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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교육' #1-1 : 변화에 대한 책임 _column

yoo8965 2010. 2. 10. 18:22


뉴미디어를 배울 때, 전통적인 교육방법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뉴미디어를 다루기에 적합한 동시에 이 시대가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새로운 방법(오픈과 공유 등의 실천)으로 이루어질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지난 1년여 동안 교육의 현장에서 실험해 왔던 기록이 있다. 이 이야기는 '교육과 애자일'이라는 제목으로 ibm 디벨로퍼웍스에 기고했던 내용을 개발자가 아니라 미디어아트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재편집하고 보강한 글이며 디벨로퍼웍스 연재 이후의 이야기도 다룰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 보다는 80%에 대한

지금부터 예술,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과학과 기술을 배우고자 시도하는 맥락에서 이를 돕기 위해 고민하는 한 코치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우물을 파다가 언젠가는 지구 반대편으로 나와서 세계를 일통할 만한 20%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더 닮은 80%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미리 밝혀둔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자일에 관한 이야기다.

애자일(agile)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들은 구글에서 '애자일'이라고 검색을 해보기를 권한다. 애자일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읽기 시작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물은 또 왜나왔을까? 공부에 대하여 우물파기와 등산이라는 메타포를 가지고 이야기 해본다. 그리고 뉴미디어와의 관계를 이야기 해보겠다.


어떤 일을 하거나 특히 공부를 하거나 할 때 ‘한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물을 파내려 가면 어떻게 될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주변은 어둡고 습기에 차 있는 힘든 환경이다. 위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주지 않는 이상 우물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보이는 세상은 오로지 파내려 가는 방향의 질척이는 흙바닥과 그 반대 방향의 작은 하늘뿐이다. 춥고 고독하다. 파낸 흙을 받아주는 조력자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등산을 하는 것은 어떠할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희박한 산소에 숨쉬기 어려워지며, 춥고 변화무쌍한 기후에 낭떠러지까지 등등 혹독한 환경인 것은 피차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동료와 함께 하기 쉽고 다양한 등산객과 만날 때 인사 나누며 대화할 수 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봉우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내가 올라갈 곳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고, 그 고지가 어떤 능선, 어떤 산맥에 연결되어 있는지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다. 힘들게 올라갔지만 이 산이 내 산이 아닌가 보다 싶으면, 다음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하고 다시 얼마간의 힘든 여정을 감수하고 내려갔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올라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공부에 대한 비유, 우물을 파는 것 보다는 산을 오르는 것이 요즘 세상에 조금 더 적합하다고 믿는다.

물리학을 공부했던 대학원 시절 스스로의 부족한 공부와 배움의 높은 수준의 난이도에 힘들어했던 시기가 있다. 게다가 같은 계통인 옆 연구실의 동기들이 하는 인접분야의 보다 세밀한 연구주제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을 때 들었던 묘한 생각은 내가 그때 오르고 있던 산의 주변을 둘러 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 때 승승장구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과연 20%쪽의 사람일까? 80%쪽의 사람일까? 이게 다 뭐 하자는 짓일까? 그런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고민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아침에 생각의 힘이 돌아올 때 마다 스멀스멀 등줄기로부터 올라와 어깨와 뒷목에 지긋지긋한 스트레스로 고착되는 것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가능성,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만약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쉽게 앞으로 나아갔던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믿는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어느 정도까지는 비교적 쉽게 나아가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도저히 넘기 힘든 벽(한번 이상 만난 경험이 있던 바로 그 벽이기에 이번에는 일찌감치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을 다시 만나게 되면 또 다른 방향으로 가 보거나, 또는 더 관점을 달리해서 각각의 도달했던 지점들을 노드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연결성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 과정이 고되긴 하지만 동지와 친구들과 함께 조금 더 행복하게 펼쳐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약간 다른 접근을 해본다.


미디어아트는 필연적으로 간학문적 접근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우물을 팔 때도 있지만, 등산을 해야할 때도 있다. 산등성이에서 내려와서 다시 다른 봉우리를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그 때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사건의 발단

이공계 배경을 가지고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을 하다보니 간혹 예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칠 기회가 있다. 이때 주로 다루는 것은 Processing이라고 불리우는 Java기반의 쉽고 강력한 오픈소스 창작도구이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이미 아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배우기 쉽다는 것이지,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예술/디자인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낮춰진 문턱이라 할지라도 아직 상대적으로 높은 문턱일 수 있다. 반대로 Processing의 프로그래밍 언어적 측면을 쉽게 숙지할 수 있는 이공계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창작의 도구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동기가 부족한 경우가 있으며 코드를 가지고 상호작용을 통해 미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문턱이 되는 것이 Computer Graphics라는 장르가 수학과 물리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한 30여명 대상의 입문 강좌는 끝날 무렵에는 출석이 확연히 줄어드는 경우가 있고 설상가상으로 그 안에서도 3명 정도만이 교육과정을 따라오고 이해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강의는 짧은 기간 안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압축적인 지식의 전달이 주를 이루는 강의고, 참여자들 각각과 민감하게 상호작용하지 못했으며, 당시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실망했고 2년여 동안 강의 기회를 고사해왔다. 그러다가 유치원에서 애자일 접근을 시도했던 경험으로 부터 애자일과 교육에 대한 몇가지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어가던 2009년도 초에 한 대학의 교학처장으로부터 강의제안을 받게 되었다. 마침 이 K디자인예술대학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던 시점이었고 이를 실험하기 위한 파일럿 강의를 개설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한 학기 강의를 할만큼의 개인적인 여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초의 4주를 블록강의로 맡기로 했고, 애자일로 부터 영감을 얻는 것을 바탕으로한 교육적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결국 이 강좌는 1학기에 처음 4주로 기획되었던 것이 학생들의 요청으로 6주로 연장되고, 학생들의 반응에 고무된 학교측이 2학기의 16차시 한 학기 강좌로 만들어 주기를 제안했다. 아마도 최초의 에너지를 발생시킨 것은 2주차에 진행되었던 짧은 회고로 부터 시작 되었던 것 같다. 기록된 내용 그 자체로는 충분한 정보 또는 신호가 발견되지 않는 듯한 이 회고를 읽고 느낀바가 있었다. 원래 준비했던 교육과정 보다 더 쉽고 충실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짧은 시간 동안 간략히 이루어졌던 이 회고가 없었다면 어쩌면 이 후의 펼쳐짐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이 강좌는 2010학년도에 6명의 코치가 6개의 반을 유사한 커리큘럼으로 맡는 더 큰 규모로 확장되고 보다 개선되어 3월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후의 연재에서 이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도약의 기회가 되었던 '셋이서 하는 스크래치 워크숍'

2차시의 회고를 바탕으로 고민한 후에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진행했던 3차시의 워크숍이 도약의 기회가 되었다. 이 워크숍을 고안하는데 영향을 준 요소들을 키워드로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탐험(exploration), 이터레이션(iteration), 페어프로그래밍(pair-programming), 기록(documentation), 자각(awareness), 회고(retrospectives), 시간관리(time-boxing)의 일곱가지이다.


워크숍에서 다루었던 스크래치는 '창의적 생각을 돕는 도구에 대한 디자인 원칙'에서 소개된 것처럼 '탐험'을 하는 과정에서 그 기능을 사용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창작도구이다. MIT Medialab의 평생유치원(Life Long Kindergarten)그룹에서 Squeak Smalltalk 기반으로 구현하였으며 Visual Programming Language로 분류되고 현재 다양한 교육에 관한 맥락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온라인 협력을 통해서 학습을 촉진하는 분산 구성주의(Distributed Constructionism)에 대한 개념이 녹아 들어 있기도 하다. 스크래치는 비단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누구에게라도 쉽고 흥미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협업을 하는 환경에서 이터레이션을 거쳐가며 확실히 조금씩이라도 개선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을 짧은시간 안에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셋'이 가지는 의미는 몇 가지가 있다. 평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점의 개수는 3이다. 면은 세명의 이해관계자가 가지는 공유된 공간이며 동시에 매체이다. 3체 문제(Three-Body Problem)와 같이 복잡한 상호작용이 시작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며, 때때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쉽고 두 의견이 대립할 때 조정자가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서로의 관계에 대한 관찰이 일어나기 쉬운 단위이며 삼각측량과 같이 어떤 현상을 더 잘 관측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셋이서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유효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 에너지를 더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현재도 계속 실험해보고 고민해보고 있다.


이후 소개하는 '셋이서 하는 스크래치 워크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침서를 공유하고 있으니 생경한 용어나 방식에 대해서 더 알고자 하는 독자는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워크숍은 스크래치에 대한 짧은 시연으로 시작한다. 이 짧은 시연 이외에 자세한 튜토리얼이나 강의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최소 간섭). 그리고 바로 간단한 인덱스 카드를 사용한 이너게임(Inner Game)으로 참여자가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앞서 소개한 지침서를 참고). 첫번째 이터레이션으로 15분의 탐험과 5분의 회고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참여자가 가지게 될 3가지 역할인 Driver, Navigator, Documenter에 대해서 설명한 뒤 바로 첫번째 이터레이션을 시작한다.


Driver와 Navigator는 페어프로그래밍에서 소개되는 것과 같은 역할이다. 여기에 두 명의 활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록자(Documenter)가 추가 되어 탐험을 하면서 그 팀이 어떤 것을 스스로 배워나가고 이 후에 개선하면 좋을 내용들을 기록해 나간다. 이 후 5분간의 회고의 시간에는 기록자가 주도적이 되어 탐험의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을 공유하며 팀이 반영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이는 자연스럽게 토론과 다음 이터레이션의 전략과 계획을 세우는 대화로 이어진다. 현재까지의 작업을 저장하고 현재 상태에서의 이너게임을  한뒤 기록자 역할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바로 두번째 이터레이션으로 넘어간다.
이 때 탐험적 테스팅(Exploratory Testing)에서 사용하는 다음의 4가지 질문을 기록자가 해가면서 두 번째 이터레이션을 진행할 것을 권장한다.

• WAW : Where Are We?
• WHW : What Happens When?
• WLL : Watch, Learn and Leverage
• WC : Wise Choice


여기서는 특히 두번 째 질문인 WHW, 가설을 세우고 그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15분의 탐험을 한 뒤 이너게임을 한다. 그리고 5분의 회고를 할 때 이너게임의 점수가 높은 사람은 왜 높은지를 알아보고 낮은 사람은 왜 낮은지 역시 알아보며 낮은 사람이 한 단계 더 높아지도록 하려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이터레이션으로 넘어간다.


세 번째 이터레이션에서 기록자는 기록뿐만이 아니라 꽃밭의 꿀벌과 같은 역할을 더 맡는다. 다른 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이디어와 배움을 우리 팀에 전파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금 더 긴 탐험의 시간(25분)을 가진 다음 마지막 이너게임과 회고를 한 뒤, 워크숍 자체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마친다.

협력을 통해 참여자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학생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줬고, 이 후 이 워크숍은 여러번 실험되며 그 과정 자체를 더욱 개선해 오고 있다. 또한, 위에 소개한 방식은 K디자인예술대학에서 시도되었던 최초의 것이 아니라 개선된 현재의 상태를 축약하여 설명한 것이다. K디자인예술대학에서 수업으로써 진행되었던 내용과 회고의 기록은 다음의 사진들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반응들을 알게되고 간략한 기록으로나마 남겨 재방문 하는 과정이 애자일에서 영감을 얻어서 실천해 보는 접근에 대한 확신을 주었고, 그 다음을 도전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경험에 대해서는 ScratchEd(스크래치와 교육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는)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의 인터뷰로 소개가 되기도 했다.




reference :



2009학년도 2학기를 위해 계획한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9-2학기 아트프로그래밍 교육과정

현재 이 교육과정은 기민하게 개정이 되어 진행이 되고 있다. 실제 일어난 교육과정은 다음 연재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의 바탕이 된 기록이 있다. 그간의 과정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 알림 : 본 글은 미디어아티스트인 최승준 작가의 <'뉴미디어와 교육' #1 : 변화에 대한 책임> 글을 앨리스온 편집분량에 맞추어 2 부분으로 구성하였음을 공지하는 바입니다. 다음 원고 ('뉴미디어와 교육' #1-2 : 변화에 대한 책임)는 15일 후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뉴미디어와 교육' #2 예고

다음은 '아트센터 나비'에서 진행되었던 '셋이서 하는 미디어아트'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다.




글. 최승준 (미디어아티스트)

최승준은 단순한 원리로 부터 창발할 수 있는 복잡한 현상에 관심을 갖고 이와 같은 일이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뉴미디어를 통해 들어내고자 한다. 또한, 쉽고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고안하여 누구라도 쉽게 작품의 맥락을 형성하는데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여기에 작가 자신이 미디어로써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며 없는 것(0)과 있는 것(1) 사이의 어슴푸레하고 흥미진진한 구역에서 자유롭게 사유하고 실천하기를 즐겨하고 있다.

미디어아트가 가지는 잠재능력이 다양한 교육의 층위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조형, 디자인, 음악, 문학, , 무용 등의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함께 배워가는 한편, 컴퓨터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과학적인 소재들을 예술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을 병행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토대로 지식, 마음, 문화와 관계 맺고 이를 함께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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