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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어스 폽(Julius Popp): 디지털 정보로 구성된 세상에 대한 고찰, <bit.series>

aliceon 2016. 3. 22. 19:48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우리는 배운대로, 상식처럼 ‘원자’를 떠올린다. 우리는 배운대로, 상식처럼 ‘원자’를 떠올립니다. 원자들이 모여 분자를 이루고, 이 분자들이 결합하여 물질이 되며, 이들이 모여 기관이 되고 생명체가, 기체와 액체, 금속이 되어 비로소 우리들에게 유의미해진다. 우리의 신체 자체, 우리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 우리를 감싼 옷과 머무는 집, 우리가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과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신 컴퓨터까지, 이들은 모두 원자라는 기본 단위체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이렇게 물리적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 외에 우리가 또 하나의 세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디지털 세계이다. 이곳은 물질-비물질, 디지털-아날로그, 온라인-오프라인 등 물질세계와의 비교 혹은 대립항으로 인식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 세계의 기본단위는 비트(bit)이다. 하나의 비트는 0과 1의 2가지 값을 가지며 각각 참과 거짓의 상태를 나타낸다. 컴퓨터는 0과 1을 포함하는 비트라는 단위를 가지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웹사이트의 텍스트와 이미지로부터 아이맥스 영화의 동영상을 표현하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온라인 디지털 네트워크 공간을 구성하며, 공장의 생산 로봇에서 항공기 에어버스 A380을 조종하고 있다. 매체미학자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플라톤의 ‘현실은 가상이라는 이데아론’과 데모크리토스(Democritos)의 ‘진정한 실재로서의 원자론’의 예를 들며, 가상과 현실의 차이는 단지 해상도의 차이라고 언급했다. 우리의 세계는 원자의 배열이 우리의 감각에 영향을 주어 만들어 낸 가상이고, 모니터를 통해 보는 디지털 세계 역시 픽셀(pixel)과 그 배열이 만들어 낸 가상이며 이들의 차이는 단지 기본단위의 크기와 집적도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는 즉, 정보의 양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로 구성된 수많은 수치와 데이터들의 배열과 구성이 만들어내는 유의미한 덩어리인 정보는 결국 우리의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한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개념과 컴퓨터의 발달은 우리를 둘러싼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을 데이터(data)화할 수 있게 하였고, 이렇게 다룰 수 있는 데이터와 이를 특정 목적을 위해 수집, 분류, 정리한 정보(information)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바로 ‘정보’이다. 미디어 작가 율리어스 포프(Julius Popp)는 이렇게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정보에 대하여 작품 <비트 시리즈(bit.series)>를 통하여 탐구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 안에서 생성되고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사건과 정보들은 이들을 인식하거나 잡아내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단순한 사실들 또는 이들의 나열, 즉 데이터(data)들이다. 율리어스 포프는 <bit.series>에서 이들 데이터들에 그가 고안한 통계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이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인터넷 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소프트웨어인 봇(bot)은 뉴스 피드(feed)상에서 각 노출 빈도에 따라 추출한 단어들의 집단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유의미하게 가공된 2차 데이터인 정보(information)이다. 


<bit.series>는 그가 진행하고 있는 <bit.series>와 <micro_serise>라는 양대 프로젝트의 한 갈래이다. 최소 단위 ‘비트(bit)’에 의해 구성된 데이터를 특정 목적에 따라 가공한 정보인 ‘단어’는 작가가 고안한 제어 소프트웨어와 액체분출노즐 또는 물리적 운동모듈 등의 설치 구조상에서 물방울과 금속큐브 등의 물리적인 기본단위의 형태와 배열을 통하여 출력된다. <bit.series>의 대표적인 작업인 <bit.fall>은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버젼으로 전시와 설치가 진행되었다. 그 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2015; 율리어스 포프(2015.11.10~2016. 9.24.)>에서 전시중인 <bit.fall.pulse>는 컨테이너가 4단으로 쌓인  구조물로서 거대한 스펙터클의 풍경을 연출했다. 각 컨테이너에서는 순차적으로 천장에 달린 수백개의 노즐로부터 물방울이 연이어 해당 컨테이너의 바닥으로 수직 낙하한다. 이 물방울 하나 하나가 공중에 배열을 이루어 찰나의 순간, 마치 모니터의 픽셀처럼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 낸다. 각 컨테이너 천장에 위치한 조명에 의해 빛나는 물방울들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은 순간이지만 또렷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연이어 쉬지않고 공중에 출력되고 해체되기에 오랫동안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관람자를 압도하는 이 12m의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유의미하게 유동하는 것은 1초도 유지되지 않는 수천개의 물방울의 배열로 구성된 바로 이 단어들이다. 




이 작품을 통해 출력되는 단어는 특정한 통계 규칙 소프트웨어에 의해 추출된 각국의 뉴스 웹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들이다. 이들은 해당 시기에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의 데이터 중 사회를 반영하는 이슈들에 대한 정보들이다. <bit.fall.pulse>는 한국의 중앙일보, 국민일보, 한겨레, 뉴시스, 경향신문 등의 한국 뉴스사이트를 다루며 이를 한국어를 포함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의 총 8개 국어로 출력하고 있다. 율리어스 포프는 고국인 독일이 냉전에 의한 분단시기를 거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함에도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겪으며 정보와 글자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으며, 환경과 인간과의 관계를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물방울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단어의 모습은 오늘날의 정보가 매우 순간적이며, 그 순간이 지난 정보는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의 주요 키워드였던 하나의 단어의 가치와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후 밀려오는 또 다른 키워드들에 의해 사람들의 관심과 중요도가 낮아진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지와 정보에 대한 사회의 관심주기를 주목해왔다. 그는 오늘날의 정보사회에서 언론매체와 대형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거대 시스템들이 ‘선택적’으로 필터링해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모습과, 다량의 정보들의 유입 속도에 밀려 정보를 자각없이 수용하는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bit.fall>이라는 하나의 환경을 만들었다. 


<bit.flow>와 <bit.code> 역시 정보의 의미와 이를 수용하는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이다. <bit.flow>는 규칙없이 배열된 튜브들의 집합과 이들을 통과하는 붉은 물방울, 그리고 물방울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bit.code> 역시 0과 1을 표현하는 바이너리 코드(binary code)를 의미하는 흑과 백의 큐빅이 연결된 벨트의 집합과 이들의 회전을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물방울과 큐빅은 주기적으로 움직이며 어느 특정한 순간에 각 단위체가 위치한 배열을 통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이들을 구성하고 있는 붉은 색 물방울 또는 흑과 백의 바이너리 코드는 좌표와 색, 크기와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특정한 좌표에 위치하며 만들어내는 단어를 구성하기 이전에는 단지 무의미한 시각적인 노이즈일 뿐이다. 두 작품은 어떠한 의도 없이 나열되거나 흩어져 존재하는 데이터는 정보가 아닌 의미없는 파편일 뿐이며, 데이터가 특정한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수집되거나 배열되어 구성되었을 때 비로소 ‘정보’라는 의미를 가진 집합이 될 수 있음을 함께 시사한다. 이 작품들 모두에서 중심에 있는 것은 결국 수많은 정보들을 선택하고 구성하며 해석하는 주체인 인간이다.



bit.flow, 2008



bit.code, 2009


오늘날 수많은 매체와 단체들이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모바일 기기들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도 수많은 데이터들을 만들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노트북, 태블릿, 애플워치나 핏빗과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까지의 이 다양한 기기들은 우리가 검색하고 선택하고 구입하고 움직이는 모든 행동과 과정들을 비롯하여,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만들고 기록한다. 이들은 우리의 행선지, 소비 패턴, 좋아하는 것, 맥박, 이동거리를 심지어 실시간으로 데이터화 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정보 및 윤리철학 교수인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는 가까운 미래의 디지털 정보로 이루어진 전 지구적 환경으로서의 인포스피어(infospher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안에서 우리의 삶은 전적으로 디지털 정보에 의해 형성된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그리고 이 정보를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우리들 자신이다. 크고 작은 여러 포털과 SNS, 블로그 등의 여러 채널을 통해 보여졌듯, 우리는 컴퓨터를 이용해 세계를 0과 1이라는 비트로 분석함과 동시에 종합하여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든 것이 정보가 될 수 있고 이 정보의 양이 우리들의 지각을 넘어설 정도로 방대해진 지금, 이러한 정보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유통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율리어스 폽의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정보의 이중적인 속성과 더불어 이를 다루며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정보에 대한 능동적 플레이어로서 무게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허대찬 aliceon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