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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에 대한 개인적인 그리고 압축된 시공간의 꿈: 박경근 _Interview

kunst11 2015. 10. 6. 17:51


"철의 꿈" 鐵夢, A Dream of Iron (2014) 의 감독이자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박경근 작가를 만나보았다. 박경근은 해외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내에 돌아와 영화,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등 창작의 활동 범위를 넓히며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현대미술가로 할동하고 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 을지로에서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 하고 있는 박경근 입니다. 주로 비디오 설치, 영화 작업을 했고, <철의 꿈> 과 <청계천 메들리> 라는 작업이 있습니다.


Q. 더 스트림에서도 상영한 <철의 꿈>은 영화계와 미술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작품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신다면요?


< 철의 꿈>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현대중공업, 포항제철 일대에서 촬영 되었습니다.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와 울산의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배의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작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 예술의 기원, 신화 등을 탐색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본 산업 현장의 거대함을 원시적인 신화와 춤을 바라 보는 것처럼 그려낸 작품입니다.



<철의 꿈  A Dream of Iron>, 2014


Q. 반구대 암각화와 제철소의 철의 연결고리는 어떤 생각에서 찾게 되었나요?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나온 과정이 궁금합니다.


단 이미지로 시작됐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어! 암각화의 고래 그림이 조선소의 배처럼 생겼네?” 라는 느낌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 디테일들을 찾아냈는데, 정말 원시시대에 고래를 잡아서 고래의 뼈, 고기, 기름 등이 부족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했듯이,  60-70년대 포항제철의 쇠로 현대중공업의 배를 만들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고래와 배 모두 특정한 문명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되죠.




Q. 철 시리즈 3부작 중 <철의 꿈>은 두 번째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전작인 <청계천 메들리>에서의 철과 <철의 꿈>에서는 철은 동일한 존재 인가요? 같은 철이 필름의 소재이지만, 완연히 달리 보입니다. 물론 물리적 공간이 다름에서 오는 이미지의 차이인 것도 알겠습니다. 감독이 철에 대한 시선에 변화가 있어 보여요.


들다 보니 지금 작업 중인 군대 프로젝트까지 3개의 시리즈로서 소개 되어지고 있는데요. 한 주제로 바라본다면 ‘한국 남성의 원형’을 표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작품에서 시선의 변화는 <청계천 메들리>가 다소 설명적이였다면 <철의꿈>은 최대한 감각적으로 접근한 작품입니다. 최대한 책도 안 읽고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반응에 더 집중하다 보니 표현의 디테일에 더 집중하게 되어, 카메라, 편집 방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시원하다 할까요.


<청계천 메들리 Cheonggyecheon Medley>, 2010



Q. 영화를 보면 철이 물신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것은 알겠습니다. 실제 감독이 영화에서 찾고자 한 신의 존재는 무엇인가요? 종교적인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도는 제가 물질을 바라보는 마음의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 물질은 가만히 있으나 그것이 묘하게 변한 듯이 보이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물질과 정신이 함께 존재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물질에 어떤 본질이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와 그 물질 사이에 어떤 진실이 만들어져 나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품에서의 “신"은 나의 내면과 외부의 세계가 연결되는 어떤 지점 같습니다. 그 연결되는 지점은 역으로 완벽한 분리가 있어야 형성되는데,  외부의 어떤 위협에서 부터 자신이 안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다시 그 위협을 바라볼 때 느끼는 숭고함의 체험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전이 확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두려움만 존재 하겠죠. 영화에서는 고래가 포획이 되고 정복이 가능해졌을 때 비로소 숭고한 존재로 인정되었다는 내용으로서 이야기되어 집니다.




Q. 한국의 80-90년대 산업발달에 열을 올렸던 사회변혁의 시기의 보편적인 소재들(산업, 철, 노동자..)이 작품을 끌어나가는 중요 포인트로 보입니다. 추상적인 신의 존재, 물적인 신 사이에서 실재 현실의 노동자들의 노동이라는 소재의 연결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노동자들의 소외된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인가요?


산업국가의 살면서 아무도 어떤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본 적이 없습니다. 산업화의 인프라인 제철소 뿐만이 아니라 자동차, 세탁기, 심지어 문고리 까지 그냥 사서 쓰지 아무도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본 적이 없습니다. 노동의 형태는 많이 바꼈지만, 조선소에서 용접이나 프로펠러를 제작할 땐 여전히 손 노동이 필요로 합니다. 전 그렇게 프로펠러가 손으로 만들어지는 광경이 마술 같기도 하고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물론 노동이 제거된, 모든게 자동화된 제철소의 모습도 신비로웠습니다. 또한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공장을 멈추게 하는 자료화면들의 장면은 굉장히 드라마틱 했습니다. 파업 장면은 현대중공업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였습니다. 파업장면이 민감하다는 것은 알지만 누구를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표현에서 자유로웠던거 같습니다.


Q. 작품 편집에서 이미지의 질감 처리에 신경을 쓴 듯 보입니다. 음악도 그렇고.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신경 쓴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또 영화의 배경 음악은 직접 선택 했나요?


편집에서 이미지의 시각적인 요소보다 촉각적인 요소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붉은 철광석이 가루처럼 떨어져 산을 만드는 장면, 푸른 물과 고래피부의 부드럽고 시원한 느낌,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철 통의 녹슨 표면 등 이미지의 질감에 순서를 주는 방법을 통해 균형의 시차를 두며 리듬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축이 쉽게 말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리듬감과 긴장감으로 이끌어 가도록 했습니다. 음악은 시간을 정리 해주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진행에 있어 음악과 이미지는 겹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며 호흡하게 됩니다. 음악은 선곡과 작곡이 있었는데, 작곡은 작곡가가 하고 선곡은 제가 했습니다.



Q. <철의 꿈>에서 거대한 중공업의 공간을 촬영함에 있어 프레임 구성에 많은 공을 들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화면 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 입니까?


질감 다음은 공간감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3차원의 실제 공간을 2차원의 평면적인 영상 이미지로 옮기면 격차가 생기는데 이 차이를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구도를 통해 2D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Q. 작업 제작 과정 중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촬영을 할 때 작은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했는데 무시를 당해 후에 큰 카메라를 구입해 촬영 했습니다. 사실 그림은 비슷해요.


Q. 영화가 다큐멘터리, 비디오아트 등 장르 상 그 경계에 다 걸쳐있는 듯이 보입니다. 감독이 생각하는 작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 뭐라고 불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양한 유통되는 구조가 영화와 미술이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은 의식하고 살아 남기 위해  박쥐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듯 합니다.


Q. 극영화가 아닌 사실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 입니까?


픽션이나 다큐나 어차피 현실이 아닌 이미지인데 다큐는 현실인 척을 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가 가장 픽션적인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마도 사람을 찍거나 인간관계를 힘들어 하기 때문에 혼자 작업할 수 있는 풍경 위주의 다큐멘터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지금은 인물을 찍고 있는데 인물을 찍으면서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Q. 장소의 변화에 따른 상영에 있어 편집 및 설치에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 입니까?


전시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공간에서 관객이 작업을 몸으로 체험하고 기억하는 부분입니다. 공간, 사운드, 스크린의 이미지, 관람객의 몸과의 스케일감이 중요합니다. 좋은 작품은 일차적으로 눈으로 보지만 결국은 몸으로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반응하게 하기 위해 육체적인 경험을 이끌어 내고 몸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배경지식 없이 작품의 이미지, 동작, 색이나 질감, 리듬으로서의 경험이 텍스트와 다른 즉각적인 체험이 현대미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랑과 이별은 무엇인가요? '철의 꿈'과의 연결고리가 궁금합니다. 또한 감독이 생각하는 '철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도 잘 안되지만 사랑은 완벽히 이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찾아오는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상대방에 편견없이 완전히 몰입 되는 것. 만약 그게 진정 되었다면 이별은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슬프지만 후회 없는 이별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별을 해야 또 다른 만남이 있구요.
영화의 내용에서 한 시대의 표현은 그 시대의 끝과 함께 한다는 것 입니다. 역으로 작품을 만들어 그 시대를 끝내겠다는 야심찬 의도도 있었구요. 중요한 건 공장 풍경과 역사에 편견 없이 완벽히 감정이입하여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철의 꿈’은 철이 꾸는 꿈일 수도 있고 철에 대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 꿈은 악몽과 희망을 포함하는 꿈 입니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아도 집단적으로 비슷한 원형적인 꿈을 꾸기도 하기 때문에 해몽이나 꿈의 의미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보통 영상은 꿈하고 많이 비유되는데, 어두운 곳에서 순서가 뒤바뀐 이미지들을 체험하는 방식이 깨어서 꾸는 일종의 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Q. 군대를 소재로 차기작을 촬영하고 계신 줄로 알고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다음 작업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덜 지루한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전보다 사람이 많이 등장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호기심 때문인지,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풍부해 진 듯 합니다. 결국 작품보다 작품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이 중요한 거니까요. 또한 디지털로 만든게 아닌 만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조형물도 만들어 보고 이것 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다음 작업도 많은 기대가 됩니다. 촬영 잘 진행되길 바라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더 스트림 (THE STREAM_www.thestream.kr)

인터뷰 정리: 김은솔 (더 스트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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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지난 7월 30일에 진행된 한국 비디오 아트 아카이브 더 스트림[THE STREAM]www.thestream.kr 의 스크리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앨리스온이 더 스트림의 컨텐츠를 공유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