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인간의 두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 여겨왔다. 눈을 제2의 뇌라고 부르는 이유는 수많은 정보들이 일차적으로 투과하는 신체 기관이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 고유의 관점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에 의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개별적이며 특수하다고 할 수 있다. 두 눈에 의해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은 카메라의 발명이후 보다 많은 눈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체에 장착된 눈 이외에도 휴대할 수 있는 제3의 눈을 통하여 또 다른 세계를 탐구하고 더 갈망하게 되었다. 독일의 대표적 미디어 철학자 키틀러(Friedrich Kittle,1943~2011)는 이러한 변화가 물질적 토대위에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더 이상 시각에만 의지하지 않고 더 넓은 광학적 구조 안에 위치한다고 언급한다.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 예술 기술 전쟁기술매체의 발전》은 키틀러가 1999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열린 14개의 강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특히 키틀러는 매체가 인간의 사유방식과 존재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면서 단순히 의사전달의 표현수단이 아닌 의식을 규정한다고 언급하였다. 키틀러는 캐나다 학파로 대표되는 맥루한과 프로이트를 예를 들며 그들이 주장했던 신체로부터 기술의 사유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맥루한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신체의 확장”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이러한 그의 주장은 에른스트 카프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기술적 장치를 신체적 기관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오랜 전통을 지속 발전 시켰다. 특히 프로이트는 『문명속의 불만』에서 “인간이 모든 보조기관을 부착하면 신처럼 당당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키틀러는 인간이 당연히 모든 미디어의 주체라는 그들의 주장은 섣부르다고 말한다. 맥루한이 말했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는 사실은 미디어는 또 다른 미디어를 낳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틀러는 “TV방송의 내용은 극영화이고 극영화의 내용은 소설이며 소설의 내용은 타자본이며 이렇게 계속 올라가다보면 일상 언어의 바벨탑으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결국 키틀러는 미디어의 본질을 물리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즉, 매체유물론을 통해 소통의 물질성을 강조하며 물질만이 실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기록시스템』에서 ‘정신’을 상징하는 근대의 인문학이 이미 문자 및 ‘기술’을 상징하는 인쇄술 발전의 산물이었다고 전제하면서 소통의 물질성에 근거한 문명사를 서술하고 있다. 가령 1800년대의 기록시스템은 인쇄매체가 매체의 주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1900년대 기록시스템은 축음기, 전화기, 타자기 등 새로운 기술매체가 발명되면서 텍스트를 넘어선 소리와 영상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키틀러의 유물론적 사고방식은 인간이 언제나 우위에 있어왔던 서양 근대철학에 나름의 반기를 드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서양 근대철학에서는 인간은 항상 만물의 영장으로 등장했고 또 모든 철학이 인간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반면 키틀러는 인간을 기술의 종속되는 부품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인간의 주체개념 자체를 제거해 버렸다. 이는 근대의 주체적 인간상을 완전히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키틀러의 관점은 현시대에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기계매체의 우위에 또 다른 인간성의 상실을 야기할 여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미디어의 발전으로 누구나 기계 미디어에 익숙해졌지만 이는 지나친 인간 주체성의 상실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시대의 기계매체는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모두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역자 : 윤원화
역자 윤원화는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건축학과
영상문화이론을 공부했고,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하이테크네』(공역, 2004), 『컨트롤 레벌루션』(2009),
『청취의 과거』(2010) 등이 있다.
목차
글. 이진영 (앨리스온 수습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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