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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변주 <로봇 태권V>(1978)

마징가Z와 로봇 태권V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대략 20여년전 일본의 ‘로봇백과사전’이 해적판으로 출판됐을 즈음, 온 동네 아이들을 사로잡았던 주제다. 신해철이 푸념했던 대로, 마징가Z는 한국의 아이들을 배신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영웅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로봇 태권V이다. 비록 마징가Z처럼 매일 저녁 지구를 지키진 않았어도, 적어도 방학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붉은 제국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줬던 영웅이었다. 그렇다면, <로봇 태권V>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한국의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배경은 르네상스예술이 태어난 환경과 비슷하다. 르네상스예술이 자신만의 내용은 확보했을지언정, 자신만의 형식을 갖추지 못해서, 저 멀리 희랍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네들의 표현을 빌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했던 것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로봇 태권V>가 <마징가Z>를 표절했다는 식으로 문제를 좁혀선 곤란하겠다. 중요한 것은, 형식을 빌렸을지언정, 울려나온 목소리다. 이때 당시 한국의 목소리는 무엇이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변주됐을까.

사실, <로봇 태권V>는 당시에 일종의 드림팀이 구성되어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에 김청기, 시나리오에 지상학, 효과음악에 김벌레, 주제가 작사・작곡 최창권이 참여했다. 또한, 1976년 당시 한국영화 역대흥행 순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사실, <로봇 태권V>는 한국의 로봇애니메이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중에, 몇 편의 로봇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는 했으나, <로봇 태권V>처럼 대중과 호흡하며 문화적으로 뿌리내린 애니메이션은 없다. 예를 들어, 김청기는 계속해서 <로봇 태권V> 연작을 제작했지만, <황금날개> 이후 특수촬영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1990년 신해철이 음악을 담당해 유명한 <영혼기병 라젠카>가 제작됐지만,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로봇 태권V>의 전체 서사는 일본의 거대로봇 애니메이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마징가Z>에서 헬 박사와 카부토 쥬조 박사(이후 유미 박사)가 대립하듯 카프Karf 박사(말콤Malcom 장군)와 김 박사(사후 윤 박사)가 대립하며, 마징가Z가 헬 박사의 기계수군단과 맞서 싸우듯 로봇 태권V는 붉은 제국의 로봇과 싸운다. 물론, 여러 난관이 있지만, 끝내 이겨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큰 줄기만 견주어 보면,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의 공식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셈이다. 하지만, 변주는 미묘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 흥미로운 이야기는 세부에서 드러난다. 먼저, 갈등의 씨앗부터 조금 다르다. 고대 미케네문명의 과학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마징가Z>에서 카부토 쥬조 박사와 헬 박사는 이 때문에 대립한다. 여기서 ‘고대 미케네문명’이라는 은유가 핵심이다. 앞서 지적했듯, 미케네문명은 ‘이때가 아닌 저때의 문명’이요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이다. 이는 일본의 타자를, 즉 서양을 의미하며, 결국 <마징가Z>의 갈등구도는 일본과 서양의 대립이요, 결국 내부와 외부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로봇 태권V>의 갈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한 마디로, 외부가 없는 내부와 내부의 대립이다. <로봇 태권V>에서 외부(서양)를 의미하는 은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징가Z>처럼 기술을 빼앗는 과정이 기술돼 있지만, <마징가Z>의 단순한 반복일 뿐 중요한 실마리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서양의 과학은 있는 그대로 전제될 뿐,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이다. <로봇 태권V>에서 갈등의 씨앗은 정작 다른 곳에, 즉 카프 박사의 개인콤플렉스뿐이다. 헬 박사가 꿈꾸었던 몽상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카프 박사의 콤플렉스의 크기는 굉장히 작다. 사실, 앞서 고민이 없다고 했지만, 다른 갈등에 밀려났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그것은 민족내부의 갈등, 남과 북의 모순이다. 따라서, 일본이 서양과 싸움을 벌였다면, 한국은 북한 싸움을 벌인 것이요, <마징가Z>가 세계전쟁이라면, <로봇 태권V>는 내전인 것이다. 똘이 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수준인 것이다.

이 같은 면모는 애니메이션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가와구치 가이지의 <침묵의 함대>를 생각해 보라. 이 만화의 군국주의 혐의를 제쳐놓고라도, 역사적・예술적 상상력의 너비만 해도, 그네들은 아직까지 세계를 무대로, 정확히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한국의 상상력이란  타자가 북한을 넘어선다고 해도, 기껏해야 일본에 머무르는 정도다.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대표적이리라. 물론, 일본으로 확장됐으니, 최소한 내부도 내전도 아니라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제대로 된 ‘타자’를 확보한 것인지 남과 북이 맺은 ‘적대적 의존관계’의 변주 정도인지 애매할뿐더러, 타자라고 쳐도 고작해야 동해의 범위에서 한치 앞도 나가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인다.

글. 김상우(미학, 게임평론가) _newromancers@gmail.com


*** 본 컬럼은 필자의 <문화사회연구소>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대중문화 포럼'의 강의자료를 토대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1 : 시작하며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2 :
원형 <철완 아톰> (1951)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3 : 초석 <철인 28호> (1963)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4 : 완성
<마징가 Z>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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