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162

검색, 사전을 삼키다_book review

이전 직장에서 ‘검색’은 공적인 하루 업무 중 하나였다. 언론인의 꿈을 안고 들어간 모 통신사의 이슈팀에서 인턴 기자로 일을 시작한 첫 날, 나는 펜을 무기 삼아 현장을 누비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너 쪽으로 정리된 얄팍한 기사 작성 매뉴얼을 손에 들고 나서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됐다. 우리의 취재처는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의 기자실이 아니라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과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나 오유(오늘의유머), 인스티즈, 엽혹진(엽기혹은진실), 디젤매니아, 파우더룸, 아이러브싸커 등의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말하자면, 회사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현장 취재가 아니라 ‘검색어 대응’과 ‘어뷰징’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1위부터 10위까지 ..

노웨어(nowhere)가 아니라 지금, 여기 (now here) : 에레혼 EREWHON _book review

사진 출처: 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3/02/erewhon 에레혼 EREWHON』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활동한 소설가이자 사상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의 1872년 소설이다. 새뮤얼 버틀러는 목사가 되길 바라는 가족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주해 성공한 목축업자기도 했다 (버틀러는 뉴질랜드의 황무지에 목장을 만들고 양치기 생활을 했다). 버틀러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을 읽고 매료되어 그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다윈과 편지로 대화하기도 했으며 음악과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버틀러의 『에레혼』, 특히 다윈의 진화론을 기계에 대입한 ‘기계..

디지털 생명 기술시대에 인간은 무엇일까 : 포스트휴먼 시대의 미술_book review

포스트휴먼 시대의 미술 : 신체변형 미술과 바이오아트_book review 디지털 생명 기술시대에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들은 항상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시작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기술에 의해 침범당한 인간은 이제 정신과 신체의 이분법적 이해로는 쉽게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 신체변형과 증강 등의 기술이 인간의 본질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기술 시대의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의 서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다. 도처에 가상실재와 고도기술 융합기계가 혼재한 현실에서,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스트휴먼이란 포스트(Post)와 인간(Human)의 합성어이다. ‘탈’을 의미하는 ..

인공지능 시대의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_book review

인공지능 시대의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책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는 저자 김재인이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개설한 “컴퓨터와 마음” 강의를 글로 옮긴 것으로 알파고에서 시작된 인공지능에 관한 관심이 상업적 관심으로 옮겨간 오늘날, 다시 한번 인공지능이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질문한다. 인공지능 시대, 저자가 던진 질문은 ‘고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플라톤과 데카르트, 흄과 니체를 지나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 묻는 튜링의 오랜 질문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1장에서 밝히고 있듯, 모든 질문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그 질문을 구성하는 기본 개념들이 더 중요하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에 답하기 전에 기계는 무엇이고, 생각은 무..

당신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 | 시각과 문화』_book review

당신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 | 시각과 문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처럼, 단 한번이라도 바라본 대상에 의심을 해본 적이 있을까?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에서는 시각이 다른 감각들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시신경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문화적 현상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교육의 차이, 인종의 차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서로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다. 저자인 마리우스 리멜레와 베른트 슈티글러는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총 8파트에서 ‘눈’이라는 매체를 통해 발현되는 시각문화의 다양한 단면을 고찰했다. 이 책은 ‘보는 눈의 여덟 얼굴’로 역사적, 포스트식민적..

사피엔스: 인간 종의 비극적 서사시 _book review

인간에 대해 논하는 책은 많다. 모든 인문학이, 문화가, 예술이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이 소비하고 즐긴다. 그렇다면 ‘종’이라는 부분은 어떨까.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유발 하라리의 는 "우리를 지칭하는 ‘인간’은 하나의 종이 아니었다" 라는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지구에 퍼져 있던 인간종 중 우리의 직계 조상인 '사피엔스'는 실로 타고난 잔혹한 정복자였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던 형제 종들을 모두 절멸시키고 스스로의 숫자와 활동 영역을 불리며 지역을 정복해 나갔다. 결국 사피엔스의 뒤에 남는 것은 사피엔스 자신과 자신이 사용하고 다룰 몇몇 종들 뿐이었다. 동등하거나 신체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가진 사피엔스가 그의 형제 종, 그리고 여러 대형 동물종을 멸종시키거나 복속시킬 수 있던 이유는 ..

개체를 넘어서: 시몽동의 기술철학_book review

개체를 넘어서: 시몽동의 기술철학-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청사진 기술철학자 시몽동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은 프랑스 중동부 공업 도시에서 태어났다. 탄광과 공장 지대 사이에서 자란 시몽동은 장인들, 기술자들과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었고, 기계화에 따른 기술적, 인간적 문제에 대해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는 고전 철학부터 물리학, 광물학, 생물학, 기술 공학에 이르는 넓은 사유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고, 사이버네틱스와 정보 기술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 출간한 저서는 두 권,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뿐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가 번역..

한 장소 다음에 또 한 장소: 장소 특정적 미술 _book review

​​미니멀리즘 대표 작가인 도날드 저드는 프랭크 스텔라의 회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one thing after another” 즉 “하나 다음에 또 하나” 라고 표현하며 일정하게 반복된 체계의 산물 이라는 의미를 덧붙였다. 이는 60년대 대량생산의 기계적인 반복과 질서를 표상하는 말이다. 저자 권미연은 ONE PLACE AFTER ANOTHER, 즉 “한 장소 다음에 또 한 장소”라는 원제를 붙이며 20년이 지난 1980년대 후기 자본주의 시대부터 정보와 자본이 글로벌하게 이동하면서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오늘날의 장소란 지역적 특수성의 소멸되고, 문화가 동질화되며, 정체성의 차이마저 희박해지는 사회적 공간임을 제시하며 이 책을 통해 장소 특정적 미술을 둘러싼 담론을 해체한다. 이 책은 1960년대..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 기록시스템 1800-1900 _book review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최근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 적시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 테제는 키틀러(Friedrich Kittler)의 기술결정론적 주장을 함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우리를 반영하고 투과하며 동시에 확장시킨다. 특히 근대에서 현대로의 진입의 문턱에서 기술 미디어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분야는 찾아보기 힘들다. 키틀러의 "기록시스템 1800-1900"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현실이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시스템의 진화에 어떻게 연동되어 변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키틀러는 기술-미디어에 관한 관심으로부터 독창적인 미디어 학자로의 지위를 확립하지만, 이후 '음악과 수학 I. 헬라스 1:아프로디테'와 ‘음악과 수학 I. 헬라스 1:에로스’를 발표하며..

실험실의 피그말리온: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 _book review

실험실의 피그말리온: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_book review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멀리한 채 조각에만 몰두했다. 결국, 이상(理想) 그 자체인 조각상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이를 불쌍히 여긴 아프로디테 여신은 그 조각상을 실제 여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신화 속 조각가뿐 아니라 역사 속 많은 예술가가 피그말리온의 기적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더 사실감 있는 그림, 더 생생한 그림을 향한 열망은 가상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열망이었다. 재현의 예술은 그렇게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환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생명의 예술을 향한 피그말리온의 기도처럼 예술가들의 집요한 시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