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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3/02/erewhon

   

에레혼 EREWHON』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활동한 소설가이자 사상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의 1872년 소설이다. 새뮤얼 버틀러는 목사가 되길 바라는 가족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주해 성공한 목축업자기도 했다 (버틀러는 뉴질랜드의 황무지에 목장을 만들고 양치기 생활을 했다). 버틀러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을 읽고 매료되어 그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다윈과 편지로 대화하기도 했으며 음악과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버틀러의 『에레혼』, 특히 다윈의 진화론을 기계에 대입한 ‘기계의 책’ 부분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등장 하기 전, 인공지능의 도래를 예견한 소설이라는 의의가 있다. ‘기계의 책’은 들뢰즈나 가타리 같은 현대 철학자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개념을 제시한 앨런 튜링은 자서전에 버틀러를 인용하기도 했다.  최근 이 오래된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2018년 1월). 150년 전, 버틀러가 상상했던 인공지능은 무엇이었을까? 또 2018년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킬까?

 

어디에도 없는 곳, 에레혼

『에레혼』의 버틀러가 뉴질랜드 생활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와 그곳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풍자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틀러 본인처럼 『에레혼』의 주인공은 뉴질랜드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던 인물이었으며, 새로운 산맥을 탐험하다가 ‘어디에도 없는 곳 (에레혼 EREWHON, NOWHERE를 거꾸로 쓴 것)’이란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에레혼에서는 질병, 심지어 임신과 출산 역시 죄악 이자 부도덕한 것이지만, 도둑질하거나 횡령하는 것 등은 죄로 여겨지지 않는다. 대학에서는 비이성(unreason)을 가르치고 은행에서는 사치를 위한 화폐만을 발행한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열기구를 타고 그곳에서 탈출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의 형식은 에레혼의 풍습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에 가까운데, 버틀러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당대 영국의 종교, 도덕관, 사회 관습의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기계의 책

『에레혼』의 다른 부분도 흥미롭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에게 영감을 부분은 책의 23, 24, 25장(한국 번역본 기준)을 차지하는‘기계의 책’이다. 이 부분은 에레혼의 비이성 대학 교수가 집필한 논문을 주인공이 번역해 실은 부분으로 주인공의 시각에서 에레혼의 풍습을 담은 다른 장들과 차이가 있다.

 

에레혼에서는 어떤 종류든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최악의 범죄로 여겨진다. 주인공이 에레혼에 오기 500년 전, 기계 파괴 혁명이 있었고, 권력을 잡은 반(反)기계주의자들이 기계에 대한 모든 기록을 불태워버렸다. 주인공이 얻은 논문이 바로 그 기계 파괴 혁명의 단초가 되었던 논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다른 생물과 비교했을 때 기계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는지 언급하며, 앞으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것이기 때문에 “기계의 싹을 자르고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기기관에 의식 같은 것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p.247

 

증기기관 같은 기계도 인간처럼 음식을 섭취하고 맥박, 혈액순환이 있으며 의도적으로 행동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등 인간과 유사점이 끝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관점은 진화론처럼 기계가 스스로 진화한다는 가설이다.

 

“한 기계가 또 다른 기계를 체계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면 그 기계에 생식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

또한 다른 기계에 의해 체계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기계가 얼마나 되겠는가?”-p.262

 

기계가 다른 종처럼 진화하기 때문에 현재는 유아기 상태이지만 미래에는 인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기계의 책은 당대 영국에서 일어났던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과 다윈의 진화론을 에레혼이라는 가상 세계에 투영한 것이다.

 

사실 당대 가장 정교했던 기계는 증기기관 정도였기 때문에 버틀러가 인공지능을 예견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또 기계의식이나 기계의 생식 체계를 주장하는 부분이 체계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기보단 식물, 동물의 예시를 기계에 대입한 것으로 반박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은 번역이 쉽지 않다는 등 주장을 얼버무린다. 그러나 기계의 책에서 우리가 눈 여겨봐야 할 부분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기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에레혼의 사람들이 기계를 파괴해버렸던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인간은 기계로 만들어진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느끼는데, 이는 기계가 인간에게 초래한 작업을 통해서이다.

기계와 인간은 서로에게 필수적인 존재이다.”-p.257

 

“인간은 각자 수많은 미소동물에서 튀어나왔으며…이런 작은 생물들이 인간의 생식계 일부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기계의 생식계 일부가 아니겠는가?”-p.263

 

노웨어(nowhere)가 아니라 지금, 여기 (now here)

“과거가 미래의 서곡이라면, 우리는 왜 사람들이 과정 섞인 예측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제 컴퓨터는 그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틀러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속의 동물적 본성과 대면했지만, 이제는 기계와 대면하고 있다.”

(Bruce Mawlish, 『네 번째 불연속-인간과 기계의 공진화』,김희봉 옮김(사이언스북스, 2001), 300.)

 

우리는 지금, 150년 전 버틀러가 예견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의 상상처럼 인간을 지배하는‘의식 있는 기계’는 (아직) 없지만, 인공지능의 발전과 그 편리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학자인 페드로 도밍고스는 자신의 저서『마스터 알고리즘』(2015)에서 컴퓨터에는 고유한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가능성은 0 이라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사람 대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이용하는 사람 대 기계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의 대결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컴퓨터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실제로 생각한다고 단언하는 강 인공지능(strong AI) 가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이고, 우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물론 버틀러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다. 영화 HER처럼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라면? 영화 A.I와 반대로 부모가 없는 아이에게 부모 인공지능이 있다면? 공각기동대처럼 인간과 인공지능이 하나가 된다면? 

책을 덮으면서 나는, 미래를 그려본 수많은 상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인공지능은 이제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실제 인공지능 연구에 뛰어들거나 미래 세계에 관한 상상을 확장하거나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교육을 하거나 혹은 인공지능의 철학을 공부하거나. 개인마다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다를 것이다. 인간은 앞에 놓인 짧은 미래 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튜링의 유명한 논문의 마지막 구절을 빌렸다. A.M.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Mind 49(1950), 433-460.)

 

사진 출처: https://hazyoasis.deviantart.com/art/The-Monolith-280726445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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