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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컨트 The RADICANT 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28. 18:42



"현대 미술가는 기호탐험가이다. 더 이상 고전적인 평평한 공간이 아닌,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 있어 무한한 네트워크인 하이퍼텍스트 세계의 조사자이다. 또한 형태의 생산자라기보다는 형태의 가치 유지, 그것들의 역사적, 지리적 권위의 통제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 니꼴라 부리요


   최근 출판된 이 책은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평론·이론가 니꼴라 부리요의 가장 최근 저서인 래디컨트(2009)를 번역한 것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문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두고, 담론의 장이 형성되길 바란 것 같다. 현대 미술이 과거의 모더니즘 체제에서의 보편성 대신 문화권 단위로 이해되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달라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설명키 위한 용어가 바로 래디컨트(radicant)이다. 책은 몇몇의 주요 용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얼터-모더니티, 래디컨트, 항해, 얼터모던 시대가 그것이다. 이러한 큰 틀 하에 결국 래디컨트한 현대미술의 특성을 연구하는데, 이제 그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부리요는 모더니즘 미술의 특성은 닫힌 보편성이고, 현대 미술가들의 특징은 열린 보편성이라 하며, 이 차이의 인정이 다른 문화권의 요소들을 번역(translation)하는 행위를 통해 실천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번역이라는 개념은 호미바바[각주:1]의 양가성, 다원주의 등 절대적 가치에 대한 논의 이후에 대두되었다. 혼성적 패러다임의 연구가 이루어진지 10여년이 흘렀기에 앞선 개념으로는 문화의 새로움을 조명하기에 어렵다는 판단 하에 등장 한 것이다. 부리요는 이러한 번역의 실천이 현대 미술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라 규정한다. 또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론적 간극을 얼터-모더니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과거 현대화(modernizing)”가 서구의 문화, 사회적 현실의 환원적 의미로서 존재하였다면, 오늘날 모더니즘은 식민주의와 유럽중심주의의 공모 관계 형태가 되었다. 이에 지금까지의 모더니티에서 벗어나, 현 시대의 새로운 모더니티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용어로서 얼터 모더니티 개념이 등장한다. 또한 부리요는 앞서 언급한 번역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상호 연관된현대의 보편주의를 래디컨트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래디컨트는 나무들 주변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와 같이, 땅 위에 뿌리를 박는다는 의미를 가진 식물학 용어이다. “래디컨트하다는 것(to be radicant)”은 누군가의 뿌리를 움직일 수 있게 설정하고, 그 뿌리를 이질적인 배경과 형식으로 연출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정의 내리는 그들의 힘을 부인하고, 생각을 해석하고, 이미지를 코드로 바꾸고, 행동을 이식하며, 강요하기보다는 교환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현대 문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개별 문화의 정체성을 논하는 한 방법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기존의 다문화주의에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세계화 이후 아직 설명되지 않은 다양한 문화 현상을 사고하는 데 있어서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된다. 더불어 앞 선 저서 관계의 미학에서와 같이 그의 센스 있는 용어 선정이 이번에도 빛을 발할지 기대된다. 미술사와는 다소 거리가 먼 식물학 용어인 '래디컨트'를 제시하였는데, 냉철히 말하면 관계란 용어와 같이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래디컨트가 뿌리를 두고 변화하고 교류하는 일련의 공통 현상을 뜻하기 때문에, 동시대의 많은 문화 담론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동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리고 그것을 언어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과정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래디컨트 The RADICANT, 미진사, 2013 

저자: 니꼴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이론가. 2000년에서 2006년까지 제롬 상스 와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공동 디렉터를 역임했으며, 2007년에서 2009년까지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서 걸벤키언 큐레이터Gulbenkian Curator로 지내며 2009년 테이트 트리엔날레를 조직했다. 2010년부터 프랑스 문화부의 예술창작 감독기관장 chef de l'Inspection de la creation artistique au Ministere de la Culture을 맡고 있다. 부리요는 1990년부터 베니스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등 유럽 각지에서 크고 작은 전시를 기획하는 동시에 이론적 작업을 수행하면서, 현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유럽의 큐레이터로 자리 잡았다. 저서로는 관계의 미학Esthetique relationnelle, 형태의 삶Formes de vie, Une genealogie de la modernite,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등이 있다.


옮긴이: 박정애 


글. 이진 (앨리스온 에디터)



  1. 호미 바바(Homi K. Bhabha, 1949~)는 인도 출신의 미국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문화비평가이기도 하다. 바바도 사이드나 파농처럼 1세계 백인 지배집단과 3세계 유색인종 피지배집단 사이의 경계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뭄바이에서 태어난 파시(Parsi)교도인데, 파시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일파로 고대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인도의 소수파 종교이다. 파시교도들은 인도의 대표적 종교인 힌두교 풍습을 존중하면서도 자체의 종교적·인종적 특색을 유지하면서 인도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파시교의 영향을 받은 바바의 성장과정과 문화적 경험은 그의 주요 개념인 ‘혼종성(hybridity)’의 특색을 갖는 것이었다. 혼종성이란 일종의 문화적 잡종으로서, ‘차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동일성이나 총체성으로 포섭되거나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끊임없이 경합하고 협상하는 지속적인 과정을 말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