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티스토리 툴바



처음에 전시의 제목을 보았을 때, 이상스레 긴장이 되었다. 전시가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너무나도 포괄적인 개념과 2005-2015라는 바로 '당대'라는 시점을 모임에 대한 막연함 때문이었다. 근래 기존의 행보와 상당히 다른, 젊은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일민미술관이었고 미술관에서 워크룸프레스의 김형진 대표, 디자인듀오 슬기와 민의 최성민이 공동 기획으로 참여한 전시여서 우려보다는 신선함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전시장의 처음을 장식한 색인에서 드러나듯, 전시는 디자인 영역과 서울의 문화 예술 영역의 교차를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개괄하며 관찰한 결과물이었다. 그래픽은 감각기관중 시각이었고 말이다.


기획진은 2000년대 이후 여러가지 문화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한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와 이들이 서울의 문화 예술 지형도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들 스튜디오는 IMF 이후 지속된 경기침체로 인한 문화시장의 움츠림과 2000년대 서울시장의 디자인 강조 정책의 교차속에서 발생한 독특한 현상이자 현실에 대한 대안이었다. 이들은 기존의 대형 디자인회사들과는 다른 결의 활동을 보인다. 소규모 스튜디오달은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이용해 덩치가 큰 상품이나 기업의 광고 대신에 출판을 비롯하여 건축, 미술, 연극, 사진 등의 문화 영역에서 발빠르게 움직이며 자신들의 입지와 영역을 확장했다. 디자인 분야가 보았던 현실에 대한 대안이자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옵티컬 레이스, <33>, 2016


오늘날 여전히 우리 감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시각'이기에 디자이너의 표현 능력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기에 확실히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소위 말해 '세련되고 때깔이 좋다'라는 관념을 불러 일으키기 좋으며, 효과역시 좋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활동이 필요하며 용이하다. 인간사회 어디에서든 보편적으로 설득력있고 시선을 끌어들이는 시각 언어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옵티컬 레이스의 <33>은 디자이너의 시각과 언어로 세계의 역사를 조망했다.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여러 세계사의 사건들과 디자이너의 사적인 사건들이 함께 위치하여 공적-사적 사건이 연결되어있나 라는 의문과 함께 그 연결이 존재하던 존재하지 않건 서로간의 맥락을 읽어내도록 부추긴다. 그래프와 도표는 객관적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시각언어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데이터와 객관적이라는 관념과 디자이너가 표현하는 시각 언어가 만나 의미의 당위성은 증폭된다.


더북소사이어티, <불완전한리스트>, 2016


더북소사이어티의 <테이블 유니온>과 <불완전한 리스트>는 미술과 연극 영역에서 발행되는 리플렛과 도록의 아카이브이다. 문화 영역 활동의 자취, 족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들 인쇄물은 기관, 작가 개인, 단체의 공식적 활동에 반드시 포함된다.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매체이지만 실제로 인쇄됨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기억이고 보관되기보다는 늘 소비되고 버려지는, 제목대로 불완전하고 불안한 매체이기도 하다. 각 리플렛과 개별출력물은 으레 그 행사기간 전후로 흩뿌려지고 사라지지는 일시적 존재이지만 이들이 모였을 때, 각각은 연결되어 시간과 공간에 관련한 의미가 발생한다.


임근준, 김규호, 조은지, <걸작이로세, 그래픽디자인, 2005-2015, 서울>, 2016


미술과 디자인 평론가인 임근준과 디자이너 김규호, 조은지가 함께 한 <걸작이로세, 그래픽디자인, 2005-2015, 서울>은 알듯 모를듯 떠도는 전시의 작품들 속에서 미술관이 대표하는 기획과 연구의 활동에서 사용하는 비평과 평론의 언어를 통해 디자이너의 활동과 디자인 결과물을 시각 문화의 역사에 접착시킨다. 

소원영, <스몰월드, 그래픽 디자이너>, 2016

설계회사, <빌딩>, 2016


그래픽 디자인은 시각을 이용하여 의미를 소통하는 일종의 언어이다. 디자이너는 이 언어를 보다 설득력있고 효율적으로 다루어 내는 창작자이다. 이 언어는 당대의 상황에 따라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변화한다.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의 등장은 분명 현실을 반영한 현상이자 우리나라 문화 지형도 내에서 발생한 독특한 사건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 그리고 '서울'이라는 거대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 작업들은 디자이너 개인의 시각을 드러내기도, 당시 현실을 펼쳐놓기도, 당시의 디자인에 대한 논리적인 언어화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모았을 때 '그래픽 디자인이 이것이다' 라는 전시의 제목에 대한 당위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불안정함 때문에 관람자들이 더더욱 집중하여 예리하게 이 이야기를 관람하고 자신의 시각을 투영하고 비교하는 등의 적극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변명조의 생각이 떠올랐다.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균열을 드러내 반대급부로 관람자를 참여자로 서 있는 위치를 좀 더 이쪽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상상.



글. 허대찬 (앨리스온 에디터)



저작자 표시
신고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