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세마 벙커 <비전 온 비전 (Vision on Vision)> : 실험영상의 다양한 변주 _exhibition review

thoso 2018. 2. 20. 14:21


“비전 온 비전 Vision on Vision” 르메트르 콜렉션 Lemaître Collection 전시 리뷰 – 실험영상의 다양한 변주


미디어아트 분야를 중점으로 전시기획하는 서울시립미술관 벙커(SeMA Bunker)에서 약 20여년 동안 실험영상을 수집해오고 있는 르메트르 부부(이자벨 Isabelle, 장-콘라드 르메트르 Jean-Conrad Lemaître)의 작품 11점이 공개되었다. 전시는 모두 스크린 기반의 순수 영상작품들로, 1984년부터 2017년 최근까지의 작품들이 시대와 나라, 문화권 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영상작품들은 스크린 크기에 변주를 주어 오픈공간과 블랙박스 안에서 영사되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에밀 자시르(Emily Jacir)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2003)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현존을 기록하기 위해 광장을 비추는 화상카메라 36개를 사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하려 했지만, 광장을 비추는 카메라 속에 자기 자신은 하나의 점으로만 보일 뿐이다. 일군의 군상들 중 부분인 개인의 모습이 온라인에 무수히 많은 풍경 영상 속 배경에 그칠 뿐이라는 점을 지정학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 느낄 것 같은데, 고층 빌딩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게 보이는 자동차와 사람들 속에 있을 가족과 친구의 존재는 모래 알맹이처럼 보이듯이 모래 알맹이 같은 존재인 개인들이 노력하는 각자의 실천들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 <리요>, 1999



 지금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같이 경험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처럼 이질적인 풍경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구성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필름언어를 구축하는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의 작품<리요>(1999)도 개인의 내러티브를 필름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작년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했던 아이작 줄리앙(Isac Julien)의 <영역들>(1984)과 르메트르의 신작 소장품인 클레망 코지토르(Clement Cogitore)의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2017)은 기득권에 의해 규정되어버린 흑인 소수 정체성의 저항을 담은 편집영상과 저항운동인 크럼프 댄스퍼포먼스로 전개해보여준다. 최근에 관람한 영화 <1987>의 시위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처럼 억압받던 한 쪽의 시각에서 반대 기득권을 바라보는 장면이 소수자에 대한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였다.


비아트리스 깁슨, <하나의 필수적인 음악>, 2008



루즈벨트 섬의 거주민들에게 살고 있는 지역을 가상의 공간이라 상정하였을 때 어떤 곳인지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도시를 설명해나가는 <하나의 필수적인 음악>(2008)은  이상화된 도시공간과 실제 생활영역의 교차로 지점에 위치해있는 새로운 공간을 소환시키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과정을 이끄는 거주민들의 집단 공동체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비아트리스 깁슨, <하나의 필수적인 음악>, 2008



 케렌 시터(Keren Cytter)는 젊은 남녀 청춘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관람하는 일상생활에 행위 지시, 단어 반복 그리고 이중적 의미라는 옵션을 추가하여서 단조로운 일상을 유희적으로 보여주는 영상 <드림 토크>(2005)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양 푸동(Yang Fudong)의 <후방-이보게, 해가 뜨고 있다네>(2001)는 공산주의 세대가 자본주의 경제가 도입되면서 변화해가는 사회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단순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였다.


수퍼플렉스, <워킹 라이프>, 2013


이 외에도 열악해지는 사회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대상으로 최면술을 걸어, 갇혀있는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퍼포먼스를 하는 수퍼플렉스(Superflex)의 <워킹 라이프>(2013), 영국의 고전연극과 1960년대 플럭서스 시기 퍼포먼스로써의 연극의 갈등과 충돌을 보여주는 캐서린 설리반(Catherine Sullivan)의 작업 등 이 외에도 영상이라는 장르로써 다룰 수 있는 다양한 각 계 부분들을 선별하여 전시되고 있었다.  


 작품별로 러닝타임이 꽤 있는 편이다보니 약 4시간에 걸쳐서 컬렉션 작품들을 관람하였는데 각기 너무 다른 이야기들을 보여주어서 지루함 없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품에 몰입하여 감상하였다. 이번 르메트르 콜렉션에선 개인의 서사를 표현하거나 개인의 존재를 기록하고, 소수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갈등을 빚는 상황 속에 극복을 위한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공동체성,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영상 매체 특수성을 지닌 실험들과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는 아방가르드-움직임들을 엿볼 수 있었다. 80년대부터 최근 작품까지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영상매체의 활용방법에 대해 고안하는 작가들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작품 비교를 통해 영상작품의 주제와 건드리는 사항들에 대해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보게끔 시각을 확장시켜줄 전시라고 생각이 든다.


글: 김소현 (앨리스온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