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흑백사진아래 켜켜이 쌓인 그의 자취 <백남준 in Wuppertal>展_exhibition review

비회원 2007. 4. 15. 08:53



* 본 전시 리뷰는 케이블TV-ch.ART의 [앨리스온TV]와 연동됩니다.
 

백남준. 세계적인 아티스트,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미디어 아트의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그의 업적들과 기담들. 예술분야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 정도로 그는 한 분야의 거인이다. 그의 사후, 그의 작업세계와 발걸음을 되짚어보며, 정리하는 전시들이 이어져왔다. 이번 전시 또한 백남준이라는 거성의 자취를 밟아보고, 미술사에 있어 그의 위치를 되새겨보는 그러한 전시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세계 중 초기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시의 제목에 등장하는 ‘부퍼탈Wuppertal’은 독일 서부에 위치한 인구 37만명의 작은 도시의 이름이다. 1936년 3월 11일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아트의 출발을 알린 <음악 전시회 - 전자 텔레비젼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전이 바로 이 곳에서 열렸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음악전시회>전을 중심으로 백남준의 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 작품의 대명사인 다수의 텔레비전에서 펼쳐지는 가지각색 색상들의 다채로운 변형과 움직임의 모습들을 볼 수는 없다. 그의 그런 작품들이 나오기 이전의, 토대가 된 여러 실험들과 생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다져지는 시기를 볼 수 있는 그러한 전시인 것이다.





전시는 크게 <제시부 - 발전부 - 재현부>라는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시부에서는 부퍼탈에서의 첫 개인전 이전의 그의 활동-퍼포먼스와 공연-에 대한 기록이며, 발전부는 부퍼탈 전시 자체와 부퍼탈과 관련된 여러 흔적들이 제시되며,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회고하는 영상물로 끝을 맺는다.
제시부에서는 1959년 독일 쾰른 아헨가의 작가 작업실에서 행한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Hommage à John Cage>, 1962년 6월 16일 독일 뒤셀도르프의 캄머슈필레에서 열린 <음악의 네오다다Neo-Dada in der Music>, 1963년 2월 2일과 3일에 걸쳐 독일 뒤셀도르프 시립미술아카데미에서 플럭서스 멤버들과 함께 공연했던 <페스툼 플룩소룸 플럭서스 : 음악과 반음악 - 악기 극장Festum Fluxorum>, 이 세 퍼포먼스들의 모습과 채취들이 조용히 나열된다.
특히 만프레드 레베(Manfred Leve 독일, 1936년 생)라는 인물의 존재가 전시구성에 있어서 부각된다. 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남준과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 사진인데 그 사진의 대부분을 촬영한 것이 바로 그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플럭서스 운동과 관련해서 일어난 퍼포먼스 등을 관찰자의 입장, 관객의 입장에서 사진을 촬영해 왔으며 백남준과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우이기도 하다. 그런 레베가 있었기에 오늘, 이 전시를 통해 백남준의 초기 모습, 부퍼탈에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발전부에서는 제목에서 드러난 도시 부퍼탈에서 열린 알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음악전시회-전자 텔레비전>전시의 기록사진이 펼쳐진다. 그는 1961년부터 이미 5~60년대를 통해 당시 막강한 대중의 우상으로 등장한 텔레비전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고, 또한 이 텔레비전을 이용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1963년 3월, 독일의 소도시 부퍼탈에서 전시가 열렸다. 총 12대의 텔레비이젼이 전시되었으며, 이들 모두 기능이 변형되어 관객들에게 보여졌다. 무질서한, 우연적인 배치와 관객이 접근해서 만져야 작동하는 등 대중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TV가 아닌 TV를 관객의 지배 하에 두어 의미를 역전시켰다. 또한 전시장소였던 파르나스 화랑의 모든 부분을 활용하여 다양한 오브제들도 함께 전시 되었다. 화장실의 변기와 지하실의 의자는 관객이 앉게 될 때 접촉하는 마네킹 머리나 가방을 통해 참선의 효과를 노렸으며, 어떤 벽에는 카세트 테이프의 마그네틱 선을 콜라주 해 놓아 관객이 자기 헤드를 그곳에 문지르면 임의적인 소리가 발생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다른 방에는 긴 봉에 레코드판들을 관통시켜 전축의 바늘을 가져다대면 각자 소리가 나도록 장치를 해 놓기도 했다. 이렇듯 백남준은 TV의 의미를 뒤집는 실험과 더불어 많은 매체와 전자기기들을 혼용하여 새로운 모습의 실험을 세상에 내 놓았다. 기존의 예술양식으로 해낼 수 없었던 이러한 참여의 시도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백남준의 작업들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예술의 개념과 형태는 미디어 아트에게 고스란히 닿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전시작의 상당부분이 사진이며, 부퍼탈 전시에서 사용되었던 <쿠바TV>의 경우 현재 동작하지 않는 외형만이 관객에게 보여진다. 이는 그가 해왔던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들은 촬영하지 않으면 남아있을 수 없는 종류이며, 또한 기계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백남준의 첫 개인전은 당시를 풍미하던 전위예술가들의 수많은 활동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했으며, 그의 활동 초기의 것들이기에 더욱 알려지지 않았고, 관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부퍼탈의 추억 전은 생생한 그의 과거모습의 전달이기보다는 여러 흑백사진들과 세월이 잠시 멈추어 있는, 그래서 조용하고 잔잔하게 그의 자취와 페이지를 넘겨보는, 그런 자리일 것이다.





글.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yellow@alice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