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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레트로 마니아' _book review

yoo8965 2015. 4. 30. 03:27


『레트로 마니아』는 대중음악에서 유행하는 ‘복고’ 열풍에서 시작한다. 1970년대에는 포스트 펑크가 있었고, 1980년대에는 힙합과 디스코, 그리고 1990년대에는 뉴레이브와 브릿 팝이 있었다. 『레트로 마니아』의 저자 사이먼 레이놀즈는 2000년대 이후의 팝 문화의 맥박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현재의 팝은 아카이브에 저장된 기억을 착취하는 ‘레트로 록’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팝이 향하고 있는 노스탤지어는 수많은 ‘레트로 마니아’들이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레트로는 예술에서 과거의 전통을 인용해 의식적으로 재해석하려는 긍정적 의미와는 다소 다르다. 그가 말한 바로는 현재의 레트로 문화는 학문적이고 순수한 접근이 아니라, 아이러니를 통해 재미와 매혹을 찾는데 있다. 다시 말해, ‘레트로는 재활용과 재조합을 통해 하위문화 자본, 힙한 스타일을 추출할 자료실로서 과거를 이용한다.’ 비주류 문화를 즐기는 중산층의 젊은이를 일컫는 말인 ‘힙스터hipster’와 레트로 문화는 쉽게 연결된다. 애초에 힙스터라는 단어 자체가 1940년대의 재즈문화에서 나온 말이었고, 지금의 힙스터 역시 ‘피치포크 미디어(Pitchfork Media)’와 같은 인디음악 웹진이나 음악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쿨한 아카이브를 뽐내고 있다.

흔 히 레트로 문화라고 하면 「나는 가수다」, 「K팝 스타」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유재하나 김현철과 같은 뻔 한 레퍼토리나 원더걸스의 'Tell Me'와 같은 유사 레트로 음악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트로 문화는 훨씬 광범위한 문화 영역에 걸쳐있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의 바랜 듯한 느낌의 빈티지 카메라 필터, SNS 사이트 텀블러(Tumblr)에서 유행했던 시펑크 스타일과 어설픈 3D 그래픽이미지로 만들어진 '베이퍼 웨이브Vaporwave', 패미컴 시대의 도트 그래픽으로 만들어지는 인디게임들 까지 레트로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문화에 흡수되었고, 레트로 문화는 힙스터 문화에 빼먹을 수 없는 소재가 되었다(물론 그들은 이를 부정할 것이다, 그들은 비주류임을 자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이놀즈에 의하면 레트로 문화의 다양한 아카이브들은 유튜브와 아이폰과 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기록 과잉에서 비롯한다. 텍스트, 사운드, 영상과 같은 데이터들은 Divx이나 MP3와 같은 뛰어난 압축기술 덕분에 저장 공간을 걱정할 필요 없이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레트로 마니아』는 이런 레트로 문화의 기저에 압축된 MP3를 통해 아무런 공간의 제약 없이 ‘끝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냅스터나 토렌트를 통해 MP3는 너무 간편하게 취득 가능하고, 좋아하는 노래만을 재생할 수 있으며, TV리모컨의 채널을 돌리는 행위인 ‘재핑zapping’처럼 간편하게 음악을 섞어서shuffle 들을 수도 있다. 그는 이런 MP3의 정신분산적인 셔플 문화처럼 한 공간의 있는 가족들이 각자 휴대폰과 노트북을 통해 문자를 주고받고, 웹서핑하는 것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지루함은 무료함이 아니다. 그는 수없는 텔레비전 채널들, 넷플릭스(Netflix), 보지 않은 DVD와 책들, 유튜브의 끊임없는 아카이브에 대한 반응은 굶주림이 아니다. 지나치게 풍족하기에 관심과 시간을 요구하는 과잉에 대한, 문화적 식용 상실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레 이놀즈는 팝 음악을 중심으로 레트로 문화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러나 『레트로 마니아』는 단지 음악이 소비되는 방식만이 아니라, 아이튠즈(Itunes)와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 라이브러리부터 빈티지 인테리어와 비비언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까지 인용한다. 그리고 팝 음악이 날카로운 저항이나 예술이 아니라, 패션처럼 단순한 페스티시pastiche에 그치는 것을 비판한다. 무수한 음악인 이름과 전문용어를 보고 『레트로 마니아』를 음악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레이놀즈는 『레트로 마니아』를 통해서 팝 문화가 과거의 음악을 착취하는 과정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트로 마니아』의 팝 음악은 영화, 게임, 드라마와 같은 어떤 종류의 대중문화로 대체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네트워크에 항상 접속해 있는 ‘발광성’의 신경강박에 의해 가능해졌다. 이제 누구나 위키피디아나 유튜브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현재의 파리로부터 1920년대의 파리에 도착한 길(오웬 윌슨)처럼 이제 네티즌은 대중문화가 ‘힙’했던 시기만을 취사선택하고 배치할 수 있다. 누군가 텀블러에 전시해 놓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Blow up>의 GIF 형식의 움직이는 이미지와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스포티파이(spotify,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링크 사이에서 어떤 맥락을 찾는 것은 더는 불가능하다. 트위터의 리트윗이나 텀블러의 리블로그를 통해 누군가의 빈약한 취향은 끊임없이 복제된다. 평론가 서동진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인용하며 단지 ‘좋아요’로 대변되는 취향 없는 취향의 시대를 비판한다. “취향의 다원주의는 윤리적으로 허무한 세계를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거부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 앞에서 불화를 피하기 위해 뒷걸음친다. 그리고 '개취'란 이름으로 자신의 윤리적 비겁함을 숨긴다.”



글. 이종완 [앨리스온 수습에디터]




저자소개 :사이먼 레이놀즈


저자 사이먼 레이놀즈는 런던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음악 평론가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80 년대 중반 영국의 주요 음악 잡지 『멜로디 메이커』에 기고하며 저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뉴욕 타임스』, 『빌리지 보이스』, 『스핀』, 『 롤링 스톤』, 『 아트포럼』 등에 기고하며 포스트 펑크와 전자 댄스음악 등 진보적인 음악 형식을 다루는 글을 주로 썼다. 주요 저서로 『찢어버려, 그리고 다시 시작해: 포스트 펑크, 1978~1984』(RIP IT UP AND START AGAIN: POSTPUNK 1978?1984), 『에너지 플래시: 레이브 음악과 댄스 문화 여행』(ENERGY FLASH: A JOURNEY THROUGH RAVE MUSIC AND DANCE CULTURE), 『 황홀감: 록의 환희』(BLISSED OUT: THE RAPTURES OF ROCK) 등이 있다.



역자 : 최성민


역자 최성민은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와 미국 예일 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최슬기와 함께 ‘슬기와 민’이라는 디자인 듀오로 활동하는 한편, 번역과 저술과 편집 활동을 병행해왔다. 옮긴 책으로 『 현대 타이포그래피』(로빈 킨로스 지음, 2009), 『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노먼 포터 지음, 2008), 써낸 책으로 『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최슬기 공저, 2008) 등이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편집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친다.



부록 저자 : 함영준

커 먼센터 디렉터이자 『도미노』 동인이다. 2011년 여름부터 2013년 여름까지 음악 공연장 ‘로라이즈’를 열고 70회 정도의 공연을 공동으로 기획했다. 2011년 말에는 비정기 문화잡지 『 도미노』의 동인으로 참여, 2014년 여름까지 총 5권을 함께 발간했다. 2013년 가을에는 미술공간 커먼센터를 개관하고 현재까지 6회의 전시와 퍼포먼스를 개최했다. 대학에서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다양한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