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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영화, 그 모호한 대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들 : Expanded Cinema Conference 참관기_world report

yoo8965 2009. 7. 23. 16:56


  지난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런던의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에서 개최된 "Expanded Cinema: Activating the Space of Reception"은 영국에서 실험영화 및 비디오작품에 대한 보존 및 연구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인 British Artists' Film and Video Collection(www.studycollection.co.uk)이 함께 기획한 이벤트였다. 다른 학술행사와 달리  상영 및 전시와 결합되어 일반 대중에게도 개방된 이 행사는 개막 일주일 전에 이미 매진되어 이 분야에 대한 영국의 폭넓은 저변을 확인시켜주었다. "확장영화(Expanded Cinema)"라는 용어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영미와 유럽에서 다양하게 시도된 비-규범적(non-normative) 형태의 영화 및 비디오 작품들 혹은 이벤트들로 멀티스크린, 갤러리 프로젝션, 라이브 프로젝션과 퍼포먼스의 결합 등을 폭넓게 포괄한다. 따라서 이는 (국내에서 언젠가부터 "21세기 학문과 예술의 지향점"으로 전유되고 있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결과들이고, 그러한 결합의 모태가 된 20세기 초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계승이며, 예술형태에 대한 장르구분을 무력화시키는 현대예술의 한 경향의 출발점이자, 디지털 미디어아트의 중요한 전사(prehistory)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들을 가진 "확장영화"는 "오히려 확장영화가 아닌 게 무엇인가가 문제다"라는 말콤 르그라이스(Malcolm LeGrice)의 말처럼 그 의미가 다층적이고 이질적이고 모호할 뿐더러, 이미 주변적인 영미권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에서도 더욱 주변적이거나 망각된 시도들을 가리키는 말로 취급되어 왔다. 2000년대 이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영화에 가져온 "매체 규정의 위기", "필름이라는 대상 자체의 위기"는 영미권과 유럽에서 확장영화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관심은 지난 2001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Into the Light: The Projected Image in American Art 1964-1977"과 같은 뮤지엄 중심의 기획전은 물론 2003년 ZKM에서 개최된 "Future Cinema" 전에도 반영되어 왔다. 테이트 모던에서 이 과거의 시도들을 재역사화하고 오늘날의 대중들에게 소개하게 되기까지는 이런 사연들이 있었다. 
  이미 참가한지 3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리포트를 쓰게 된 경위는 이 행사가 행사 개최소식에 대한 짧은 정보로 묻히기에는 두 가지 의미에서 너무나 아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국내에서 미디어아트 혹은 현대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거의 메우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거대한 공백을 이 행사가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미디어아트의 한 중요한 지류를 이루는 예술적인 노력에 대해 서구에서도 국가별, 지역별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깨우쳤다는 점에서다.




첫 번째 의미를 말하기 위해, 행사의 핵심이었던 3일간의 컨퍼런스와 더불어 전시되었던 두 편의 작품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From YouTube:
"Expanded Cinema: Activating the Space of Reception.

Works identified as Expanded Cinema often open up questions surrounding the spectator's construction of time/space relations, activating the spaces of cinema and narrative as well as other contexts of media reception. In doing so it offers an alternative and challenging perspective on filmmaking, visual arts practices and the narratives of social space, everyday life and cultural communication."

http://artforum.com/video/id=23210&mode=large&page_id=0

이트 모던의 모체가 된 발전소 건물의 지하("Oil Tank")에 설치된 이 작품들은 1970년대 영국의 확장영화가 낳은 귀한 자산들이다. <Light Reading>, <Dresden Dynamo>로 필름의 물질성과 이미지의 기계적 조직화에 대한 탐구의 지평을 넓힌 리즈 로즈(Lis Rhodes)는 1973년 2대의 16밀리 프로젝터를 갤러리 공간에 서로 마주보고 영사하여 관람자에게 강렬한 시청각적 체험을 전달하는 작품을 구상한다. <Light Music>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은 전후좌우로 변화하는 줄무늬와 흰색 사각형, 필름스트립의 영사에 따른 깜박임(flicker) 효과를 아낌없이 뿜어낸다. 이 빛과 이미지의 향연은 사운드와 동기화되어 있다. 시종일관 다채로운 주파수를 오르내리는 현란하고 압도적인 굉음은, 사실 필름스트립이 프로젝터를 통과하면서 내뿜는 빛의 스펙트럼 변화가 전자파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이는 옵티컬 사운드(Optical Sound)라 불리는 테크닉으로 구조주의 영화에서 이에 대한 풍부한 실험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시청각적 신호의 동기화라는 비디오 이후 매체예술의 기술적, 미학적 탐구 영역 중 하나를 영화매체와 그 구성요소들의 차원에서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디어아트의 흐름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추상적인 패턴의 시청각적 자극이 빚어내는 공감각적 효과, 관람자가 보고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프로젝터 불빛, 관람자의 현전을 압도하는 벽-스크린의 활용, 이 세 가지 요소들에서 그래뉼러 신세시스(Granular Synthesis)의 설치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로즈의 이러한 실험은 미국 아방가르드보다 더욱 유물론적인 영국 아방가르드 시네마의 전통 하에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아방가르드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넘어 '확장영화'의 틀 안에 다시 위치될 때(그리고 확장영화를 영미 아방가르드 영화의 한 분파로 흡수하려는 협소한 견해를 넘어설 때), 극장의 틀을 넘는 체현적 경험(embodied experience)과 비규범적인 영화장치 구성이 오늘날의 미디어아트와 맺을 수 있는 가능한 다층적인 관계들로 진입할 수 있다. 

  또 다른 영국 아방가르드 시네마의 중요 인물인 스티브 파러(Steve Farrer)가 1978년부터10년에 걸쳐 구상한 <The Machine>은 이러한 관계들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을 심화시킨다. 관람자는 마치 원형 실린더 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는 카메라와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결합시킨 장치가 지속적으로 360도 회전하면서 벽면에 잔상들(누워있는 남자의 흑백사진, 남성의 성기를 포착한 네거티브 이미지, 텍스트 등)을 만들어낸다. 관객에게 어떠한 고정 시점도 허용하지 않는 이 작품 또한 구조영화의 공통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의 이미지가 어떤 질료들과 기법들로 구성되는가에 대한 "과정"(그러니까 카메라의 기록에서 영사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를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인지하게끔 하려는 그런 관심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능동적 관람자는 영화 이미지-영사환경-장치의 관계를 관습적인 영화 매체와 다르게 상상하는 과정에서 구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매체 일반의 기술적, 물질적 한계에 대한 집착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매체구성을 요구한다. 확장영화가 구조영화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렇게 도출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오늘날 미디어아트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몰입적인(immersive)" 인터페이스와의 흥미로운 비교 가능성이 열린다. 스크린의 2차원적 제한을 넘어서는 원통형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 투영되는 이미지에 관객이 둘러싸이는 과정은 케이브(CAVE)에서의 경험을 환기시킨다. 다른 점이라면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한 몰입적인 가상환경과는 달리 관객의 지각이 잔상의 주파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스탠 반더비크(Stan Vanderbeek)의 전설적인 <무비드롬(Movie-Drome, 1963)>이나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초기 확장영화적인 실험들에서 볼 수 있는 반구형 환경 내의 다채널 이미지 영사방식(오늘날 몰입적인 가상환경의 중요한 선구라 할 수 있는 시도들)과 이런 의미에서 구분된다. 몰입적인 환경을 취하면서도 관객에게 완전한 몰입을 허용치 않는 이 작품의 관람성은 마크 한센(Mark B. N. Hansen)이 주로 상호작용적인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하위장르들(가상현실에서 증강현실에 이르는)에 지배적인 수용양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체현" 개념의 틈새를 노출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사실 한센이 [Bodies in Code (2005)]에서 이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현상학은 60-70년대 현대예술에서도 정신분석학과 더불어 활발하게 수용 및 응용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전시작품 이외에도 이번 이벤트의 상영 프로그램은 확장영화와 오늘날 미디어아트와의 불충분한 연결고리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전달한다. "비주얼 뮤직(Visual Music)" 섹션에서는 오스카 피싱어(Oskar Fischinger)의 멀티-프로젝션 필름이자 자신이 직접 개발한 컬러 테크놀로지의 실험을 포괄하는 <R-1 ein Formspiel (1925-33)>의 일부 복원판이 공개되었으며 뉴욕을 근거로 셀룰로이드와 다른 혼합매체를 결합한 라이브 프로젝션 퍼포먼스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산드라 깁슨(Sandra Gibson)-루이스 레코더(Luis Recorder) 콤비 또한 "라이브 미디엄(Live Medium)" 섹션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UK 멀티스크린(UK Multiscreen)" 섹션은 더블 프로젝션 필름 혹은 필름 상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6작품이 상영되어 스크린-영사기-이미지-관객 사이의 관계를 다채로이 변주했다. 이 세 섹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영화매체를 이루는 구성요소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조작과 변형, 스크린을 중심으로 한 인접 예술형식 및 테크놀로지와의 활발한 연합, 영화 오브제 및 경험 자체를 일시적인(ephemeral) 혹은 장소-특정적인(site-specific) 것으로 재정립하기. 이러한 특징들은 확장영화에 대한 일면적인 정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동시에(이 용어 자체에 담긴 의미들마저도 이질적이며 확장 가능한 것이다), 영화매체가 갖고 있는 구성적 경계의 본원적인 불안정성을 부각시킨다. 이 불안정성의 결들을 파헤칠 때 확장영화가 매체들에 대한 기존의 경계를 뒤흔들고 매체들 간의 교환회로를 구축하는, 그래서 작품과 관객, 시공간 사이의 관계를 다르게 상상하는 역사적 시도들의 총체임이 드러난다. 그러한 시도들이 사실상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아트에서 문제시하는 것 아닌가.


 


글. 김지훈 (뉴욕대학 영화연구 박사과정수료, jihoonfelix@gmail.com)