어요. 두 번째 주제도 마찬가지였어요. 동시대의 영상 작품, 영화을 구성하는 쇼트나 이미지 각각은 그 자체로는 굉장히 공허하거나 무의미하다는 것, 그리고 작품이 아니어도 예컨대 CCTV나 아프리카 TV 등 우리가 동시대에 보게 되는 상당히 많은 영상이 어떤 형식과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 이런 것들이 만나서 작업을 형성하는 것, 등 이미지 자체의 힘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힘이 정말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게 주제였어요. 곽영빈 선생님의 <먼지와 기념비 사이>라는 같은 제목의 글이 실렸고요. 세 번째 주제도 요즘 많이 논의되는 시간이었고요. 대체로 동시대 미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다음호로 준비하고 있는 주제는 ‘어둠’입니다. 어둠 자체가 활용되는 방식, 동시대 영화관이나 전시장에서 어둠을 다루는 방식, 이미지 안의 어둠을 다루려고 합니다.


Q. 영화 잡지도 미술 잡지도 아닌 ‘영상 잡지’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오큘로가 영화와 미술을 가로지르는 영상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탐구하고 있지만, 저는 무의식적으로 영화와 미술을 구분하게 될 때가 있어요.

특집을 잡을 때, 영상미술을 가로지르는 토픽을 잡는데, 결국, 말하신 것처럼 영화 쪽 독자들은 영화 관련글만 골라서 보고, 미술에 익숙한 독자들은 미술 쪽 글만 읽어요. 지금까지 일 년이 지났지만, 모두가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에요. 2호는 특히 심했어요. 특집이 1)영화 2)미술 두 개인데 1)만 읽거나 혹은 2)만 읽거나. 사실 그러지 않으려면 애초에 모든 글이 가로지르는 글이어야 하는데, 사실상 그렇게 쓸 수 있는 필진은 많지 않아요. 영화와 영상미술을 가로지르는 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에게 가까운 영역에 대해 쓰죠.
해외에는 이렇게 영화와 미술의 영역을 잘 크로스해서 쓰는데, 국내에서는 그런 글들은 찾기 쉽지 않아요. 간혹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도 대게 영화 중에서도 실험영화나 예술영화, 굉장히 마이너한 영화에 국한돼 있죠. 저는 현재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

<오큘로 005호 시내마 이후, 우리 눈에 비치는 세계: 네개의 대화> 표지와 목차 

[OKULO lecture]

"운동, 발작 혹은 명상: <타이거스 마인드>와 연구(Re-search)의 미학"
강연자: 곽영빈 (미술평론가)
2016.3.19 @ The Book Society 



Q. 영화와 예술계에서 ‘영상’의 의미, 서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 쪽에서 활동하는 필진과 미술에서 활동하는 필진이 쓰는 용어가 달라요. 보는 관점 역시 다르고요. 그렇지만 저는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술 쪽 영상과 영화 쪽 영상의 관습이 충돌하는 거지, 근본적으로 이미지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바로 봐야 할 것이 관습적인 차이라고 했을 때, 그 관습은 무엇인지 보는 것이죠. 또 이미지 자체에 차이는 없지만 어떻게 배치가 되는지를 따져보는 거죠. 동일한 작업이 영화 쪽이나 미술 쪽에 동시에 보여지는데 배치와 수용의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작업 자체가 달라지지 않지만 분명히 달라지죠. 영화제에서 상영되거나 미술관에서 전시되거나, 그럼 디스플레이될 때 흥미로운 다른 부분이 생기거든요. 그러나 여전히 영화 쪽에 익숙한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영상을 볼 때나 그 반대의 경우, 불편을 느낄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관습의 훈련에 따른 것이지 내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군요. 근본적인 차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차이는 있지 않을까요?

극장이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영상 작품을 감독이나 제작자가 원하는 상태로 보여주는 공간이죠. 그러나 한국의 영상 설치를 보러 가면 작가가 생각하는 최적의 환경인가 의문이 들어요. 특히 사운드 에서 거의 대부분의 전시들이 싸구려 스피커나 헤드셋을 사용하죠. 그게 작가가 원하는 환경은 분명 아닐거예요. 최악의 경우에는 사운드를 꺼두는 경우도 있고요. ‘미술관에서 영상을 본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낯섦 보다 기술적인 서포트가 안 되어 있다는 거죠.
또 해외의 미술관 중 상영 프로그램이 있는 곳은 다양한 관람 층, 직장인도 볼 수 있는 반면 한국의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곳이 없고,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의 영상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그렇지만 사례가 없는 게 아니라 한국영상자료원 같은 경우에는 매달 장소 제공과 기술 지원, 상영료까지 지원하고 있어요. 굳이 국립이 아니어도 인디스페이스 같은 경우도 독립영화 단체가 개별 기획하고 스크리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요. 더 많은 곳에서도 이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Q. 평론가로서 ‘비평’이 하는 일 혹은 비평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헷갈리네요. 어쨌든 제가 지금은 영화계, 미술계, 안에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평은 이러 해야 한다’ 라는 당위 이전에 ‘비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영화 비평은 어떻게 보이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제가 알고 지내던 혹은 알고 있던 동료들 후배들, ‘영화 평론가들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어서 답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냉소적으로 말하면 평론가의 역할은 ‘진행자’ 죠. 영화가 개봉하면 씨네토크 진행, 감독과의 대화 진행, 영화제 하면 모더레이터 진행자 혹은 TV 프로그램의 영화 해설 진행…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도 글을 쓰는 빈도수보다 진행자로 활동하는 빈도수가 더 많다고 보여요. 사실 진행자는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고요. 간접적으로 수입사와 배급사의 지원을 받는 홍보 요원이라고 봐야하죠. 마음이 아프지만.


Q. 예리하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그렇다면 미술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

또 미술계에서 평론은 어떤가 했을 때, 평론은 아까 말씀드린 거랑 관련이 돼 있는데요. 미술계는 영화계보다 대중적 진행자가 활성화될 만큼 씬이 크지 않아요. 그래서 확실히 진행자는 아니에요. 적어도 그것을 뒷받침할 정도의 씬이 커저야하고 영화처럼 배급사나 수입사는 아니더라도 작품을 유통시키는 곳에서 돈이 나오지도 않죠. 그럼 뭘까 하니, 약간 큰 ‘스터디 모임’ 같아요. 좋다면 좋은건데 실제로 스터디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이고(웃음), 그리고 미술계에서 이뤄지는 대담, 작가와의 대화 이런 여러 가지 행사들이 있는데 영화계와 성격은 다르죠.


Q. ‘큰 스터디 모임 같다'는 뜻을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 표현을 쓴 이유는 내부에서만 담론이 돌아가기 때문이에요. 제가 2012년에서 2014년에 사이에서 일하면서 미술 잡지도 매달 살펴보고, <문지문화원 사이>에 오는 글들, 미술평론가가 쓰는 글도 살펴보고요. 그때 정말 적응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어요. 왜냐면 다른 장르의 대담이나 행사에 갔을 때는 듣지 못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쓰는 은어가 너무 많았거든요. 은어적 표현이 많다는 것은 담론이 내부에서 순환될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단점이면서 또 장점이 돼요. 왜냐면 스터디 그룹 같다고 했지만 제가 관찰한 바로는 어떤 씬에서 연구자와 평론가, 작가와 관람객이 서로의 작업을 상호적으로 계속 확인하고, 연결하고, 교류 하는 관계가 형성돼 있는 곳은 미술계 밖에 없었어요.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요.
반면 영화 쪽에서, 제가 어떤 감독과 십 년 넘게 이 분의 작업이 나올 때 대담을 한 적도 있고 이 분의 작업도 봤지만, 이 분은 10년 넘게 제 글을 읽은게 한 개도 없어요. 가끔 제가 어디서 강연을 할 때 들으러 오신적은 있지만 제 글은 읽어본 적이 없고 본인 작업에 대해 쓴 것만 읽어 보셨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이 강화되다 보면서 감독들은 점점 정말 평론가를 ‘진행자’로 인지해요. 전 그게 좀 불편했거든요. 뉴스캐스터나 방송인이 하면 될 일을 왜 평론가가 할까. 이는 대담은 아니죠. 왜냐면 이 분은 내가 물어보면 답변해주는 위치고, 이 분은 나에게 궁금한 게 없고.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심지어 어떨 때는 여기 앉아있는 사람이 평론가라는 것 조차 모를 때도 있어요. 영화계는 좀 극단적인 경우지만 다른 영역도 크게 차이는 없다고 봐요.
그렇지만 미술계에서는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어떤 글을 읽었는데 어떤 글이 흥미로워서 그게 제 작업과 관심이 있어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라고 작가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어요.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거든요. 이것이 미술계에서 이야기하거나 얘기하러 갈 때 재미있는 부분이었어요. ‘얘기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코멘트를 한다.’ 물론 기분 좋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대담이 진행되거든요. 어쨌든 간에 그 특징이 단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씬에서는 좀 보기 힘든 현상인 건 맞아요. 다만 이런 특징이 더 확장된다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가능할 것일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있죠.


Q.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럼 비평에 있어서 현재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볼 때 공연계 혹은 사진계에서 비평이나 담론이 정말 적은 반면 미술이나 영화는 그렇지 않잖아요. 이 정도 크기라면 한 비평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몇몇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헛소리 퇴치자’랄까요. 누군가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할 때, 하나하나 캐물어서 비판을 해주는 거죠. 이정도 씬의 크기라면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아시다시피 ‘우리끼리 왜 이래’ 그런 문화가 있기도 하니까요. 특히 같은 영역 안에 있는 동료들이 얘기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내부에서도 잘 안 돼요. 쉽지 않죠. 사실 오큘로 내에서도 자유롭게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4호 때는 제가 비판을 하기도 했어요. 분야를 막론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요컨대 ‘예리하게 지적할 수 있는 비평가’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동료들끼리도 서로 눈치를 보고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현재 출판을 앞두고 있는 책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그간 제가 쓴 글들을 엮었어요. 제목은 <유령과 파수꾼> 이라고, 미디어버스에서 출간 예정이에요. ‘유령과 파수꾼들’ 이라는 제목은 책에 실린 글 중 하나의 제목인데요.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전시를 할 때 옥인 콜렉티브가 만든 책자에 실었던 글이에요. 다른 글들과 모아놓고 보니까 다른 글들이 이 <유령과 파수꾼> 이라는 글과 엮이는 부분이 있어서 이 글로 제목으로 했죠.
대게 2012년부터 2017년까지의 글을 엮었는데,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발행하는 관객소식지에 쓴 글 2~3개, [오큘로]에 쓴 글 외에는 영화 관련 매체에 쓴 글이 단 하나도 없어요. 미술계의 책과 도록, 잡지들의 장점이라면 원고 분량 제한이 없기 때문에 글을 꽤 볼륨 있게 쓸 수 있었다는 거예요. 계속 영화잡지에 있었다면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 조만간 나올 책도 기대됩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영상 전문 비평지 [오큘로] 의 공동 발행인이며 단국대학교 영상콘텐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화문지원 사이 기획부장, [인문예술잡지 F]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오큘로]
[오큘로]는 영화평론가 유운성과 더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가 발행하는 영상 전문 비평지다. 편집동인으로 김보년, 김신재, 예그림, 이도훈, 이한범이 참여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okulo.kr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유다미,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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