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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Art : 소통, 진화의 키워드 _column

yoo8965 2012. 4. 5. 19:11

소통, 진화의 키워드


창조적인 예술은 작가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감상자가 작품의 내적인 가치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비로소 예술은 세상과 소통 할 수 있게 된다.

- 마르셀 뒤샹


0. 예술, 소통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이후 현대 예술에서 작가의 의도와 아이디어는 작품의 표현 방식만큼이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작가들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거나 혹은 감추기 위하여 다양한 소통 방식을 차용한다. 삶에 있어서 소통은 가장 일상적인 주제이며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다.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소통을 위하여 사람들은 언어에 사회적 약속 의미인 랑그Langue를 부여하고 이러한 규칙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러나 또한 개인은 말을 하고 글을 쓰는데 있어서 사회적 약속을 넘어 서서 자신만의 언어인 파롤Parole을 생성하고 상상한다.[각주:1] ‘사과’의 사회적 의미는(랑그)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의 식물인 사과나무의 열매이지만 백설공주의 언어(파롤)에서 ‘사과’는 독이 든 무기이며 새어머니의 미움을 상징한다. 반면 애플Apple 마니아에게 ‘사과’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창조와 혁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백설공주와 애플 마니아가 사과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 당연히 두 사람의 대화는 어긋날 것이다.[각주:2] 이같이 소통이 갖고 있는 복합적 특징은 현대 예술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현대 예술이 진행하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1. 참여, 과정

예술가의 의도는 종종 관람객에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히거나 오해되기 쉽다. 완전한 작품으로 형상화 된 후, 작품은 작품 자체의 표현방식이나, 작가의 노트, 미술사가의 글 등을 통하여 다시 해석되고 그 과정에서 실재와 예술의 간극은 더욱 멀어진다. 현대 예술에서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시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간극에서 기인한다. 예술 작업 안에 실제의 삶이 들어오기를 원했던 앨런 캐프로우Allan Kaprow는 해프닝을 통하여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이 작업에 드러나기를 원했다.[각주:3] 이를 위하여 작가는 존 케이지John Cage와 함께 참여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 작업을 시작한다. 1959년 초연되었던 전설적인 해프닝 작업인 <18 Happenings in 6 Parts>는 6개로 나뉘어진 공간에서 초대된 관람객들이 움직임을 시작함으로써 완성된다. 그의 해프닝에 등장하는 여러 장치들은 내적인 세계와 관람자들이 존재하는 바깥의 세상을 연결하기 위한 도구이다. 페인팅이 걸려있거나 스피커가 틀어지고 의자가 놓여진 각각의 방 안에서 참여자들은 주어진 환경을 경험하고 그 공간을 감상한다. 악보와 같은 설치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참여자들이 악보에 맞추어 반응을 보이면, 작가는 이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종합하여 안무를 완성한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빛의 반짝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그리고 중간 중간 삽입된 슬라이드와 필름 등은 작가의 초기 의도인 설치 작업과 이를 해석하는 관람자의 경험이 어우러져 해프닝을 완성시키는 요소이다.       

Allan Kaprow, <18 Happenings in 6 Parts>, 1959

2. 설치, 환경

관람자들이 참여하는 과정이 작가의 아이디어 전달과 작품의 총체적 감상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면서 이후의 현대 미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 된다. 특히 감상자의 참여는 움직임을 통한 실질적인 개입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를 경험하는 방식으로도 진화한다. 설치Installation는 장소성과 새로운 전시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형영역의 확장에 따른 현대미술의 한 표현양식으로 현대미술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설치에서 중요한 요소는 덩어리나 재료가 아닌 공간이다. 그 공간은 놓여진 장소와 인간을 포함하고 주변환경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의식과 개념을 형성한다.[각주:4]

Carl Andre, <Altstadt Rectangles>, 1967


칼 안드레Carl Andre의 <구도심 사각형Altstadt Rectangles>(1967)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50cm인 열간압연강Hot-Rolled Steel 100장을 갤러리 바닥에 가지런히 배열해 놓음으로써 갤러리 공간과 작품의 구분을 무색케 한 작품이다. 캔버스 틀 안의 작업을 감상하는 대신 관람자들이 총체적인 환경 속에서 작품을 밟고 서서 경험함으로써 일상과 예술은 완전한 매치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소통 과정은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하다.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짚어나가면서 20세기 조각이 형태Form에서 구조Structure, 구조에서 장소Place로 변화하였다고 하였다.[각주:5]


3. 진화의 방향, 소셜 미디어 아트 

이후 기술의 발달은 현대 예술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 감상자와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단어가 ‘소셜 미디어 아트Social Media Art’이다. 예술이라는 단어와 그만큼이나 모호한 단어인 소셜 미디어가 합성되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소통을 향한 예술의 진화는 그 어느 때보다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시각예술이 이전과 다른 우월한 아우라를 가지고 우위를 점하면서 당대를 사로잡는 모든 도구들을 시각예술에 도입하고 있다. 미술 평론가 벤 데이비스Ben Davis는 예술과 소셜 미디어를 각각 다음과 같이 정의 하였다. 예술은 통상적으로 특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특정한 방향의 표현방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과 유통되는 경로 또한 특수하다. 반면 소셜 미디어는 정 반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 플랫폼이며 모든 경로로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예술과 소셜 미디어의 만남은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필드와 서로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필드의 만남이다. 두 가지 다른 속성의 만남이 불러일으키는 긴장은 여러 의문점과 불일치를 대립항을 낳는다.[각주:6]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 아트는 인터넷이 시작된 초기부터 꾸준하게 소통방식의 제기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3-1. 진화의 방향_참여, 과정 

<http://wwwwwwwww.jodi.org>의 스크린샷

초기 넷아트 작가들의 작업인 <http://wwwwwwwww.jodi.org>(1995)와 <Chat Circles>(1999) 등은 프로토-텀블러Proto-Tumblr 타입의 허브이다. 참여자들이 진행한 인터넷 서핑의 과정이 축적되어 자료로 남는다. 작가가 디자인한 환경에서 반응을 이끌어내었던 앨런 캐프로우의 작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넷 아트 감상자들의 참여는 보다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며, 더 나아가 참가자들의 협동을 통해 작업의 결과물이 전혀 달라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참여를 통해 작가의 의도가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 될 뿐만 아니라 작업을 대하는 감상자의 생각 또한 쌍방향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예술을 완성하는 과정의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상자의 참여를 보다 더 용이하고 효과적으로 만들고 있다.   


3-2. 진화의 방향_설치, 환경


Cao Fei, <RMB City>, 2008

소셜 미디어 아트의 외연은 인터넷의 상용화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더욱 넓어진다. 2004년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는 페이스북Facebook을 만들어서 상용화하기 시작하고, 아이튠즈itunes는 아이팟ipod을 만들어 윈도우 플랫폼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구글Google의 지메일Gmail 시스템이 자리잡고 강력한 포터블 컴퓨터(랩탑이 아닌)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2008년 뭄바이 테러Mumbai Terror를 통해 트위터Twitter는 구호와 뉴스 전달의 주요 매개체로 떠올랐으며 페이스 북 사용자 수는 1억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수치는 온라인 네트워킹을 통해 연결된 전 세계 인구가 예술의 잠재적 감상자로 등장함을 의미한다. 특히 강력한 시각적 효과와 네트워킹이 결합한 게임 분야에서의 활용은 설치 미술의 총체적 경험만큼이나 압도적인 참여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차오 페이Cao Fei의 <RMB City>(2008)는 작가의 아이디어에 참여자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더하여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친밀하면서도 동시에 허황된 협업을 시도하였다.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의 뛰어난 그래픽 기술로 만들어진 도시는 실재의 세상을 방불케 하며, 실제로 참여자들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직접 작품 속에 투사하였다. 이 작업은 개혁 개방 노선을 취하면서 급속히 성장하고 변화하는 중국의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조 드라페Joe DeLappe는 아메리카스 아미America’s Army라는 게임을 통해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 in Iraq>(2006)을 만들었다. 전쟁터를 배경으로 미국 군대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전쟁 수행 게임 속에서 작가는 무기를 내려놓고 이라크 전쟁 동안에 죽어간 군인들의 이름을 채팅창에 넣는다. 가상의 전쟁을 경험하기 위해서 게임에 접속한 사람들은 전쟁에 동참하는 군인이자 동시에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가 된다. 이들은 채팅을 통해 작가의 작업에 직접적인 반응을 하거나 함께 동참하게 된다.[각주:7] 칼 안드레의 작업이 갤러리 바닥에 적응하여 감상자의 일상에 녹아 들었듯, 잘 짜여진 가상의 환경은 잠재적 감상자들이 작가와 함께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하고 있다. 


4. 예술, 소통의 가능성

소셜 미디어 아트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감상자와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던 부분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작업의 과정이 보이고 작업 과정 중에 감상자들과 작가의 상호 합의 혹은 우연을 통해 작품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여’라는 퍼포먼스 아트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수백 만 명의 네트워킹이 되는 공간에 작품을 띄움으로써 이를 통하여 사회의 구성원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공공 미술로써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재의 삶과 점점 유사해지는 온라인 환경을 이용함으로써 감상자의 총체적 경험과 맞닿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한다. 다른 이의 말을 들으며 스스로를 몰입시켜 상상하고,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항상 그러하듯이 소통은 결코 쉽지 않다. 부모와 자식간에, 연인과 연인 사이에 혹은 사회와 개인간에도 오해와 불이해는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시스템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예술이 끊임없이 소통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 불가능의 미션이 갖고 있는 끝없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글. 이수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본 컬럼은 지난 3월 9일 개최되었던 사비나미술관 주최/경향아티클이 주관했던 <소셜아트, 예술 소통방식의 진화를 논하다> 세미나의 발제문을 주최측과 발표자의 동의하에 개제한 것입니다. 

http://www.savinamuseum.com/board/board_notice_view.php?idx=4088

사비나미술관 <Social Art@예술, 소통방식의 변화>展

http://www.savinamuseum.com/exh/exh_current.php



  1. F. de Saussure, ed. Tulio de Mauro,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Payot, 1974, p.419. [본문으로]
  2. 『뮤지움 링크_소통의 기술』, 국립현대미술관, 2010, p.12. [본문으로]
  3. Eva Meyer-Hermann, Andrew Perchuk, Stephanie Rosenthal, Allan Kaprow_Art As Life, Thames & Hudson, 2008, p. 61. [본문으로]
  4. Claire Bishop, Installation Art, Tate, 2005, p.23. [본문으로]
  5. Anne Rorimer, New Art in the 60s and 70s: Redefining Reality, Thames and Hudson, 2001, p.56. [본문으로]
  6. Ben Davis, Social Medial Art in the Expanded Field, artnet http://www.artnet.com/magazineus/reviews/davis/art-and-social-media8-4-10.asp [본문으로]
  7. An Xiao, Always Social: Right Now (2010 — ), Part Three, hyperallergic http://hyperallergic.com/6648/social-media-art-pt-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