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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논의를 발전시키기 전에 먼저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판단하는 인식 기준의 변화이다. 꼭 사운드에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언제나 예술은 통념적으로 작동하는 인식 구조에서 탈주하여 새로운 인식구조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했다.

물론 이러한 기준을 확립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외피구조를 만드는 일이 되겠지만 기존의 인식과는 다른 관점을 확립하고 인식 기준 자체를 더 넓게 확장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거쳐야 할 과정일 것이다.


현재 적어도 한국 예술계 안에서 사운드 아트를 구분하는 가장 큰 틀로서의 외피 구조는 미술관에 사운드가 들리게 또는 형성되게 설치된 시각적으로 볼만한 설치작품들과 현대 음악에서 접근하는 다양한 역사적 실험들에 있다(그 외에도 열거하기 곤란할 정도로 다양하지만 일단 논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을 중점으로 하겠다). 나는 이러한 작업군들을 사운드 아트를 판단하는 인식의 근거로서 접근할 경우 사운드 아트는 더욱 협소하고 자기복제적인 관점 그 이상의 기능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나는 이 지점에서 조심스럽게 사운드 아트를 판단하는 나의 인식 기준을 먼저 밝히고 싶다.


사운드로부터 수렴될 수 있는 모든 관점들, 개념들이 전적으로 듣기를 통해 확장되는 감각 기관의 경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형성되는 새롭게 생각하기 또는 다르게 생각하기의 준거틀인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적어도 사운드 아트라고 특성화 시킬 수 있고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은 쉽게 말해 기존의 미술과 음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청각적 경험을 통해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기존의 미술장치에서 소비되는 것도 아니고 현대 음악의 역사와도 관련이 없는 또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말한다. 내가 굳이 이 지점에 대해서 과민하게 구는 것은 2007년 초를 기점으로 한국 예술계에서 증폭된 사운드 아트에 대한 이해구조가 바로 사운드의 주체적 가능성에 근거를 두는 또 다른 관점의 가능성에 접근하기를 위해 편의상 선택된 명칭이 아니라 사운드의 문제를 기존 미술 장치에 추가적으로 부착된 새로운 소재거리 또는 기존의 현대음악에서 시도된 미디어아트의 다방향적인 접근에 의지한 무분별한 수용 정도로 판단하는 빈약한 관점들이 내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과연 기존의 미술 장치에 사운드를 추가함으로서 사운드 아트라는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음악이라고 인지되는 역사적인 경험적 구조가 타 장르와의 크로스오버적 실험등을 시도했을 때 사운드 아트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미술과 음악을 경험적으로 인지하는 외피 구조는 전혀 변하지 않은체 사운드만 소재로서 추가적으로 사용되면 사운드 아트가 될 수 있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설명의 용이성을 위해서 인식 기준 자체를 조금 다른 곳으로 위치 시켜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각 장르간의 장르집권적 교집합인 크로스오버가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바라보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과 미술이 선점하고 있는 장르적 외피의 새로운 소재거리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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