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레베카호른전;자유를 향한 낯선 몸짓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6. 21:33

             

이번 로댕갤러리에서 펼쳐진 레베카 호른展은 최초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독일 최고의 여류작가의 의미 있는 전시였다고 기억한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생경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레베카 호른은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혼합을 통한 관객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소개되어지는 재료라 함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녀가 연출하는 작품의 분위기는 상징적이고 심리적이며 때론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익숙함보다는 상징과 비유의 난해함이 낯선 상황으로 연출되어 소개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움직이는 조각이나 소리, 퍼포먼스, 영화 등의 제작은 작품의 영속성으로 관람객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되어 펼쳐지게 된다. 특히, 깃털, 바위, 거울, 물과 가루 등을 이용한 기계적 움직임은 작은 떨림으로, 한 생명체의 신호, 생의 몸부림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모터를 이용해 약5분을 주기로 새처럼 날개를 펼쳤다가 모으는 깃털로 이뤄진 <큰 깃털바퀴>라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 외에도 스타일이 다른 여러 개의 깃털로 이뤄진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작가는 깃털을 제2의 피부로써 ‘육신의 연장’으로 해석하고 생명을 부여한다. <씨네마 베리떼(Cinéma Verité)>라는 작품은 15~20cm 높이의 둥근 통에 담겨있는 물과 시계바늘 같이 긴 지휘봉이 수면 위를 모터를 이용해 일정한 주기로 자극을 주면 수면에 파장이 생겨나고, 그 모습이 빛에 의해 그림자가 생성되어 색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바로 이 작품은 초기 퍼포먼스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던 비디오 제작과는 달리 영화로 발전할 수 있었던 한 예로 설명되어진다. 수면의 진동으로 파생되어지는 물의 파장과 떨림은 섹슈얼적인 시도이면서 동시에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이루어 시적 은유를 유발시킨다. 이렇게 작품에서 발견되어지는 다양한 내용과 의도는 신체 조각이나 키네틱아트, 퍼포먼스 등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어지는 연극적 요소와 심미적 은유를 담고, 영화로 발전시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나 영화를 제작할 때, 레베카 호른은 배우들에게 각본에 의해 연출되어지는 것보다는 배우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감성에 의한 내면의 연기를 요구했는데, 이러한 의도는 새로운 형태와 경험으로 확장되어 펼쳐질 수 있는 신체적, 감성적 자유의 표출을 극화시키고자 한 예로 생각되어진다.





레베카 호른은 작품 안에서 인간의 허약함과 여린 감성 그리고 성(섹스)을 주제로 다루어왔다. 영화감독이자 예술 비평가인 슈웨펄(H. P. Schwerfel)은 레베카 호른의 예술은 “에로틱한 감성의 힘, 긍정과 부정의 힘, 남성과 여성의 힘에서 순수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며, “이러한 힘은 시공을 초월하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죽음으로 향하는 그녀의 여행에 동행하는 순간, 우리를 이끄는 작가의 영원한 미래는 여행으로 남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함축적이고 간결하지만 슈웨펄의 짤막한 표현은 레베카 호른의 작품세계를 느끼게 한다. 레베카 호른의 작품세계는 연약한 듯하면서 강하고, 성숙하면서 유아적이고, 단순한 듯하면서 복잡하고, 여성적이면서 남성적인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픽션인지 사실인지, 놀이인지 작품인지 구분 짓기 애매한 상태의 난해함까지 작가는 “놀이”라도 하듯, 작품의 유연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만의 독창성을 표현해주고 있다.


최근 로댕갤러리 전시개막 전에, 모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레베카 호른은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독일에서 태어나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몸으로 겪으며 자랐고, 그때 느낀 아픔들을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었다.”며 “이로 인해 독일인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희생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치유하고 이를 통해 하모니를 형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생존했던 사회적 주변상황을 이해하는 것 또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의 한 일부분이 된다. 레베카 호른의 말처럼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사회적 분위기와 병원 요양시절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생과 사의 행로를 이해하듯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상기시키듯, 레베카 호른은 놀이를 하듯 작품에 임하며, 예술의 승화라는 예술 지향적 사고보다는 삶의 반응처럼 삶의 희로애락을 작품이라는 범주에 넣고 표현한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의 변형과 연출을 통해 얽히고설킨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전설, 신화, 문학,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통한 이탈의 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형적 사고를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체조각과 키네틱아트 그리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한 레베카 호른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에 있다. 간혹, 레베카 호른을 페미니스트작가로 포함시키는 예가 있으나 페미니스트라고 평하기에는 상징적인 작품의 구조가 반사회적이거나 반예술적인 신체행위들과는 구별된다. 레베카 호른은 성(에로티시즘)을 표현했지만 페미니즘적이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여성의 감수성으로 작품에 임했고, 성(에로티시즘)을 통한 생과 사의 폭을 좁히는 예를 보여준 인본주의적 접근이었다.



아직, 인권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우리사회에서 한 개인의 감수성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집단의 권위와 이익이 우선하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반대중이 개인적 감성이 짙게 깔려있는 레베카 호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전시는 지난 40년간 레베카 호른이 펼쳐온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노력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어 뜻 깊었으며, 현대인의 다양한 감성으로 한 개인의 내면의 세계와 작품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전시로 기억될 것이다.  


글.강효연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mondoigt@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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