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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마징가Z>(1972)

키 18미터, 가슴둘레 13.6미터, 다리길이 7미터, 몸무게 20톤의 육중한 거대로봇. 전체 메카닉(기계장치와 디자인을 총칭하는 용어)도 과히 친절한 인상은 아니다. 몸체를 검정색과 흰색으로 꾸미고, 가슴에 붉은 날개를 달아 놓은 탓에, 눈길을 잡아채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형상이다. 게다가, 얼굴은 또 어떠한가. 입은 귀까지 찢어졌으며, 귀에 뿔을 달아놓은 것도 모자라, 머리는 텅 비어 있다. 철인28호의 둥글둥글한 메카닉에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굉장히 날카로운 외형이다. 어느 곳을 뜯어봐도, 천사 같은 형상커녕, 오히려 마신・악마의 형상이라고 해야 정확해 보일 정도며, 나중에 등장한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의 매끈한 모습과 비교해 보면 볼수록, 마징가Z의 형상은 더욱 불길하게 보인다. 마징가의 이름이 마신(魔神)의 일본어 음역(마징)이라는 점도 이 같은 면모를 확증하는 것 같다. 어찌하여 영웅의 모습에 악마의 형상을 뒤집어 씌웠는지, 의아할 정도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징가Z>의 원작자는 <파렴치 학원>, <데빌맨>, <바이얼런스 잭>으로 유명한 나가이 고다. 일찍이 학원폭력을 다루었던 <파렴치 학원>(1968)으로 학원만화 장르를 개척했던 그는 이 만화로 말미암아 사회에서 공공의 적으로 몰릴 정도로 지탄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괘념치 않고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갈 정도로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이 같은 반골기질은 작화 부분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를 손상시키는 정도를 사뿐히 뛰어넘어, 인간과 동물을 서슴지 않고 이종교배시켜 낸다. <마징가Z>의 매력적인 인물인 아슈라 백작은 반은 남자 반은 여자였으며, 브로켄 백작은 자기 머리를 들고 다니고, 고오공 대공은 호랑이 등에 인간의 상체를 얹어 놓았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데빌맨>의 경우 인간과 악마가 결합된 모습까지 등장한다. 상식이란 나가이 고에게 마치 조롱하라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러한 <마징가Z>는 1972년 10월 만화로 처음 나왔으며(1973년 8월까지 연재), 같은 해 12월부터 1974년 9월까지 총 92화로 제작돼 방영됐다. 만화가 먼저 나왔지만, 사실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으므로, 원작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마징가Z>의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헬 박사와 카부토 쥬조 박사는 함께 미케네제국의 유적을 조사하다가 거인병을 발굴해 낸다. 제국의 엄청난 거인병을 본 직후 헬 박사는 마음을 달리 먹고, 조사단을 전부 살해하지만 카부토 쥬조 박사는 놓치고 만다. 겨우 탈출한 카부토 쥬조 박사는 자기 별장에서 운둔 생활을 하며, 헬 박사에 대항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마징가Z를 완성한다. 헬 박사는 아슈라 백작을 시켜 자신의 야망에 걸림돌인 카부토 쥬조 박사를 제거하지만, 마징가Z만은 손자인 카부토 코지(쇠돌이)에게 온전히 넘어간다. 카부토 코지는 다소 문제는 있었지만 마징가Z를 완전히 장악하여, 광자력연구소의 소장 유미 박사와 함께 헬 박사가 이끄는 기계수군단과 맞서 싸우게 된다.

이제 <마징가Z>가 <철완 아톰>과 <철인28호>을 어떻게 종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마징가Z>는 소년과 거대로봇(인간과 기술)을 다시 결합시켰다. <철인28호>가 기계적으로 잘라낸 관계를 조종사가 파일더로 로봇에 합체하는 방식으로 복원시킨 셈이다. 이때 파일더가 마징가Z의 머리에 탑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즉 인간은 정신이며 기계는 육체라는 것이다. 혼이 없는 육체처럼 카부토 코지가 탑승하지 않는 마징가Z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반대로 카부토 코지 역시 마징가Z가 없다면 헬 박사의 음모에 맞서 싸울 수 없다. 그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이 둘은 함께 결합돼야만 공동체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즉자대자적 관계). 아톰이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즉자적이었다면, 철인28호와 쇼타로가 대자적으로 분리되었다면, 마징가Z와 카부토 코지는 즉자대자적으로 합체되어 있는 셈이다.

여기서 <마징가Z>가 언제 방영됐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63년 <철인28호>가 방영된지 9년 만에 <마징가Z>가 1972년 방송됐으니, 거의 10년의 세월이 흘러간 셈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뀌는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덧붙여 주지하디시피 1968년 도쿄올림픽을 성황리에 끝마친 이후, 일본은 1970년대부터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이 같은 자신감이 <마징가Z>의 로봇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현대식 모험이야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었을까. 카부토 코지가 거대로봇 마징가Z를 능수능란하게 조종해서 기계수군단을 이끄는 헬 박사의 세계정복 야망을 물리쳤던 것처럼, 산업기계문명을 일본식으로 발전시켜 다시 한번 꿈을 꾸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징가Z는 카부토 코지가 결합돼야만 마신이 되며, 카부토 코지는 마징가Z가 없이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에 불과했다. 따라서, 둘이 결합하지 못한다면, 또한 카부토 코지가 조종하는 머리만 공격한다면, 의외로 손쉽게 마징가Z를 농락할 수 있었다. 인간과 기계가 결합됐다는 것, 다른 말로 둘로 분열돼 있다는 것, 이것은 마징가Z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약점으로 남게 된다. 합체는 가능하지만, 융합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아시아 동북 끝단에 있던 일본이, 아무리 발전을 이루어도, 유럽에 편입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슈퍼맨>류의 이야기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부분이다. 

또한, <마징가Z>의 가족관계도 눈여겨 볼 점이 많다. 우선, 카부토 코지는 고아다. 아버지는 사고로 죽고, 할아버지가 코지를 키웠지만, 아슈라 백작이 암살하는 바람에, 세상에 완벽하게 홀로 남게 된다. 나중에 유미 박사가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만, 일부만 담당할 뿐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이 같은 가족관계는 <철완 아톰>의 구조를 고스란히 넘겨받는 결과다. 가족관계에서 아버지는 일종의 윤리적・정치적 규범의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와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사회에 적응할 때 상당히 애를 먹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지 못하는 아이가 훨씬 냉혹한 사회적 규칙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동일시한 결과,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 대표적으로 히치콕의 <사이코>를 생각해 보라. 덧붙여, 앞서 어른이자 아버지가 패배했던 일본의 현대사를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근대적 콤플렉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콤플렉스는 이후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에서 두고두고 반복된다. <신세기 에반겔리온>에서 신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아버지 때문에, 아니 아예 없는 게 차라리 나았을지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철저히 내면으로 고립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마징가Z>에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망가져 있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마징가Z>는 <철완 아톰>의 구조를 본받고 있지만, 소년과 로봇이 분열된 탓에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그것은 합체가 의미하는 모성성이다. 즉 소년과 로봇의 결합이 아이와 어머니의 원초적 관계로 재현되며, 이 과정에서 로봇은 부재하는 어머니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존재의 근원이자 기원이다. 고향만큼 편안한 곳은 없다고, 인간에게 어머니만한 안식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야말로 아이가 원래부터 있던 장소이자(자궁),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아이를 보호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습은 <에반겔리온>의 플러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플러그의 인터페이스는 특수한 성분이 들어간 액체(LCD, Link Connect Liquid), 즉 양수기 때문이다. “발진플러그에서 피 냄새가 무척 난다. 그런데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편안하고 기분이 풀리는 것일까.”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는 아예 인터페이스를 인격화시켜 여성형 사이보그(파티마)로 만들어 버린다. 파티마는 기사가 모터헤드(거대로봇) 내부에서 조종할 때는 (기계적인) 인터페이스가 되고, 기사가 모터헤드 외부에서 생활할 때는 (자연적인) 어머니이자 애인이 된다. (또한,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대령이 전선에 칭칭 휘감겨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자궁에 웅크린 태아처럼 재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마징가Z가 항상 수용장(정확히 오수처리장)에서 출현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어쨌든 간에, 아버지 없는 설움을 톡톡히 보상받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 앞서 <마징가Z>를 일종의 현대식 모험이야기로 설명했다. 변형된 형식이긴 하지만, 평범한 존재를 초월하는 영웅이 공동체와 세계를 지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전통적인 모험이야기나 미국식 초영웅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다. 왜 마징가Z는 헬 박사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왜 광자력 연구소를 쳐들어오는 기계수군단에 수동적으로만 맞서는 것일까. 마징가Z는 딱 한번, 끝나기 직전 91화에나 겨우 헬 박사의 지옥성으로 쳐들어갈 뿐이다. 게다가, 그 전까지 헬 박사의 본거지를 별달리 알아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광자력 연구소를 공격하는 기계수를 하나씩 박살내기만 한다. 이 문제를 단순히 마징가Z의 물리적 능력 운운하며 기술적으로 설명해선 곤란하다. 영웅이야기에서 영웅들은 원래 그런 난관을 극복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험이야기의 전형적인 구조를 생각해 봤을 때, 심각한 약점이자 과도한 변주로까지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기서 마징가Z의 기원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보자. 마징가Z는 헬 박사의 기계수군단처럼 잃어버린 미케네제국의 유산이다. 카부토 쥬죠 박사가 초합금Z로 개량하긴 했지만, 원천적으로 그들의 것이 아니다. 이는 생각해보다 심각한 문제다. 개량의 결과가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를 떠나서, 원본을 모방했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헬 박사 역시 모방이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극장판 <마징가Z 대 암흑대장군>(1974)에서 미케네제국이 역습했을 때(원본의 역습) 마징가Z가 처참하게 패배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물론, 한층 향상된 그레이트 마징가가 등장해 마징가Z를 구출하기는 하지만 서도.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하는 마징가Z, 이는 사회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직까지 일본은 평화헌법 때문에 일본 주변을 방어할 수는 있어도 외부로 공격할 수 없게 되어 있다(전수방위원칙). 이 때문에, 일본의 국방을 담당하는 부서는 국방부보다 한층 격하된 방위청이다. 힘이 있으나 막기만 해야 하고, 자신만의 의지도 없는 상태, 모험을 떠나지 못하는 영웅처럼, 외부로 출동하지 않는 마징가Z는 반쪽짜리 존재인 것이다. 또한, 현재 일본이 마주친 딜레마일 것이다.


글. 김상우(미학, 게임평론가)
_newromancers@gmail.com


*** 본 컬럼은 필자의 <문화사회연구소>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대중문화 포럼'의 강의자료를 토대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총 5회로 구성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1 : 시작하며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2 :
원형 <철완 아톰> (1951)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3 : 초석 <철인 28호> (1963)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4 : 완성
<마징가 Z> (1972)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5 : 한국적 변주 <로봇 태권V>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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