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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개인전: walk_2011.5.4~6.3_사비나미술관

김승영 작가는 물질적 매체로 심리적 공간을 형성하는 작품을 한다. 특정한 물질적 매체에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이라든가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찰나의 감각적 느낌 등을 부여하여 그 매체와 공간을 미묘하게 살아움직이게 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무척이나 예민하다. 물론 모든 예술작품은 그럴 수밖에 없지만, 특히 그의 작품은 공간과의 관계성 때문인지, 작가 특유의 섬세함 때문인지, 그 예민함이 통감각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색의 느낌, 소리의 균형 등 공간과 오브제의 시각적 밸런스를 1mm의 오차도 허용치 않도록 감각적으로 조율하여 맞춘다. 작품을 보고 있으니, 그가 오차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 그 노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에서도 그간의 작품 맥락과 특유의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미술관 입구를 들어서기 몇 발자국 전부터 그 모습을 바라보니, 벌써 짐작이 되었다. 입구의 유리벽은 노란 빛으로 코팅되어 있었는데, 이는 외부의 공간과 차단하기 위한 하나의 기호로서, 김승영의 공간영역이 형성되고 있음을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Walk”이다. 걷는다는 행위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 인간의 활동이다.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자동차 등의 탈것을 이용한다거나, 그것이 제한되었을 때에는 달리기를 할 것이다. 물론 운동의 목적으로 달리기를 할 수도 있지만, 걷기라는 행위는 근육의 움직임에 중심을 둔 운동이라기 보다는 장소를 천천히 이동함에 따라 시각이 주변의 공간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백을 부여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즉 걷는다는 것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행위이고, 그 경험은 시각적 관찰과 사유를 동반하는 시간적 여유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걷기는 김승영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김승영 작품은 공간 속에서 관계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고, 그 속에서 진지하게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가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시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에 따라 전개되고 있었다. 일상의 오브제를 중심으로 펼쳐진 주관적인 기억과 시간, 그리고 작가 자신을 둘러싼 관계성에 대한 접근,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까지 다양한 시선이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녹여내고 있었다.

의자. 오브제, 물, 전기장치. 2011

주관적인 기억과 시간> 그의 작품은 삶에서 건져올린 일상의 오브제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리 주변의 어디에선가 보았던 물건들이다. 어디선가 살아숨쉬었던 오브제들은 나름의 역사와 함께 작가가 부여한 주관적 느낌, 그리고 미술관의 공간과 관계하여 기존의 의미에 덧붙여진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하에 전시되고 있는 <의자>는 작가의 어머니께서 한때 사용하신 것으로, 물을 데우는 장치로 인해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37도를 유지해주어, 추운 겨울날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 주홍색 의자이다. 따듯함을 머금고 있는 철제 주홍색 의자는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장치이자,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을 느낄 수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관계성에 대한 접근> 인간의 자아는 수많은 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타자의 시선에 의해 자아가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드러나고 있고, 또 구축되었음을 보여준다. 한지 위에 그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중첩되어 프린트된 작품과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마치 영화의 크레딧처럼 차례로 올라가는 영상작품으로 형상화되었다.

구름. Video Installation, 가변크기, 2011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사색>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그 속에서 사색하고, 함께 숨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미술관 2층에 전시된 <구름> 작품은 파랗고 둥근 방에 한 자락의 구름이 둥실 떠있다. 그리고 바닥에 뿌려져 있는 물의 흔적에서 구름의 그림자까지 느낄 수 있으며, 바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장치이지만, 자연을 인공적인 환경에서 감각을 극대화하여 느끼기 위해 만든 스펙터클한 장치보다는 가장 본질적인 장치들만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우리가 무엇을 ‘자연’으로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자아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자연스러운 호흡과 함께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을 작가는 만들어내고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작가는 몇 년전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레지던스로 몇 개월간 머무를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발견한 장면들을 영상으로 기록하였다. 문득 그 도시의 한켠에서 발견한 도로 경계선 위에 죽어있는 비둘기와 무너진 벽돌담 사이를 뚫고 자라나는 새싹,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대형광고판의 움직임과 소리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과 물질문명이 한데 뒤엉켜 묘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음을 작가가 포착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무심한 풍경들은 지금, 현재 우리의 사고에서 생명이란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한다.

Tower. 스피커, 오디오 인터페이스, 앰프, 컴퓨터. 2009-2011


이와 같은 다양한 맥락들이 중첩되어 있는 작품은 <Tower> 이다. 버려진 기성품들인 스피커를 쌓아올려 7m의 높이의 탑 형태를 만들어 이를 바람, 새소리 등의 자연의 소리를 8채널의 사운드로 효과를 낸다. 이는 소리를 통해 죽어있던 사물들에 생명성을 부여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존재했던 나와 사물에 대한 관계를 복원할 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물들의 집합적 구축을 통해 소통의 흐트러짐의 근원적 원인이었던 바벨탑의 은유까지 떠올리게 해준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해서, 인간의 자아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비록 물질문명 속에, 그리고 기술문명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그 물질들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우리와 관계를 맺으며 그 시간 속에서는 생명을 가진 또 하나의 개체로서 그 공간을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김승영의 작품 사이를 걸어다니며, 또 그 공간 속을 산책하며 우리와 맺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개체들과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유에서 일상의 사물들을 건져올려 전시장에 내놓았을 것이다. 이 오브제들을 하나의 메타포로 사유의 폭을 확장하고, 내적으로 침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가진 김승영식 미술이 가진 힘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스펙터클로 무장된 우리 시대의 미술에 또 한 번의 물음표를 던지고 조금 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동시대 미술의 역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그의 작품을 거닐며 가질 수 있었다.

글. 우선미(예술학, 前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

* 본 리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사비나미술관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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