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나의 뮤즈, 모두를 위한 디바 /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_exhibition review

yoo8965 2017. 9. 26. 19:10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북서울 미술관 (SeMA)


1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을 본적이 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 화려한 복고풍의 셔츠와 나팔바지, 통굽을 신은 그녀는 차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살짝 뒤로 기대어 긴 다리를 곱게 뻗은, 앳되면서 빛나는 그녀의 웃음에 나는 금방 사랑에 빠졌다. 짙은 스모키 화장 뒤 그녀의 맨 얼굴이, 가려지지 않은 눈빛이 궁금했다. 지난 810, 북서울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전시에 들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생기있다 못해 도발적인 눈빛을 한, 통넓은 나팔바지 입고 금방이라도 사진에서 뛰쳐 나올 것 같은 역동성을 가진 한 여성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시절 내가 보았던 흑백 사진 속의 그녀가 겹쳐졌다.


Figure 1. 김추자 사진

전시장에 진열된 사진 속의 여성은 김추자, 한국 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했던 대중 가수다. 당시 “섹스 심볼” 로 불리웠던 김추자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군사화된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정부는 종종 김추자의 노래를 천박하고 퇴폐적이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김추자 아카이브> 에는 그녀의 사진 외에 앨범, 공연 포스터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한 포스터는 그녀를 “청춘의 상징,” “율동의 슈퍼스타”로 소개한다. 사진 속 김추자는 한 손은 허리에 다른 한 손은 목 뒤에 살포시 올리고 살짝 허리를 틀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웃음 짓고 있다. 로우앵글을 사용해 찍은 포스터 사진은 그녀의 둔부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며 성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무인도> 앨범 표지에서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소리지르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곱슬곱슬하게 부푼 그녀의 검은 머리와 함께 사진은 몽확적이면서도 카타르시스적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을 것 같은 몸, 고양이처럼 묘하게 도전적인 눈빛, 그리고 깨질것 같이 예민하지금방이라도 걸쭉히 만져질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무정부의자적 자유와 저항의 표이 된다. 디바. 런데 이 디바를 만드는가?


Figure 2. <김추자 아카이브>


디오 아카이브에는 김추자의 콘서공연이 틀어있다. 무음의 흑백 상 속 눈에 는 것은 그녀의 추는 몸이다. 허리를 불규칙한 리듬으로 자유들며 발을 구른다. 시하지않고살짝눈을감은채앞옆으움직이는무릎과즉흥로가움직이는 팔은 간 술에 취한 듯한 사위다. 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적인 미소가 아자연스레 떠오르는 미소를 머금고, 적이 아적인,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이다. 타인을 의하지 않는 주체성이 우시된 그녀의 은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관음적 시열을 일으킨.


김추자의 젠더 포퍼스는 디바의 “전복적인 여성성”을 연상시.[각주:1] 그녀의 디오적인 무대 자아, 예측할 율의 움직임과 개성은 주체/타인, /여성, 이성/의 구분을 게 하며 관객과 공연자 자신을 연. 은 자신이 공연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고 신화된 그녀의 기을 마한다. 마치 오래전의 술사가 그하듯, 그녀의 니즘적인 공연은 디바에 대한 미로 송환된다. 무대는 하나의 의이 된다. 그녀의 무대는 기술의 사를 드러나지 않은 아움과, 인함, 해지지 않는 려지지 않는 사들의 이기가 된다.



2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려지지 않는 사들의 이기다. 한 시대를 표방하던 화려한 스로의 김추자는 사서구성 중심의 한국대사에서 소외되고 망각된 소수자를 대한다. 아시아, 동아시아, 미국, 가들이 여한 전시는 전통회화, 미디어 , 록영, 화된 공연, , 사진, 아카이브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역사적로 타자화된 아시아 여성들의 이기를 공유하는 공간을 들고자했다. 가수, 장여장 , 무용수, 술사, 성노동자들의 신에는 식민지적 기억과 서구식 근대화의 폭력인되어있다. 디오 아카이브에서 김추자는 코러스 여성 두명과 노래하고 있다. 다리가 드러나는 는 검은 치마에 부려진 머리, 신나는 양 뒤로 몸을 들며 노래하는 그녀는 20 년대 의를 풍미했던 흑인 무용수 죠세핀 베를 연상한다. 공연을 지보는 한 무리의 미국 군인들은 미로채를 보낸다. 한국의 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여가수를 어 한국적 음악과 저항성을 주체칭송받던 디바는 식민지적 시을 가진 주체에게는 불“이국적”인 아시아 여성의 몸이라는 볼리로 환원된다.[각주:2]


급격산업화와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아시아의 여성 공연자들은 가지 이상의 을 마한다. 여성로서 타자화된 주체, 몸을 는 공연자로서 천시고 대상화되는 신, 그리고 오리엔탈상이 투영된 이국적 객체로서의 아시아인이 그것이다. 이와같이 계급, , 민족, 젠더화된 관은 그녀들의 몸의 가시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화려한 볼리로 만든. 서구대화를 지하는 가부장적 가치관에 순응할때, 오리엔탈상을 채워줄때 이들은 뮤즈가 되었고, 자신의 주체과 욕망을 표방할때에는 소외되었다. 김추자의 전성기를 낸 소주병 테러 주체성을 공적인 자리에 드러내는 여성을 처벌하는 가부장적 시나리오를 대한다.


사회구로 이미 소외된 집단은 그 가시성이 대된다 하여 그들이 가진 목소리와 영향력주체적인 방식으대되는 것이 아.[각주:3] 디바라는 용어는 공적인 자리에 전시된 여성의 술적인 능력의 인정한다는 정적인 기이 있다. 나 동시에 (여성) 디바의 매혹적인 능력은 위한 것로 간되어 왔다.[각주:4] 디바라는 용어가 여성화되어 타자로 위치될때, 그녀의 무대는 연적인 볼리로 미화된다. 디바는 문화적 망각제가 되어 화려함과 매혹이라는 어와 치된다. 인생이 하나의 퍼포스라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와한다. 디바라는 서사구에서 잊혀지는 것은 무대 위 자아가 아 맨 얼굴의 한 여성, 무대 위 모이 아무대 뒤 그녀의 주름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나는 가들이 디바를 통해 본, 그래서 관에게 전해은 진심은 무이었을까 었다. 나는 그 진심이 <김추자 아카이브>에서 본 마네킹과 닮았다 생했다. 무대 위 화려한 재현하듯 짝이는 의상에 다채로운 조명과 품으로 한된 마네킹에서 내가 본 것은 공허함외로이었다. 나는 문그녀들이 정로 자신을 어게 이해했는지는 영원히 알 을 것이라는 생이 들었다. 그들은 뮤즈도 스터도 바라지 않았을지 모른다. 면 디바도 아었을지 모른다.


글의 초반언급된 것은 우리 어머의 사진이다. 어머는 김추자와 같은 시기 국내외에서 저한 가수 무용수로 동하. 삼십대에 어들까지 나는 한도 어머에게 은 시절 해외 공연이나 무대 뒤 에 대해 여어 본 적이 . 면 나는 진기 두려웠는지 모른다. 나는 어머의 맨 얼굴을, 진심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년 전 노래하는 어머의 모을 처음 보게 되었다. 김추자의 “눈이 내리”를 부르는 어머를 보며 나는 울었다. 상처를 감춘 눈미소, 동그와 나이든 작은 몸,



3

인하지부서것 같은 목소리에서 본 것은 한 여성의 이었다. 치열하고 소리만 충저항적이었던, 모두의 디바지금은 잊혀, 나의 디바.



4

디바성은 월성로 정의된다. 객과의 소통이건 예술적인 재능일상의 한는 지군가를 디바로 명명되게한다.[각주:5] 나 디바는 단순히 기술적인 면이나 매력적인 외모로 정의되는 것이 아. 디바는 사의 마음을 움직인다.눈의 마주침으, 스치는 손끝으로 우리는 간혹 너무나 게 사랑에 빠진다. 그녀/그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사은 나의 디바가 된다. 화된 경험은 어리어의 한훌쩍 뛰어설명할 이유도, 진심도, 구하지 않는다. 은 수적이다. 서로가 서로의 눈빛에서 눈빛,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몸에서 몸로 이할때에 기은 전되고 해지지 않아 아있던 상처는 치유수 있다. 주 잠시 서로가 서로가 되는 나의 간에, 은 눈을 마하는 간에, 우리는 우리 모두의 디바가 된다.


글. 오주연 (교수, 샌디에고 주립대학교) 




* 본 리뷰는 영문/한글로 동시에 작성되었습니다.



  1. Rosa Linda Fregoso, “Lupe Velez: Queen of the B's,” From Bananas to Buttocks: The Latina Body in Popular Film and Culture, edited by Myra Mendible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2007), 51-56. [본문으로]
  2. Terri Francis, “Embodied Fictions, Melancholy Migrations: Josephine Baker's Cinematic Celebrity,” Modern Fiction Studies 51.4 (2005), 829. [본문으로]
  3. Peggy Phelan, Unmarked: The Politics of Performance (London: Routledge, 1993). 가시성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If representational visibility is equal to power, then an almost-naked young white woman should be running Western culture” (10). [본문으로]
  4. Claudine Raynaud, “Foil, Fiction, and Phantasm: ‘Josephine Baker’ in Princess Tam Tam.” The Scholar and Feminist Online 6.1-6.2 (2007-2008), 16. [본문으로]
  5. Frances R. Aparicio and Wilson A. Valentín-Escobar. “Memorializing La Lupe and Lavoe: Singing Vulgarity, Transnationalism, and Gender,” Centro Journal 16.2 (2004): 78-10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